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알린 '앨버트 테일러와 딜쿠샤' 유물 최초 공개

시민기자 김은주

발행일 2018.11.27. 16:45

수정일 2020.06.16. 18:44

조회 1,819

종로구 행촌동의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불리던 집은 사실은 ‘딜쿠샤’란 이름의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거주했던 역사적인 집이다

종로구 행촌동의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불리던 집은 사실은 ‘딜쿠샤’란 이름의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거주했던 역사적인 집이다

종로구 행촌동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500년 된 은행나무가 보인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준 은행나무 맞은 편엔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 불리웠던 붉은 벽돌의 서양식 가옥이 있다. 언뜻 봐도 특별한 외관에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이 집은 오랜 시간 동안 누구의 집이었는지 알 수 없어 많은 이들의 추측만 난무했었다.

2005년 베일에 쌓여있던 붉은 벽돌집의 정체가 알려졌다. 미국인 브루스 티켈 테일러는 그가 어릴 적 살던 집을 찾는 작업을 김익상 교수에게 의뢰했고, 김교수는 그 집이 바로 행촌동의 ‘귀신이 나오는 집’임을 2개월에 걸쳐 밝혀냈다. 이 집은 특이하게도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딜쿠샤(DILKUSHA)란 이름의 붉은 벽돌집은 미국인 부부 앨버트 W.테일러와 메리 L.테일러가 거주했던 곳이었고, 브루스 T.테일러는 어릴 적 살았던 그의 집을 찾았다.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시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전시중이다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시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전시중이다

딜쿠샤의 집주인인 앨버트와 메리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 린리 테일러는 딜쿠샤와 가문 자료 1,026건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그녀의 기증을 통해 앨버트 W.테일러 부부의 행적과 딜쿠샤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며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다.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3일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는 2019년 3월 10일까지 이어진다. 전시를 통해 1917년부터 1942년까지 서울에 살았던 앨버트 W.테일러와 메리 L.테일러 부부의 유물인 은그릇, 호박목걸이, 장신구, 편지, 그 당시 경성사진들이 담겨있는 사진첩, 풍경화, 태극기, 공예품 그리고 그들이 거주했던 딜쿠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앨버트 W.테일러는 AP통신사 임시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취재해 전세계에 전했다.

앨버트 W.테일러는 AP통신사 임시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취재해 전세계에 전했다.

앨버트 W. 테일러는 1875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당시 조선에서 금광사업을 했던 부친을 돕기 위해 조선에 온 앨버트 W.테일러는 1919년 AP통신사 임시특파원으로 활동했다. 3·1운동 때는 일본경찰의 수색을 피해 독립선언문을 국제통신사에 전했고,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전세계에 알렸다. 조선총독부는 1942년 테일러 부부를 추방했고, 1948년 앨버트 W.테일러는 캘리포니아에서 73세의 일기로 작고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묻히도록 해달라는 그의 생전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로 이송되어 안장되었다.

앨버트 부부가 남긴 사진을 통해 당시 조선의 모습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앨버트 부부가 남긴 사진을 통해 당시 조선의 모습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앨버트 W.테일러는 인도에서 메리 L.테일러와 결혼 후 조선에서 생활했다. 영국 출신인 메리 L.테일러는 그림에 조예가 깊어 조선사람들과 풍경을 그려 작품으로 남겼고, 그녀의 그림과 부부가 찍은 사진들을 통해 그 당시의 생활상과 조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메리 L.테일러의 자서전 호박목걸이가 영어와 한국어로 출간되었다(좌), 앨버트 W.테일러가 결혼선물로 메리 L.테일러에게 준 호박목걸이가 전시되어 있다(우)

메리 L.테일러의 자서전 호박목걸이가 영어와 한국어로 출간되었다(좌), 앨버트 W.테일러가 결혼선물로 메리 L.테일러에게 준 호박목걸이가 전시되어 있다(우)

메리 L.테일러는 자서전 <호박목걸이>를 출간했다. 1917년부터 1942년까지 테일러 부부의 서울살이를 기록한 이 책은 당시 조선인의 생활모습, 민속신앙, 금강산 유람 등 그녀가 조선에 살면서 겪었던 경험과 삶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영문판과 한글판이 나와 있다.

