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고요한 정원, 서울 의릉을 찾아서

시민기자 염승화

발행일 2020.05.15. 10:03

수정일 2020.05.15. 17:36

조회 4,865

조선 왕릉은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들의 무덤이다. 숲이 깊고 경관이 빼어난 청정지역에 있어 산책 장소로도 제격이다. 1대 태조(太祖) 건원릉(健元陵)을 비롯해 모두 42기가 있고,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200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 가운데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의릉(懿陵)을 찾았다.  

홍살문 앞에서 바라본 의릉 참도로 방문객이 걸어가고 있다

홍살문 앞에서 바라본 의릉 참도로 방문객이 걸어가고 있다 ©염승화

의릉은 제20대 임금 경종(景宗)과 계비인 선의왕후(宣懿王后)를 모신 능이다. 선왕 숙종(肅宗)에 이어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인 37세에 승하한 경종 왕릉을 1724년(영조 즉위)에 조성하였고, 6년 뒤 26세로 승하한 왕비 능을 1730년(영조 6)에 조성했다. 계비인 선의왕후능을 같은 영역에 쓴 것은 첫 번째 왕비인 정비 단의왕후(端懿王后)가 세자빈 시절에 세상을 떠났기에 그렇다. 왕후로 추존된 단의왕후는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 혜릉(惠陵)에 모셔져 있다.

경종은 부모인 숙종과 장희빈(張禧嬪), 이복동생인 영조(英祖) 덕분에 자주 인구에 회자되는 임금 중 한 분이다. 어머니 장희빈이 경종의 하초를 잡아당겨 허약해졌다는 얘기나 경종이 자식이 없기에 왕세제에 책봉된 연잉군(延礽君) 영조가 왕위를 이은 일화는 유명하다. 근래에도 TV 사극 ‘해치’에 병약한 임금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금천교 개울가에서 바라본 의릉 전경

금천교 개울가에서 바라본 의릉 전경 ©염승화 

정문 앞에 놓인 세계문화유산 표석을 잠시 살펴본 뒤 경내로 들어섰다. 곧바로 푸른 숲이 울창한 천장산 아래로 널찍한 왕릉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신성한 영역임을 나타내는 금천교와 그 밑을 좌우로 흐르는 개울가 풍경에 눈길이 꽂혀 발길이 먼저 그리로 향했다. 여느 왕릉과는 다소 다르게 철쭉, 수국 등 각종 꽃나무들이 돋보이게 가꾸어져 있다. 초록빛 수초들이 넘실대듯 가득 들어차있는 수로는 한결 아늑해 보인다.

참도 옆에 전돌을 깔아 조성한 판위는 제관이 제례를 올리기 전에 절을 하던 곳이다

참도 옆에 전돌을 깔아 조성한 판위는 제관이 제례를 올리기 전에 절을 하던 곳이다 ©염승화 

제향 공간의 시작점인 홍살문 앞으로 왔다. 제례를 지내는 정자각과 표석을 세워둔 비각을 살펴본 뒤 봉분이 가까이 보이는 데까지 가볼 요량이다. 그러기에 앞서 홍살문 우측 앞에 전돌을 깔아 만든 판위(板位)를 바라보곤 옛날 영조가 능행을 나왔을 당시 필시 그러했을 것처럼 잠시 옷매무새를 고쳐보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영조가 이복형 경종을 참배하느라 의릉으로 행행을 나온 서록이 나타난다. 환궁 길에 백성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애환을 들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의릉 비각 안에 세워져 있는 표석

의릉 비각 안에 세워져 있는 표석 ©염승화 

혼령과 임금이 지나는 좌우 두 돌길(향로, 어로)인 참도를 따라 정자각으로 향했다. 왠지 참도 주변이 휑해 보인다 싶었는데, 수라간과 수복방이 있어야 자리가 텅 비어 있다. 지금은 터조차 없이 망실되어버린 재실과 더불어 복원이 되어야 할 건축물들이다. 정자각 향로 계단 외벽에 새겨진 꽃문양과 ‘조선국 경종대왕 의릉 선의왕후 부’(朝善國 景宗大王 懿陵 宣懿王后 祔)라고 음각으로 새겨진 비각 안 표석을 살펴본 뒤 제향과 능침 공간을 경계하는 목책으로 다가갔다.

