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프라쟈 청년상인이 바꾼 구로시장 풍경

시민기자 이현정

발행일 2016.08.30. 16:47

수정일 2016.10.11. 14:33

조회 3,665

함께 서울 착한 경제 (55) 구로시장 속 청년몰 영프라쟈

재래시장 구석 빈 점포만이 스러질 듯 남겨져 있는 곳, 어두컴컴한 그곳에 톡톡 튀는 개성 만점 상점들이 하나둘 자리 잡아가고 있다. 쇠락한 채 버려졌던 공간이 다시금 깨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청년들이 있다. 낙후된 지역에 둥지를 튼 청년 상인들, 서울의 대표적인 청년몰로 떠오르고 있는 구로시장 ‘영프라쟈’를 찾아가 보았다.

청년상인들의 활동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구로시장 청년몰 영프라쟈

청년상인들의 활동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구로시장 청년몰 영프라쟈

구로공단과 흥망성쇠를 함께 해온 ‘구로시장’에는 왜?

구로시장은 구로공단(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해 왔다. 1960년대 중반 공단이 조성되며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되었고, 70~80년대 구로공단이 한국 수출산업의 전진기지로 번성하며 호황을 누리던 곳이다. 허기를 달래고, 막걸릿잔을 기울이며, 생필품이나 새 옷과 고향에 가져갈 선물 등을 사려는 사람들로 늘 붐비던 시장이었다.

하지만 90년대를 지나며 산업 구조의 변화로 옛 공장들이 하나둘 떠나고, 인근에 백화점과 패션타운이 들어서며 이어진 소비패턴의 변화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나마 위쪽 남구로시장은 식료품 시장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복과 포목 전문시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구로시장은 급격하게 슬럼화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발길도 끊기고, 버려진 듯 남겨진 빈 점포만이 흥청거리던 옛 시절을 추억할 뿐이었다.

노숙자나 비행 청소년들이 술판을 벌인다는 소문만 무성하던 어두운 시장 구석에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2015년. 청년들이 창고마냥 방치되어 있던 빈 점포 몇 곳을 치우고 고쳐 상점을 연 것이다. 마치 복고풍 촬영 세트장 같은 느낌의 상점들은 발랄한 매력을 발산하며, 60~80년대 모습을 간직한 허름한 시장 분위기와 어우러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구로공단 시절에는 부흥했던 곳이지만, 화재가 발생하면서 상점이 거의 소실이 되고, 근 20~30년 간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던 우범지역이었어요. 서울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폐허 수준이었죠. 그런 상태에서 저희가 철거까지 같이했는데, 70~80년대 환타병이나, 옛날 한복, 책이 나오기도 했어요. 쓰레기양도 엄청났고, 철거과정도 진짜 너무너무 힘들었죠. 그렇게 저희가 직접 모든 것을 꾸미고 품을 들이다 보니까 오히려 지금은 내 공간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 같아요.” ‘쾌슈퍼’를 운영하는 변은지 씨는 2015년 1월 영프라쟈가 첫선을 보일 당시부터 함께해온 1기 멤버다.

영프라쟈는 구로구에서 청년상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조성한 공간으로, 최초 보증금과 임대료 일부도 지원한다. 비록 구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이들 청년 상인들은 이처럼 철거도 함께하고, 서로 품앗이해 각 상점 내부를 셀프인테리어로 꾸미는 등 리모델링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삼봉-빠’ 이성미 씨와 ‘포티앤샌디’ 이순예 씨는 지난 4월 선보인 영프라쟈 2기 청년 점포 상인인데, 이들도 역시 직접 인테리어를 하며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4개 상점에서 올해는 총 13개의 청년 상점으로 늘어나며, 분위기도 점점 밝아지고 알아봐 주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영프라쟈 2기. 왼쪽부터 `삼봉-빠`, `청춘주유소`, `포티앤샌디` 청년상인들.

영프라쟈 2기. 왼쪽부터 `삼봉-빠`, `청춘주유소`, `포티앤샌디` 청년상인들.

