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현충원...겨레의 아픔 기억하며 달래는 곳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7.06.02. 12:00

수정일 2017.06.05. 13:14

조회 3,108

피끓던 젊은 생의 짧은 기록 ⓒ박분

피끓던 젊은 생의 짧은 기록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나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아픈 계절을 노래한 어느 시인의 싯구가 간절히 와닿는 6월이다. 나라를 위해 살다 가신 이들의 묘역이자 그들의 숭고한 정신이 깃든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갔다.

현충일을 앞두어서인지 현충원은 꽤 분주한 모습이었다. 큰 문이 활짝 열려 있고 물을 뿌리며 청소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영면하고 있는 민족의 성역이다. 지금은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불리는 이곳의 옛 이름은 동작동 국립묘지였다. 국립서울현충원에는 6.25 전사자는 물론 애국지사와 국가유공자 등 국가를 위해 몸 바친 이들이 안장돼 있다.

활짝 핀 꽃시계(좌), 현충원의 상징인 현충탑으로 향하는 시민들 ⓒ박분

활짝 핀 꽃시계(좌), 현충원의 상징인 현충탑으로 향하는 시민들

정문으로 들어서면 시원한 물줄기를 뿜는 ‘충성분수탑’과 ‘꽃시계’를 먼저 보게 된다. 이 둘은 ‘묘지’가 주는 엄숙함과 쓸쓸함을 한결 누그러뜨린다. ‘겨레얼 마당’으로 불리는 현충문 앞 넓은 잔디밭은 들어가 맘껏 뛰어도 될 휴식공간이다.

잔디밭 너머 현충문과 현충탑이 보인다. 마침 해설사의 안내로 참배하는 일행이 있어 동행했다.

묵념을 올리는 시민들 ⓒ박분

묵념을 올리는 시민들

현충원 중심에 위치한 현충탑은 애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살신성인 정신을 상징하는 탑이다. 그윽한 향 내음에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묵념을 올리는 이곳은 영령과 하늘, 땅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3회에 걸쳐 분향을 하고 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묵념을 마친 뒤 해설사는 현충탑 안에 있는 ‘위패봉안관’에도 들어가 보길 권했다.

전사자들의 위패로 빼곡한 위패봉안관을 둘러보는 시민들 ⓒ박분

전사자들의 위패로 빼곡한 위패봉안관을 둘러보는 시민들

현충탑 안 벽면을 가득 메운 것은 6․25 참전 전사자 중 유해를 찾지 못한 10만4,000여 호국용사들의 이름들이다. 용사들의 위패만이 봉안된 이곳은 더없이 조용하다. 흑색 벽면에 흰색 글씨로 새겨진 이름들이 위패를 대신하고 있었다. 전쟁 이후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처 수습하지 못한 채 이름 모를 산야에 홀로 남겨져 있는 용사들의 영혼을 위로하듯 벽면 아래에는 참배객들이 놓고 간 꽃다발이 수북하다.

전사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현승천상 ⓒ박분

전사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현승천상

위패봉안관 중앙에는 ‘영현승천상’이 용사들의 영혼을 추모하고 있다. 영현은 죽은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로서 용사들의 영혼이 하늘로 승천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조각상이다. 위패 아래 제를 올리는 가족들의 모습도 보인다. 가끔은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이 찾아와 오열하고 돌아가기도 한단다.

애틋함을 안겨주는 부부위패비 ⓒ박분

애틋함을 안겨주는 부부위패비

현충탑 뒤편, 꽃다발로 뒤덮인 곳은 부부위패비가 모셔진 곳이다. 태극 문양의 받침돌로 단장한 비석에 ‘육군 일병000배위000’ 이런 식으로 부부들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배위는 사망한 부부 중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애국지사나 국가유공자 등 현충원 안장자에 해당될 경우 함께 봉안할 수 있다. 뒤늦게나마 만났으니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 이 세상에서 못 다한 부부의 연을 부디 하늘에서 다시 잇기를 바라며 묵념을 했다.

