활터 '황학정'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4.08.16. 00:00

수정일 2004.08.16. 00:00

조회 1,683



시민기자 최근모


텅.. 텅.. 텅.. 둔탁한 물체가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어렴풋이 귓가에 맴돈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아 다리가 저려온다. 움직일 수가 없어. 그런데 이 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것이지? 눈을 뜨니 앞좌석에서 공부하던 여자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아... 도서관이구나. 이런 또 졸다니.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 무렵이 한참 지난 시각이었다. 그때 다시 들려오는 둔탁한 물체가 부딪히는 소리 텅텅텅... 꿈이 아니었구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모두들 공부삼매경에 빠져 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점심도 되고 해서 나는 도시락을 들고 열람실 밖으로 나와 소리가 나는 곳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의문의 소리는 종로도서관과 이어진 산등성이에서 나고 있었다.
비탈진 언덕길을 도시락 하나들고 오르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 우스웠지만 가슴속에서 뭉그락 뭉그락 피어오르는 호기심은 참기가 힘들었다.

경사가 심하게 진 길을 오르니 숲가지로 가려져 있던 곳에 오래된 누각하나가 예상치 못하게 나타났다. 소리의 진원지는 그 누각 밑이었다.
대여섯의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긴 활에 시위를 당기며 멀리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순간 궁수의 팔뚝에 잡히는 근육. 끙 하는 힘쓰는 소리가 그의 입에서 새어나오고 동시에 화살은 시위를 떠나 어딘 론가 ‘피웅’ 하며 잽싸게 날아갔다.
꽤 시간이 지난 후 멀리서 텅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꿈결에 들었던 그 의문의 소리는 화살이 과녁에 맞을 때 나는 소리였던 것이다.

출입구에 보니 황학정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옆에 친절하게도 이곳의 연혁과 안내가 나와 있었는데 조선후기 무인들의 활터로 쓰였던 곳 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이곳 말고도 주변에 서넛의 비슷한 활터가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 남산을 답사할 때도 그곳에서 이와 비슷한 곳을 본적이 있었는데 그곳 이름이 석호정이였다.

의외의 발견에 나는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황학정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 벤치에서 궁수들의 활쏘기를 보았는데 대체로 나이 드신 분들이 많으셨고 모두 서로 경쟁한다기보다 동네 노인정에서 장기를 두는 것처럼 화기애애했다.
놀라웠던 것은 그곳에서 과녁판은 족히 400 미터가 넘을 것 같은데 모두 단번에 맞추는 것이다.
사실 젊은 나도 과녁판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는데 그 거리에서 모두들 주저 없이 과녁을 관통시키고 있었다. 먼 거리라서 그런지 시위를 떠난 화살은 한참 후에 과녁을 맞히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잊었던 도시락 생각이 나 옆쪽으로 이어진 산등성이에서 황학정을 내려다보며 점심을 먹었다. 오늘 하루 공부도 제대로 못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곳을 발견한 흡족함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공부는 언제하지? 시험이 멀지 않았는데..

종로도서관에 올 일이 있으면 뒤쪽으로 난 후문을 통해 몇 분정도 올라가면 활 쏘는 것을 볼 수 있다.
황학정과 이어진 인왕산 자락을 통해 서울 시내를 내려다 볼 수도 있고 어린이도서관도 근처에 있어서 자녀들과 함께 하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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