13가지 색 청년 공간 ‘영프라쟈’

“재래시장과 동네 슈퍼마켓을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이 취미였어요. 슈퍼마켓 특유의 감성이 좋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편의점으로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깝게 다가왔고, 그렇다면 청년들의 시각으로, 우리만의 감성으로 슈퍼마켓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었죠.”

‘쾌락원칙’을 철학으로 인생을 즐겁게 하는 것들을 사고, 팔고, 만들고 알린다는 ‘쾌슈퍼’는 협소한 매장 여건을 고려해 기획전 방식으로 상품을 소개하고 있다. 현재 동남아 식재료를 선보이고 있는데, 요리법도 알려주고 직접 맛보고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쾌슈퍼에서는 쌀국수 컵라면, 똠양꿍라면과 같은 동남아 식재료는 물론, 망고 맥주, 수박 맥주, 대마 맥주, 아이스크림 맥주, 지옥 맥주 등 일반 슈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세계 각국의 특색 있는 맥주도 만날 수 있다.

주인장이 셀렉한 특별한 식재료를 선보이고 있는 취향저격 슈퍼마켓, 쾌슈퍼

주인장이 셀렉한 특별한 식재료를 선보이고 있는 취향저격 슈퍼마켓, 쾌슈퍼

“흑형오징이튀김을 많이들 찾으세요. 오징어컵밥도 좋아하시고, 오징어 하면 집에서 해먹기 번거롭다는 분들이 많아서 저희가 일부러 오징어를 주재료로 잡았거든요. 사실 저흰 푸드트럭을 하고 있었는데, 날씨가 추워져서 가게를 내려고 했어요. 그러던 참에 구로구청 홈페이지에서 청년상인 모집 공고를 보고 신청해서 운 좋게 합격 돼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곳 영프라쟈에는 ‘브라더 오징어’ 이승규 씨처럼 푸드트럭이나 프리마켓 셀러로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해온 청년들도 입점해있다.

무턱대고 큰돈을 들여 창업하기보다는, 이처럼 유명 마켓에서 상품성을 검증하고, 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공간에 입주해 사업 노하우를 익히는 등 조금씩 단계를 밟아가며 창업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선택인 듯싶다. 아울러 자영업자들의 가계 빚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일자리 해법으로 무책임하게 창업의 벼랑 끝으로 내몰기보다 단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생각된다.

`브라더오징어`의 인기 메뉴, 흑형오징어튀김

`브라더오징어`의 인기 메뉴, 흑형오징어튀김

“저희는 매출을 늘리고 홍보를 더 하고 이런 목적보다는 사람들과 같이 꾸려가는 것, 공동체에 대한 희망 때문에 오게 되었어요. 저흰 둘이서만 일하다 보니 사람들과 같이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많이 아쉬웠거든요. 그런데 이곳에선 청년상인들끼리 주간 회의도 하고, 다 같이 페어 전시회 같은 데도 나가며,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좋아요.”

‘땅별상점’ 박지희 씨의 얘기처럼 이곳 영프라쟈는 내 가게보다는 우리를 생각하는 청년 상인들의 공동체이기도 하다. 주간 회의, 팀장 회의 등을 통해 전체적인 운영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매달 셋째 주 열리는 월간행사도 미화 · 기획 · 홍보 · 디자인 4팀으로 나눠 모두가 함께 참여해 준비하고 진행한다.

지희 씨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제법 낯익은 디자인 상품들이 눈에 띈다. 디자인소품 매장에서 종종 보았던 ‘땅별메들이’ 브랜드 상품이었는데, ‘땅별상점’은 바로 이들 캐릭터를 직접 디자인한 박지희, 백유나 두 사람의 작업장이자 상점이었다.