나무 아래 부스에서는 6.25 전사자 유가족을 대상으로 유전자 시료채취가 진행 중이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벌이는 이 사업은 발굴된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한 것으로 유전자가 확인되면 정중한 예를 갖춰 현충원에 안장한다.

현충탑을 중심으로 묘역은 국가유공자 묘역, 애국지사 묘역, 상해임시정부요인 묘역 경찰관 묘역 등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 또한, 현충원의 중심을 흐르는 ‘현충천’이라는 시내가 있어 동쪽묘역과 서쪽묘역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지만 네 개의 구름다리가 놓여 주변의 숲길을 운치 있게 잇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익히 봐왔던 강재구 소령도, 1983년 미얀마 아웅산 사태 희생자들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사면에 태극기가 보이는 곳은 유공자 묘역이다. 경찰충혼탑과 국가유공자 묘역을 지나 약수터에 이르면 한강 동작대교와 남산 서울타워가 보인다. 앞으로 한강이 흐르고 뒤로 관악산이 받쳐주고 있어 위로 오를수록 풍광이 수려하다. 푸르른 신록에 정렬한 묘비는 조국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말해주듯 눈부신 흰 빛이다.

푸른 신록 아래 드러난 흰 빛의 묘역이 평화로워 보이는 현충원 ⓒ박분

푸른 신록 아래 드러난 흰 빛의 묘역이 평화로워 보이는 현충원

‘1951년 양구지구에서 전사’, ‘1952년 금화지구에서 전사’… 전쟁의 포화 속에 스러져간 피 끓던 젊은 생을 묘비명은 너무나 짧게 말해주고 있다. 묘역 둘레로 산딸나무꽃이 하얗게 피어 주위는 더욱 평화롭고 아늑한데 묘비 앞의 용사들은 아무런 말이 없다. 장군 묘역, 일반병사 묘역 등으로 구분도 했지만 열을 지어 선 수많은 묘비 앞에 서면 모두 부질없어 보인다.

노부모를 모시고 나온 중년의 부부,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가족도 눈에 띈다. 이곳에 안장된 이들의 유가족도 있겠지만 위로 삼아 찾아온 시민들도 있을 터, 이곳을 찾는 이들의 사연도 묘비만큼 많을 듯싶다.

‘유품전시관’과 ‘사진전시관’은 정문 가까이에 있어 묘역을 살펴본 다음 마지막 코스에 둘러보면 좋다. 사진과 영상매체를 통하여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활동 모습을 접할 수 있는 사진전시관은 이날 내부수리 중이어서 유품전시관만 들렀다.

유품전시관에 전시된 철모와 반합 등이 전쟁의 처참함을 보여주고 있다. ⓒ박분

유품전시관에 전시된 철모와 반합 등이 전쟁의 처참함을 보여주고 있다.

유품전시관은 독립운동가실, 자주국방실, 국가유공자실, 유해발굴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현충원에 안장된 분들이 사용했던 유품을 관람하면서 역사 속 선열들의 삶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전선에서 띄운 병사들의 편지글이 전쟁터에서 찍은 빛바랜 사진과 함께 전시돼 심금을 울린다. 전선의 포화 속에서 병사들은 일손이 모자랄 농번기에 부모님을 도와드리지 못함을 미안해 했고, 아내의 순산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같이 나누지 못함을 안타까워 했다. 그리고 편지 말미에 병사들은 하나같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조국의 땅을 밟아 가족들 품으로 돌아갈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있었다. 포탄을 맞아 구멍 뚫린 철모와 반합(밥 지을 수 있는 밥그릇) 등이 전쟁 당시의 절박했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 현충원에서 나라를 위해 스러져 간 영혼들을 기억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 국립서울현충원
○ 개방시간 : 오전 6시~오후 6시(11~2월 동절기 토요일 및 휴일은 전시관 휴관)
○ 가는 길 : 지하철 4호선 동작역 4번 출구, 9호선 현충원역 8번 출구
○ 문의 : 02-813-9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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