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VS 컴퓨터, 막 오른 세기의 대결
최순욱
발행일 2016.03.09. 15:12

9일 열린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의 첫 대국 장면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21) : 바둑 - 앞으로만 가는 타임머신
오늘(9일)부터 한국이 자랑하는 천재 프로기사 이세돌과 구글의 최신 인공지능 알파고 간의 바둑 대결이 시작된다. 대국은 9일부터 5일 간, 하루 한 차례씩 총 다섯 번이 진행되며 모든 대국 상황은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다.
컴퓨터가 체스에서 인간을 이기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말부터다. 헌데 바둑에 도전하기까지는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바둑과 체스의 특성이 달라서다. 체스는 ‘움직이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여섯 종류의 말(총 16개)을 움직여 내 공격범위에 있는 상대의 왕을 다음 한 수로 내 말의 공격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면 승리한다’는 명확한 승리조건이 있다. 한번 죽은 말은 다시 경기로 돌아오지 않는다. 반면 ‘내가 가진 집의 수가 상대방의 집보다 많아야 한다’는 바둑의 승리조건은 체스의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불명확하다. 돌들 간의 차이도 없다. 게다가 만들어진 집 안에 돌을 또 놓을 수 있기 때문에 한 판의 대국에 사용되는 돌의 수도 사실상 제한이 없다. 게다가 바둑판을 배열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의 170승으로 사실상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에 바둑에서는 계산보다도 직관에 기댄, 전체적인 형세판단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바둑의 특성은 이른바 ‘앞으로만 가는 타임머신’으로 옛날부터 악명(?)이 높았다. 바둑을 두다보면 다른 것들은 까맣게 잊게 되고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빗댄 재미난 이야기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의 ‘술이기(述異記)’라는 책에 전해지는 이야기다. 왕질이란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갔다가 동자 둘이 두는 바둑 한판 구경하고 내려왔더니 수백 년이 지나 있었더라는 것이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이야기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이런 장면도 나온다. 촉나라의 관우가 위나라의 방덕과 싸우다 팔에 독화살을 맞았는데, 나중에는 상처에서 열이 나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 때 전설의 신의(神醫) 화타가 찾아와 상처를 보고 “독이 뼈까지 침투했으니 오염된 살을 도려내고 뼈를 긁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관우는 그러자고 했고, 화타는 수술 전에 먼저 관우의 몸을 묶으려 했다. 하지만 관우는 다 필요 없고 바둑판과 술을 대령하라 한 후 화타가 한 팔을 치료할 동안 다른 한 팔로 촉 진영에 있던 재사 마량과 바둑을 두겠다 말한다. 화타는 관우의 말대로 수술에 들어갔고 관우는 신음소리는커녕 미동도 없이 바둑을 두었고 수술이 끝날 무렵 마량과 두던 바둑 한 판도 거의 끝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보통 이 이야기를 투신에 버금가는 관우의 대담함과 용력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걸 잊게 해 주는 바둑의 마취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오늘부터 벌어지는 쎈돌과 알파고 간의 다섯 대국은 바둑 팬들과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있어 결코 놓칠 수 없는, 그야말로 세기의 이벤트일 것이다. 전 세계의 이목도 여기에 쏠릴 테니 우리 모두는 이제 앞으로만 가는 타임머신을 탄 것과 마찬가지다. 5일간 온통 여기에 정신이 팔려서 다른 일을 소홀히 할 사람도 많겠지만 뭐 어떤가. 공자도 “아무것도 안 하느니보단 바둑이나 장기라도 두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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