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낮은 담장, 연주황 골목… '응팔' 세트장 같은 이곳은?

시민기자 박은영

발행일 2019.05.03. 11:56

수정일 2019.05.03. 18:19

조회 3,676

도시재생으로 탄생한 장위동의 연주황골목

도시재생으로 탄생한 장위동의 연주황골목

일제 강점기의 전통가옥과 도시재생으로 새롭게 태어난 골목이 한 동네에 있다. 바로 성북구 장위동에 말이다. 서울시의 민속 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된 전통가옥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반가웠다.

172번 버스를 타고 장위1동 새마을금고 역에서 내렸다. 차도와 골목을 지나 4분여를 걸으니 익숙한 한옥의 담벼락이 보였다.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와 부마 남녕위 윤의선, 그의 아들 윤용구가 살던 집인 이곳은 1977년 서울시 지정문화재 민속자료 25호로 지정됐다.

성북구 장위동에 위치한 전통가옥

성북구 장위동에 위치한 전통가옥

1998년 12월, 이 집의 소유주인 김진흥이 불교 교단에 기증한 후, ‘진흥선원’이라는 절로 운영되는 가옥은 두 개의 기단을 쌓은 높은 곳에 자리했다. 절에 상주하고 계신 분들에게 양해를 구해 가옥을 둘러볼 수 있었다.

가옥을 둘러싼 빼곡한 나무들이 보기에 좋았고, 가옥의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ㄱ자형 평면의 집과 ㄴ자형집이 연계된 공간 중앙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어 돋보이는 구조였다.

안채와 사랑채 외에도 다양한 공간이 있었으며, 마당 내부 구석의 각 방들을 엇비슷하게 배치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고 한다.

마당의 나무를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등 다양한 공간을 지니고 있는 전통가옥

마당의 나무를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등 다양한 공간을 지니고 있는 전통가옥

민속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가옥으로서의 보존이 아쉬운 지점도 있었다. 하지만, 장독과 아궁이 등 고택에서 볼 수 있는 정취는 그대로 남아 있어, 한적하고 고즈넉한 전통가옥을 느낄 수 있는 공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김진흥 가옥에서 출발해 성북구 장위동 234번지 일대를 향해 걸었다. 서울시의 도시재생 정비 사업의 일환인 ‘가꿈주택사업’으로 탄생한 장위동의 연주황 골목길이 있기 때문이다. 연주황 골목은 김진흥 가옥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거리였다. 지름길을 통해 낯선 동네의 골목길을 걷는 색다른 기분이 좋았다.

장위동 가꿈주택 골목길

장위동 가꿈주택 골목길

장위동 ‘가꿈주택골목길’이라는 알림판이 붙어있는 연주황 골목길은 아늑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였다. 골목 입구에 있는 부동산사무실의 주황색 간판이 눈에 띄어 연주황 골목은 먼 곳에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한 때 ‘귤색’이라고도 불리던 주황색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낮은 집들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장위동 연주황 골목

낮은 집들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장위동 연주황 골목

곳곳에 주황색 포인트와 더불어, 집집마다 낮은 담장 아래 벤치와 화분을 조성, 아기자기하고 친근한 느낌이었다. 뿐만 아니다. 은은한 엔틱 느낌의 가로등과 바닥 등까지 구석구석 섬세하게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지난 해 7월 정비가 완료된 이곳은 오랜 세월 집 마당과 골목길을 지켜온 감나무를 모티브로 하여 디자인 했다고 한다. 낡은 저층주택의 주거환경 개선과 공동체 활성화를 목적으로 조성된 연주황 골목길의 집들은 안팎으로 변화가 있었다.

나무담 아래 집집마다 볼 수 있는 벤치

나무담 아래 집집마다 볼 수 있는 벤치

주민의견을 반연하는 것은 물론, 보안등과 CCTV를 설치해 안전을 확보했으며, 낡고 어두운 보도블록은 밝은 색으로 교체, 허문 담장을 안쪽으로 들여 마련된 공간에 벤치와 화단을 조성했다. 때문에 마당 안의 감나무를 골목길에서도 볼 수 있게 됐으니, 연주황 골목의 경치는 주황색의 감이 익는 계절, 더 근사한 경치를 선사할 것이다.

성북우리동네키움센터

성북우리동네키움센터

연주황 골목에는 특별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서울시가 초등학생의 방과 후, 방학, 휴일 등의 틈새 보육을 위해서 운영 중인 성북우리동네키움센터도 존재했다. 마당이 온전히 드러난 우리동네키움센터가 이곳 연주황골목에 위치하고 있는 거다.

학교를 마친 후 갈 곳이 없는 초등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우리동네키움센터는 방과 후 친구와 놀면서 쉴 수 있는 곳이다. 맞벌이 부부에게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공간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돌봄 걱정 없이 일과 생활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편적 돌봄을 실현하고 있다.

우리동네키움센터 앞쪽 벽면에는 갖가지 사진과 동네 소식 등이 전시돼 있다.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하며 꿈을 키우는지, 혹은 마을 주민들이 어떠한 활동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낮은 담벼락을 수놓은 화사한 꽃화분들

낮은 담벼락을 수놓은 화사한 꽃화분들

연주황 골목길을 따라 걸으니 집 앞 마당에 나와 책을 읽은 아주머니를 볼 수 있었고, 짐을 든 아주머니가 골목 벤치에 앉아 잠시 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는 집 마당 안쪽의 풍경을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장위동 연주황 골목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오래되고 낡은 골목이 그렇듯, 높은 담들로 둘러싸여 이웃 간 교류가 부족했던 어둡고 칙칙했던 골목이 도시재생과 함께 다정하고 따뜻한 풍경을 지니게 된 거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간 해당사업을 통해 84개 주택과 3곳의 골목길을 정비한 서울시는 올해 서울가꿈주택사업 수혜 시민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한다. 지난 29일 서울시는 노후주택 총 300호, 골목길 5개소 단장을 목표로, 총 74억 원으로 예산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작년보다 약 16배 증가한 규모다.  ☞ 내 손안에 서울 관련 기사 보기

연주황골목의 중심이 되는 갈림길

연주황골목의 중심이 되는 갈림길

어둡고 오래된 동네의 골목길은 지저분하거나 아이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는 장소로 몰락하기 마련인데, 가꿈주택사업을 통해 화사하게 변신한 연주황 골목은 동네의 주민 뿐 아닌, 그 곳을 지나는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다.

이웃들이 골목길에 두런두런 모여 앉아 얘길 나누는 정감 있는 장면은 ‘응답하라 1988’속의 얘기였다. 하지만, 이제 장위동 연주황 골목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낮은 담장이 소통을 이끌고, 이웃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이웃공동체를 만든 거다. 물리적 환경이 가져다 준 이러한 변화가 더 많은 골목과 그 곳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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