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는 ‘해방촌’ 신흥시장을 찾다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7.07.17. 16:20
일제에 해방된 지 어언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시절의 흔적이 어린 동네가 서울에 남아있다면 아마도 해방촌이 아닐까?
오랜 역사의 자취가 곳곳에 배어 있는 동네, 해방촌은 일제 식민지 해방을 거쳐 한국전쟁을 겪던 중 월남한 실향민들이 남산 아래 판자촌을 이루게 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해방과 더불어 만나 서로 의지해 살면서 ‘해방촌’이라는 이름도 얻게 됐다.
녹사평역 2번 출구에서 미군 부대 담장을 따라 남산 방향으로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제법 번화한 거리에 이른다. 해방촌의 초입 길인 용산구 신흥로 거리이다. 수제버거, 샌드위치, 케이크 가게 등 젊은층 취향의 다양한 맛집들이 즐비하다. 영어로 된 간판과 외국인도 심심찮게 보여 이국적인 분위기마저 풍긴다.
2년 전 겨울, 이태원에 갔다가 예정에도 없던 해방촌으로 들어서게 됐다. 그 지역을 알려거든 시장을 둘러보는 것이 지름길일 터. 허름한 주택 사이의 비좁은 골목길을 숨이 턱에 차도록 올라가다 꼭대기에 이르러서야 신흥시장을 만났다. 신흥로를 따라 올라갈수록 초입의 번화한 풍경과는 딴판이다. 시장은 입구부터 휑해 인적이 끊긴 모습이었다. 초행길이라면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슬레이트 지붕의 터진 틈으로 바람만 들락거려 을씨년스러운 시장은 마치 동굴 속 같았다. 빈 점포가 대부분이었고 고추 방앗간과 구멍가게, 옷 수선집, 정육점 정도가 문을 열긴 했지만 고요했다. 불을 밝히고 있던 몇몇 가게에도 다가설 엄두가 나질 않았다.
가파른 골목길의 오래된 집들은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타일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공중에서 곡예라도 하듯 전선 가닥들은 축축 늘어져 있고 간혹 빈집인 듯 지붕이 거의 무너져 내린 집들도 보였다. 그런데 어느 골목에 들어서든 남산 서울타워가 손에 잡힐 듯 보였다. 해방촌만의 익숙한 풍경인 듯 보였다.
올해 5월, 해방촌 도시재생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해방촌을 다시 찾게 됐다. 해방촌 오거리는 해방촌에서 제일 높은 지대다. 서울에서 오거리를 만나보기란 쉽지 않은 터에 이렇게 높은 언덕에 오거리가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편의점, 파출소, 부동산, 빵집, 트럭 생선가게까지 한데 모여 있는 이 오거리는 해방촌의 중심부이자 교통의 요지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런데 더욱더 신기한 일은 신호등이 없다는 것. 대신 다섯 갈래로 나뉜 도로 바닥에 ‘양보’가 큰 글씨로 쓰여 있을 뿐이었다. 차량이든 보행자이든 서로 양보만 잘하면 교통은 문제없다는 뜻일까? 이곳에서부터 후암동으로, 이태원으로, 시청과 남대문으로 길이 사방팔방 갈라져 차량 통행이 무척 혼잡스러울 듯한데 신통하게도 교통 상황은 원활했다. 오랜 세월 터득한 해방촌오거리만의 교통질서인 것 같았다.
해방촌 오거리에서 몇 발짝 조금만 내려가면 신흥시장이다. 신흥시장은 해방촌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 중의 하나다. 정적이 감돌았던 2년 전의 신흥시장은 그동안 얼마만큼 변화되었을까?
신흥시장에 들어서자 편직공장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신흥시장의 변화를 실감케 했다. 니트 산업은 신흥시장의 흥망성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70년대에 해방촌이 니트산업의 메카로 떠오르면서 한때 한 집 건너 편직에 종사할 정도로 번창했지만 90년대 이후 니트산업이 쇠퇴하면서 신흥시장도 함께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런 이유로 해방촌 도시재생사업에서 편직공장을 가동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비어 있던 가게에 공방과 카페가 들어와 문을 열고 있었다. 구멍가게, 반찬가게, 정육점 등 기존 가게들과 새롭게 들어선 가게들이 어우러진 신흥시장은 2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새롭게 입점한 가게 주인들은 20, 30대의 젊은 예술인들이다. 이들이 낙후된 해방촌에 둥지를 튼 데는 근처 이태원과 경리단길보다 임대료가 싼 이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방촌의 잠재력을 믿기 때문인 것도 같다.
예쁘게 단장한 공방, 카페가 있는 시장은 생기가 돌았다. 현대적 감각의 새로 입점한 가게와 70, 80년대 모습을 간직한 옛 가게들이 한 지붕 아래 공존하는 신흥시장의 독특한 분위기가 알려지면서 찾아오는 시민들도 많단다. ‘미원’, ‘맛나’ 등 오래된 옛날 상표가 붙은 가게 간판도 그대로 유지했다. 옛것은 무조건 없애버리는 식의 도시재생이 아니라서 다행스럽다. 유명 방송인이 직접 운영한다는 책방도 이곳 신흥시장에 있다. 정해진 날에만 문을 열어 아쉽게도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이 또한 오랫동안 침체됐던 시장을 살리는 하나의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신흥시장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아트마켓’으로 만든다고 한다.
해방촌 골목길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해방촌에 도시재생이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날갯짓을 시작한 것 중의 하나가 동네 책방의 탄생이다. 해방촌 오거리를 지나 비탈진 언덕길 아래에서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있는 이 책방들은 해방촌 골목길을 등불처럼 밝히고 있다.
`Storage book&Film` 책방도 그 중 하나다. 신흥시장을 조금 벗어난 골목길에 문을 연 이 책방은 허름한 주택을 개조했다. 다섯 평 남짓한 작은 서점에는 일반 서점에서 취급하지 않는 잡지와 아트북 등 독립출판물 위주의 책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낙후된 이곳에 개성이 돋보이는 책방이 있다는 것은 해방촌의 또 다른 활력소가 되어준다. 누군가 이곳까지 책방을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신흥시장 주변 골목길에는 이렇듯 개성 강한 책방이 네다섯 곳 더 있다.
해방촌 오거리에서 용산중학교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108 하늘 계단에 이른다. 일제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계단 수가 108개라 ‘108 하늘 계단’이라 불리지만 남산만큼이나 높은 계단을 오르다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108 번뇌가 스칠 것도 같다. 고행길 같은 이 계단을 오랜 세월 숙명처럼 오르내렸을 해방촌 사람들 생각에 사진 찍기가 망설여졌다. 머잖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 108 계단은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질 것이다. 108 계단의 운명은 그동안 고락을 함께한 해방촌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면 어떨까?
여름인데도 남산 아래 첫 동네인 해방촌에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지금은 서울에 산동네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이곳은 저녁을 먹고 언덕에 올라 바람을 쐬던 옛 모습이 남아 있다. 해방촌 사람들은 산등성이의 판잣집으로 터를 잡기 시작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고, 한때는 편물을 밤새워 짜면서 자식을 키우는 고달픈 삶을 살아냈다. 이곳 사람들이 만드는 마을은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잿빛 도시가 아닌 마음속 고향 같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땅거미가 져 돌아오는 길, 녹사평대로에서 바라본 해방촌의 아름다운 밤 풍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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