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꽃계단, 이화벽화마을에 무슨 일이?
정석
발행일 2016.05.03. 17:56

이화벽화마을 꽃계단과 물고기그림, 지난 3월 누군가가 이 그림을 페인트로 지워버렸다
정석 교수의 ‘서울 곁으로’ (14) 이화마을 벽화훼손 사건의 이면
벽화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이화마을에서 최근 벽화훼손 사건이 일어났다. 2016년 3월 15일 밤에 주민 몇 명이 타일로 꾸민 꽃그림 계단을 회색 페인트로 칠해버렸다. 23일 밤에는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던 계단도 페인트로 지워졌다. 계단 가까운 담과 벽에는 붉은색 페인트로 “주거지에 관광지가 웬 말이냐, 주민들도 편히 쉬고 싶다.” “관광객들 가벼운 발걸음에 주민들 재산 훨훨 날아가네.”와 같은 불만과 요구사항도 적었다.
갑작스러운 벽화훼손에 이화마을을 찾아온 관광객들도 당황했고, 신문과 방송들도 연일 뜨거운 뉴스로 보도하고 있다. 벽화를 그린 작가와 벽화훼손에 분개한 주민 50여명은 벽화를 훼손한 이들을 경찰에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화마을 벽화훼손 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겉으로 들어난 현상은 이화마을 주민의 일부가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불만을 벽화훼손 행위로 표출한 것이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잠복해있던 여러 가지 갈등들이 복합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재개발사업>을 원하는 주민과 <재생사업>을 원하는 주민들 간의 갈등이다. 당초 이화마을은 재개발사업이 추진되던 곳이다. 그러나 한양도성에 인접한데다가 사업성이 크지 않아 재개발사업 추진이 여의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는 성북구 장수마을을 시작으로 한양도성 가까이에 위치한 성곽마을들을 고층아파트로 재개발하는 대신, 집도 고치고 길도 고치며 필요한 편의시설과 기반시설을 정비해주는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해왔는데 이화마을도 그 가운데 하나다. 서울시와 전문가들은 주민들 의견을 수렴하면서 이화마을 주거환경관리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오래된 마을의 건물과 길을 몽땅 철거하고 아파트로 바꾸는 <재개발사업>과, 집도 길도 마을도 고쳐서 오래오래 쓰고자 하는 <재생사업>은 확연히 다르다. 같은 마을에 사는 주민일지라도 입장과 기대치에 따라 누구는 재개발을 원하고 누구는 재생사업을 원할 것이다. 소유주인지 세입자인지, 소유주도 현지에 사는지 아니면 부재지주인지에 따라 기대가 다를 테고, 마을에 오래오래 살고자 하는지 또는 얼른 팔고 마을을 떠나려 하는지에 따라 <재개발사업> 또는 <재생사업>에 대한 선호와 찬반이 확연히 갈라질 것이다.
드러난 행위는 벽화훼손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재생사업에 대한 분명한 반대의사로 읽혀진다. 이화마을 주민 140가구 가운데 재생사업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약 30가구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벽화훼손을 주도한 사람들도 재생사업 반대 주민들이고, 직접적 계기는 상업용도에 대한 용도제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마을이 관광지처럼 변해 쓰레기와 소음과 사생활침해를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무분별한 상업화를 막는 용도제한 조치가 필요할 텐데 용도제한에 민감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용도제한이 있을 경우 부동산가치 상승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갈등은, 유명해진 벽화마을들이 두루 겪고 있는 주거환경 침해 문제다. 사람 사는 마을이 관광지화 됨에 따라 주민들은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온갖 불편을 시도 때도 없이 겪고 있다. 그 불만이 벽화훼손으로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용인민속촌이나 남산골 한옥마을처럼 사람들이 살지 않는 관광지와 북촌, 이화마을, 전주한옥마을, 부산 감천문화마을은 같지 않다.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이화마을 뿐만 아니라 유명세를 치르는 마을들 모두가 심각한 피해를 겪고 있다.
이화마을에 처음 벽화가 그려진 것은 2006년이다. 문화관광부가 공공미술을 통한 소외지역 환경개선 목적으로 <낙산프로젝트>를 추진하였고 그 결과로 해바라기와 잉어계단 등 16점의 벽화가 그려졌다. 이화마을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2010년 TV 프로그램 <1박2일>에 등장하면서였다. 유명 탤런트가 꽃계단과 날개벽화 앞에서 찍은 영상이 널리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폭증했고, 주민들이 극심한 불편을 호소하자 결국 벽화를 그린 작가가 스스로 날개 그림을 지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주거지의 지나친 관광지화는 막아야 한다. 관광객 수의 증가를 마치 성공한 행정의 지표처럼 인식하고 주차장 등 관광편의시설을 더욱 늘리는 지방자치단체들도 많은데 바람직한 대응이 아니다. 관광도 지속가능하려면 너무 달아오르지 않도록 제어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관광객의 수를 제한하고 관광을 불편하게 함으로써 과속과 과열을 막아야 한다. 유명해진 마을이라 해도 마을은 마을이다. 마을에서는 관광보다도 주민들의 삶을 최우선으로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마을도 살고 관광도 살 것이다.
이화마을 벽화훼손 사건을 지켜보면서 <도시재생>의 본질과 접근방법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 벽화는 재생의 작은 시작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재생의 본질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보기 좋은 화장이나 예쁜 옷차림 같은 것이다. 마을재생, 도시재생의 본질 또한 주민의 삶이다. 서로 다른 입장,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주민들이 함께 공유하는 공익(共益)의 실마리를 찾고, 모두를 위한 공익(公益)에 이를 수 있도록 긴 호흡으로 소통해야 한다. 모래알 주민이 아닌 공동체 주민을 이루어야 한다. 마을조차 돈벌이 상품으로 호시탐탐 노리는 부동산시장과 자본의 손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주민공동체가 튼튼해져야 한다. 행정의 역할, 전문가의 역할, 마을활동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중 으뜸은 역시 주민공동체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벽화훼손은 잠복해있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아픈 상처로 남을 수도 있고, 치유의 계기와 공동체를 더욱 굳건히 다지는 전기가 될 수도 있다. 뜻밖의 사건을 겪으며 화도 나고 속도 상했을 이화마을 주민들이 마음을 열고 마음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갈등 없는 마을은 없다. 갈등을 함께 건너면서 공동체는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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