`땅별메들리` 캐릭터 제품을 디자인하고 판매하고 있는 `땅별상점`

`땅별메들리` 캐릭터 제품을 디자인하고 판매하고 있는 `땅별상점`

영프라쟈는 이처럼 개성 있는 청년작가들과 요리사들이 함께 하고 있다. 압화를 이용한 꽃 초상화를 그려주는 카페 겸 문화공간인 ‘아트플라츠’, 1990~2000년대 장난감, 게임기, 과자 등을 만날 수 있는 ‘추억점빵’, 직접 만든 프랑스 자수 제품도 판매하고 수업도 진행하는 ‘자수하는 으녕씨’, 핸드메이드 쥬얼리 제품 만들어 판매하고 금속공예클래스도 운영하는 ‘아우레올라’, 참기름 소믈리에가 전국 각지를 돌며 엄선한 참기름을 선보이는 ‘청춘주유소’, 설탕량을 줄이고 무항생제 달걀 등을 사용해 건강하게 만든 머랭과 마카롱이 있는 디저트 전문 카페 ‘삼봉-빠’, 영국식 헬시 패스트푸드 판매점 ‘포티앤샌디’, 하와이안 새우요리 전문점 ‘하와이앤쉬림프’, 명란밥과 오코노미야끼 등을 맛볼 수 있는 선술집 ‘입춘’, 파스타와 샐러드 같은 요리와 스몰 플레이트와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아르님’ 등이 입주해있다.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과 함께 성장하는 청년상가

매달 영프라쟈에서는 월간행사 ‘구로다 삼각지대’가 열린다. 무더위 속에 진행된 지난 8월 행사는 바캉스편으로 진행되었다. 안쪽 작은 광장에서는 버스킹 공연도 열리고, 아이들을 위한 미니 풀장도 준비되었다. 상점 사이사이 골목에는 풍선 다트 게임, 미니 당구대, 얼음 위에서 버티기 등 놀 거리 즐길 거리가 숨겨져 있다.

청년상인들이 준비한 월간행사에서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

청년상인들이 준비한 월간행사에서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

“평소에도 자주 와요. 일반 시장하고 다른 젊은 분위기에 저까지도 젊어지는 것 같아 좋아요.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은 구경하는 재미도 크고요.” 지역 주민 송태라 씨는 머랭 쿠키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삼봉-빠’에 들렀다가 추억점빵도 구경하고 다양한 행사도 참여하며 즐거워 했다.

이 날 영프라쟈에서 만난 시민들 대부분은 지역 주민들이었다. 아파트 게시판이나 주변 소개로 알게 돼 종종 들른다는데, 중국계 상점들이 대다수인 지역 특성상 이와 같은 청년 공간에 대한 주민들의 만족도가 더 높은 듯 보였다. 물론, 가끔 언론에 소개된 내용을 보고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주변에 나들이 삼아 함께 들를 명소가 없다 보니 이곳 영프라쟈만 보고 찾아오긴 쉽지 않은 모양이다. 다문화 시장으로 바뀌고 있는 남구로 시장이나 구로공단의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는 가리봉동 벌집이나 가산디지털 단지 등과 연계한 이야기가 있는 도보여행 코스를 개발한다면, 좀 더 많은 이들이 찾지 않을까 생각된다.

영프라쟈는 구로시장 남쪽 빈 점포들 사이에 있어 찾기가 쉽지 않고, 각 청년 점포들 특성상 영업시간이 제각각이다. 영프라자 홈페이지페이스북등에서 확인한 후 찾아가는 것이 좋겠다.

이현정 시민기자이현정 시민기자는 '협동조합에서 협동조합을 배우다'라는 기사를 묶어 <지금 여기 협동조합>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협동조합이 서민들의 작은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녀는 끊임없이 협동조합을 찾아다니며 기사를 써왔다. 올해부터는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자리 잡은 협동조합부터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자활기업에 이르기까지 공익성을 가진 단체들의 사회적 경제 활동을 소개하고 이들에게서 배운 유용한 생활정보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그녀가 정리한 알짜 정보를 통해 '이익'보다는 '사람'이 우선이 되는 대안 경제의 모습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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