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소증 4형제, 그들이 사는 세상

최경

발행일 2016.04.28. 15:51

수정일 2016.04.28. 17:05

조회 1,368

바다ⓒ뉴시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22)

‘백설공주’에게는 항상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는 일곱 명의 친구들이 있다. 어려움에 처한 공주에게 기꺼이 잠자리를 내어주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키 작은 친구들, 바로 어릴 때 책장이 닳도록 읽었던 동화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소위 일곱 난쟁이들이다. 동화책 속 그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있을까? 항상 품어오던 궁금증이었다. 그러다 4형제를 만난 건, 미니시리즈 형식의 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집필할 때였다. 당시 나는 휴먼다큐의 주인공이 될 왜소증을 가진 장애인 가족들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지방의 한 대도시에서 함께 모여 사는 4형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설마 한 두 명도 아니고 네 형제 모두 왜소증이라는 말이 사실일까? 둘째 황세영씨와 첫 통화를 하면서도 긴가 민가 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키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세영씨는 쿨하게 답했다.

“저요? 한 110센티미터 될 낍니더. 동생요? 동생들은 저보다 좀 크지 싶네요. 제가 젤 작아요. 그래도 우리 집 대장이 접니더. 우리 낼모레 서울 올라갈낀데 한번 와보셔도 되고요.”

당시 세영씨는 동생들과 중국동포인 아내와 함께 전국을 다니며 천막공연을 하고 있다며 때마침 서울에 일정이 있다고 했다. 다음날, 나는 PD와 함께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우리는 형제들이 TV 출연에 대해 거부감이 전혀 없는데 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을까 의아해했다. 혹시 우리가 찾는 그 키 작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키가 평균보다 조금 작은 정도는 아닐까. 온갖 상상을 다 하며 만나기로 한 곳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차 한 대가 들어와 멈추고 차문이 열리더니 정말로 동화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키 작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는 게 아닌가. 작은 거인 4형제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형제들은 연골무형성증이라는 유전질환을 안고 태어나, 평생 왜소증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이었다. 아버지도 왜소증 장애인이었고, 어머니는 하나라도 멀쩡한 자식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아들 넷을 낳았지만 모두 아버지를 닮은 왜소증이었다고 했다. 4형제 중 큰아들은 따로 살고 있었지만, 나머지 셋은 조그만 아파트 아래 위층에서 살면서 매일 얼굴을 맞대며 살고 있었다. 형제들은 함께여서인지 늘 밝고 쾌활했으며 낙천적이었다. 물론 세상의 온갖 편견으로 받는 상처들이 수두룩했지만 그것마저도 형제들은 깊게 고민하거나 그걸로 좌절하지 않았다. 늘 투닥거리고 싸우면서도 하룻밤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마주보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특히 막내 정영씨는 당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생계를 위해 형제들이 함께 천막공연을 다녀야 했던 정영씨는 수시로 학교수업을 조퇴하곤 했다.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합류하기 위해 혼자 역으로 가서 기차에 오르는 정영씨의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그가 거인국에 잠시 여행을 온 걸리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인생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여행이라지 않은가. 형제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고민을 하며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애환이 우리네 삶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다만 높고 큰 세상의 벽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위해 우리가 문을 열어야 하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형제들은 씩씩하게 사회의 일원으로 성실히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가 열어야 할 문은 아직 활짝 열리지 않았다.

#최경 #사람기억 #세상풍경 #왜소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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