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역 구둣방에 살던 천사, 하늘로 떠나고

최경

발행일 2016.07.22. 16:02

수정일 2016.07.22. 17:30

조회 4,339

구두ⓒ시민작가 문청야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32)

지하철 당산역 일대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상가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밀집돼 있는 당산역 근처 거리엔 1평 남짓한 작은 구둣방이 하나 있었다. 늘 그곳에 있어서 오히려 존재감이 없었던 그 구둣방의 철문이 굳게 닫힌 채 주인이 나타나지 않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중순. 구둣방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메모가 붙기 시작했다. 모두 구둣방 주인에게 쓰는 편지들이었다.

‘성실함이 무엇인지 알려주신 아저씨 잊지 않을게요.’

‘친구! 당신의 삶에 대한 의지는 우리들의 본보기였소.’

‘아저씨 행복하세요. 감사했습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시던 아저씨. 늦은 시간에 겨우 찾으러 온 제게 보여줬던 그 미소를 잊을 수 없습니다.’

‘항상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정말 감동스러웠습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구둣방 주인은 58세 강상호씨. 지난 30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휴일에도 쉬는 법 없이 항상 구둣방 문을 열었던 그는 자정 넘어 퇴근하던 길에 과속으로 달려오던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오토바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졌고, 강씨도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의 부고가 알려지자, 구둣방을 드나들었던 이와 이웃들과 친구들이 추모의 글들을 붙여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구둣방 천사’라고 부르고 있었다. 왜 많은 이들이 그토록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사실 강상호씨는 뇌성마비로 인해 한쪽 팔, 다리가 불편한 1급 지체장애인이었다. 장애 때문에 말하는 것도 어눌했지만 그는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늘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 화를 내는 법 없이 늘 환한 미소로 답했다는 강씨. 추운 겨울도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도 비좁은 구둣방에 앉아 열심히 구두를 닦고 고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강씨의 구둣방에서 구두를 고친 적 있었다는 한 30대 직장인은 이렇게 말했다.

“직장생활에 회의감도 생기고 그럴 때였는데 아저씨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뭔가 느끼는 점이 많았고, 지나갈 때 보면 몸이 불편한데 저렇게 열심히 일하시는데 내가 너무 불평이 많았나 그런 생각도 하고 그랬어요. 아저씨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아저씨가 참 좋아하셨을 텐데... 그런 말을 좀 해볼 걸 이제 와서 후회돼요.”

강상호씨는 당산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했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뒤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구두닦이와 목욕탕 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다. 몸은 불편했지만 그것이 그의 삶의 의지를 꺾진 못했다. 그러다 30년 전, 결혼을 했고, 아들이 생겼다. 그때부터 강씨는 구둣방을 열어 더 치열하게 일을 하며 가장의 삶을 살아냈다. 아내와 아들이 지적장애인이어서 가장의 무게는 더 무거웠을 것이다. 그러다 구둣방 수입이 변변치 않게 되면서 겨울에 군고구마를 팔고, 봄에는 여의도 벚꽃 축제기간이 되면 거리에서 군것질 거리를 팔았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놀랍게도 그는 자신보다 처지가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있었다. 교통사고가 나던 그날도 그의 오토바이엔 폐지가 가득 실려 있었는데, 강씨가 틈나는 대로 골목을 돌며 모은 것들이었다. 집 근처에 사는 한 폐지 줍는 할머니에게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폐지 할머니는 강씨의 소식을 듣고 몹시 놀라며 슬퍼했다. 하지 말라고 해도 리어커 옆에 몰래 폐지들을 쌓아놓고 가곤 했다는 강씨는 가끔 할머니를 모시고 나가 밥도 사주고, 소풍도 데리고 다녔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그의 가슴 속에는 무엇이 있었던 걸까? 한번은 친구가 그 모습이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물어봤다고 한다.

“너도 힘든데 왜 자꾸 그렇게 남들을 도와주냐고 물었더니 상호가 ‘갈 때 갖고 가는 것도 아닌데’ 그러더라고요. 그 말에 참 마음이 찔렸죠. 저 같은 사람은...”

사실 강상호씨는 며칠 후면 새 구둣방으로 이전할 예정이었다. 그동안은 무허가 구둣방이어서 늘 철거될까봐 불안해했었는데, 이번에 장애인 특례를 통해 허가 받은 구둣방에서 맘 편히 일할 수 있게 됐던 것이다. 맘 편히 일하고 싶다는 그의 평생소원을 이룰 날이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그렇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두어 달 뒤, 그가 30년을 보낸 주인 잃은 구둣방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거리는 언제 그곳에 구둣방이 있었냐는 듯 무심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로 채워졌다.

이제 당산동 그 거리에 강씨의 다정하고 따뜻하던 미소도, 구둣방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지만,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산다는 것이, 성실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주고 떠난 구둣방 천사 강상호씨의 아름다웠던 삶을.

그리고 그가 선물해준 행복한 기억은 오래도록 그곳에 머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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