공사중이어서 진기한 장면을 조우하게 된 의릉

공사중이어서 진기한 장면을 조우하게 된 의릉 ©염승화

능침 공간 봉분 주위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도 보이고 장비들도 설치되어 있다. 봉분과 능침 주변 지반 정비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능침으로 바로 가보지 못한 아쉬움은 잠깐, 오히려 기대하지 않은 신기한 장면을 조우하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장명등, 석호, 문무석인 등 봉분에 세워져 있는 여러 석물들도 이삿짐 싸듯이 전부 덮여 있었다.

예전에 담아놓았던 선의왕후 능침. 봉분과 난간석 등 석물들의 모습

예전에 사진으로 남겨두었던 선의왕후 능침. 봉분과 난간석 등 석물들의 모습 ©염승화

의릉 능침은 왕과 왕비의 능이 좌우가 아닌 상하로 놓인 특징이 있다. 이른바 동원상하릉 형식이다. 곡장이 세워진 위쪽 봉분이 왕, 그 아래쪽 봉분이 왕후 능이다. 석물 가운데는 석호의 꼬리가 등 위로 올라가게 조각된 점도 독특하다. 능침은 매년 3월~12월 매주 토, 일요일 오후 한두 차례 해설사 동행 하에 개방된다.

호젓한 오솔길로 이루어진 의릉 산책로

호젓한 오솔길로 이루어진 의릉 산책로 ©염승화 

의릉 둘레길의 위용 있는 고목 향나무는 성북구가 관리하는 보호수로 수령은 160년이라고 한다

의릉 둘레길의 위용 있는 고목 향나무는 성북구가 관리하는 보호수로 수령은 160년이라고 한다 ©염승화

왕릉을 품은 천장산에는 왕릉에 바짝 붙어 짧게 도는 중간 산책로와 산속으로 1.7km쯤 길게 나 있는 외곽 산책로가 있다. 공교롭게 방문한 날이 산불 조심 기간이라 통제되어 외곽은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다. 중간 길 초입에서 만난 향나무 고목의 위용을 보며 위안을 삼아야 했다. 산불 조심 기간은 2월 1일~5월 15일, 11월 1일~12월 15일이다.

의릉은 특성이나 역사적인 의미 외에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실이 있다. 다름 아닌 공권력으로 큰 수난을 당한 능이란 점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옛 중앙정보부가 왕릉 자리를 무려 33년간이나 통째로 점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비공개지역으로 출입을 금지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제향공간에 연못을 파거나 다리를 가설하는 등 훼손을 서슴치 않은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그 바람에 능이 조성된 지 300년이 다 되었음에도 제향공간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참도와 진입공간 금천교 일원에서는 역사의 향기를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다. 새로 깔고 판 티가 역력해 아쉬움이 가득하다.

수난사의 상징인 옛 중앙정보부 강당이 의릉 경내에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

수난사의 상징인 옛 중앙정보부 강당이 의릉 경내에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 ©염승화 

지난 1996년에야 뒤늦게 개방된 경내 한편에는 고난의 흔적인 ‘구 중앙정보부 강당’이 유산으로 남아 있다. 강당과 회의실로 구성된 이 건물은 아이러니하게도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자리이다. 역사성을 인정받아 문화재(등록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어 있다. 어머니가 폐비되어 사사당하고, 병치레를 심하게 하여 흔히 ‘비운의 왕’이라고 불리는 경종은 죽어서도 비운이라는 두 글자를 떼지 못한 참담한 신세였던 것이다.

의릉은 정릉(貞陵), 헌릉(獻陵), 선릉(宣陵), 태릉(泰陵) 등 서울 지역에 있는 다른 왕릉들처럼 숲이 깊고 둘레길이 깔끔하게 마련되어 있다. 맑은 공기 마시며 산책하기에 좋다. 지하철 6호선 돌곶이역에서 내려 10여 분쯤 걷거나 버스로 환승해 5분쯤 가면 된다. 다음 주말 나들이 코스로 도심 속 고요한 정원, 의릉 방문을 권하고 싶다.​

■ 서울 의릉 
○ 교통 : 지하철 6호선 돌곶이역 6번 출구 → 약 850m(도보 약 12분) → 의릉 입구 / 돌곶이역 7번 출구 → 버스 147번 환승 약 5분 → 의릉 입구 하차
○ 위치 : 성북구 화랑로 32길 146-37
○ 운영시간 : 2~5월, 9~10월 09:00~18:00 / 6~8월 09:00~18:30 / 11~1월 09:00~17:30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입장료 : 1,000원 (만25세~만64세) / 단체 800원(10인 이상)
○ 문의 : 02-964-0579
○ 홈페이지: http://royaltombs.cha.go.kr/html/HtmlPage.do?pg=/new/html/portal_01_07_01.jsp&mn=RT_01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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