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6.06.03. 13:31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상대와 내가 분리된 존재임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상대가 내 속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분리된 아주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그에게 어찌 감사한 마음이 안 들겠는가. -- 김혜남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중에서 |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26
거칠고 모진 세상에서는 상처 입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 치명상이 아니더라도 찰과상을 입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내상을 입는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말이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 입힌다.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는, 사랑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가족들끼리도 마찬가지다.
부모에게서 학대와 방임을 당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와 반대로 자식에게서 상처 입는 부모들도 있다. 흔히들 한국보다 10년쯤 앞선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는 일본 사회에서는 이미 몇 해 전부터 ‘가정 폭력’이라는 용어가 남편이 아내에게가 아닌, 자식이 부모에게 행하는 폭력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한다. 언론의 뉴스거리가 될 만큼 대단한 사건 사고가 아닐지라도 평범한 사람들도 비밀히 아프다. 제대로 사랑하지 못해서 아프다. 사랑해서 아프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괴롭다.
명절이면 고속버스터미널에는 귀향할 때의 짐보다 더 많은 꾸러미들을 주렁주렁 매단 사람들과 그들을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이 가득하다. 언젠가 그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보이는 두 사람을 보았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 때문에 큰 소리를 내서 싸우진 못했지만 분명 심각하게 다투고 있었다. 특히 딸이 어머니에게 무언가 크게 화가 난 듯 입술을 깨물며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다가 갑자기 짐 보따리를 낚아채 자리를 떠나버렸다. 어머니는, 그 늙은 몸과 낡은 표정의 여자는 딸이 떠난 자리에 빈손으로 선 채 울었다. 그리고 나는 기다리던 서울행 버스에 승차했을 때, 젊은 몸을 가졌으나 낡은 표정을 한 딸이 차창에 기댄 채 울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들은 사랑했을 것이다. 최소한 한때 서로의 지극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부모가 늙고 자식이 자라면 떠나가고 떠나보내며 서서히 사랑을 표현하기가 낯설어졌을 것이다. 그래야 마땅하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에까지 그토록 이를 악물고 미워하며 악다구니치는 관계라면, 그들은 여전히 예전의 사랑에 대한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 테다.
나 또한 아이가 내게 퉁명스럽게 굴면 나도 모르게 섭섭해지고 분노하기까지 한다. 여전히 내 머리 속에서 그는 내 손을 놓치면 세상을 잃을 듯이 매달리던 아이이고, 나와 완전히 분리된 독립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자식을 남의 자식처럼, 남의 자식을 내 자식처럼 여겨야 진정 성숙한 부모이자 어른이라는데, 알면서도, 그게 참 쉽지 않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모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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