책 제목인 호박목걸이는 앨버트 W.테일러가 메리에게 준 결혼선물이었다. 책의 모든 내용은 호박목걸이를 통해 이야기되고 있기에 상징성이 크다. 그녀의 호박목걸이와 귀걸이, 팔찌는 전시장에서 직접 볼 수 있다.

딜쿠샤 내부 벽난로와 거실의 모습이 전시장에 재현되어 있다

딜쿠샤 내부 벽난로와 거실의 모습이 전시장에 재현되어 있다

앨버트 W.테일러 부부는 결혼 후 서대문 근방에 벽난로가 있었던 한옥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행촌동의 딜쿠샤는 1923년 앨버트 부부가 건축했다. 한양도성의 성곽을 따라 산책하면서 발견한 권율장군의 집터 안 500년 된 은행나무는 이들을 매료시켰다. 그들은 그 은행나무 아래 집을 짓고 별칭을 ‘딜쿠샤(DILCUSHA)’로 붙였다. 딜쿠샤란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메리가 인도 북부 러크나우를 여행할 당시 관심 있게 보았던 궁전의 이름이 바로 딜쿠샤였다. 그 집을 기쁜 마음의 궁전으로 만들고 싶었던 이 부부의 마음이 느껴진다. 오랜 시간 이웃집 장독대에 가려져 있었던 정초석에는 DILKUSHA 1923 시편 127장 1절이 새겨져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손녀 제니퍼가 전시장을 둘러보며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손녀 제니퍼가 전시장을 둘러보며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일제는 1941년 진주만 기습 이후, 서울에 거주하는 서양인들을 수용소에 가두거나 가택연금을 시켰다. 풀려난 테일러 부부는 1942년 조선에서 추방되어 캘리포니아로 떠났고, 한국이 해방된 후 앨버트 W.테일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군정 통역사에 지원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된다. 조부모가 사랑하고 영원히 땅에 묻히고자 했던 이 땅을 기억한 손녀 제니퍼 린리 테일러는 2006년 아버지 브루스 티켈 테일러와 함께 딜쿠샤를 방문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딜쿠샤를 방문한 제니퍼는 그의 가족이 한국에서 살면서 이뤘던 여러 일들을 알게 되었고, 그 의미를 깨달아 딜쿠샤와 테일러 가문의 자료들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딜쿠샤와 테일러 부부를 알리며 조부모의 한국에 대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전시를 위해 다시 한국을 찾은 제니퍼는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과 반갑게 인사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통해 한국과의 인연이 더욱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앨버트 W.테일러 부부의 한국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물과 기록을 통해 당시 조선의 모습과 일제 강점기 외국인의 눈에 비친 현실을 알 수 있다

앨버트 W.테일러 부부의 한국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물과 기록을 통해 당시 조선의 모습과 일제 강점기 외국인의 눈에 비친 현실을 알 수 있다

이번 전시는 1917년부터 1942년까지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과 삶이 잘 드러나 있다. 그들이 바라본 우리의 모습은 사진과 그림, 글로 표현되었고 일제에 맞서 항거했던 우리를 도왔던 앨버트 L.테일러의 위대한 업적도 고맙게 느껴졌다. 한국을 사랑해 죽어서도 한국땅에 묻히길 원했던 테일러 가문의 이야기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딜쿠샤는 앨버트 부부가 우리나라 근대 애국운동에 일조한 점과 건축적으로 미관을 중시하여 벽돌의 긴 면과 짧은 면을 번갈아 쌓은 희귀한 프랑스식 벽돌 올림이 적용된 점 등 여러 이유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행촌동 딜쿠샤는 리모델링 작업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베일에 쌓여 방치되었던 딜쿠샤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그 의미처럼 ‘기쁜 마음의 궁전’으로 시민들에게 선보일 날을 기대해본다.

■ 기증유물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시 안내
○기간 : ~ 2019년 3월 10일 평일 9:00~20:00, 토·일요일·공휴일 9:00~18:00(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B
○관람료 : 무료
○홈페이지 : www.museum.seou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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