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가 어때서?
최순욱
발행일 2016.02.17. 14:50

Foster, Mary H. 가 1901년에 묘사한 스카디의 모습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18) ‘돌싱(돌아온 싱글)’들에게 보내는 응원
북유럽 신화에는 스카디(Skadi)라는 여신이 등장한다. 본디 티아지라고 하는 거인의 딸로, 눈 덮인 차가운 겨울 산에서 스키를 탄 채 활을 쏘는, 용감하고 난폭하면서도 대담무쌍한 사냥꾼이자 여장부다. 티아지는 청춘의 여신을 납치했다가 신들에게 살해당했는데, 이걸 안 스카디가 분연히 일어나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싸움을 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신들은 스카디와 싸우길 원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버지의 죽음에 분노한 자식을 함부로 대하기가 어려워서였을 것이다. 신들은 처음에 원하는 만큼 금은보화를 줄 테니 화를 누그러뜨리라 했지만 스카디는 이를 거부하고 새로운 두 가지 화해의 조건을 내 걸었다. 하나는 신들 중에서 자신의 남편감을 내 놓으라는 것, 다른 하나는 분노로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스카디는 이 때 신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정평이 나 있는 발더를 신랑감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신들이 난감해하고 있을 때 북유럽 신화 최고의 꾀보이자 말썽꾸러기, 재앙의 화근인 로키가 끼어들었다. 남편감을 신들 중에서 스카디가 직접 고르되, 발만 보고 고르게 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신들과 스카디 모두 동의했고 곧바로 신들은 발목 부근까지만 걷어 올린 장막 뒤에 서서 스카디의 선택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발마다 이런저런 특징이 있었을 텐데, 스카디가 자신있게 선택한 발은 뭇 사람들 중에서 가장 하얀 발이었다. 발더가 가장 아름다운 신이니, 발도 가장 하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장막 뒤에서 등장한 발의 주인은 아뿔싸, 신들 중에서도 인물이 가장 못난 축에 속하는 항해와 바다, 고기잡이의 신 뇨르드였다. 오랜 시간 항해를 한 그의 얼굴엔 세찬 바닷바람이 낸 상처가 수많은 주름으로 그대로 남아 있었고 피부도 바다의 태양 아래 온통 거무스름하게 타 있었다. 뇨르드의 발이 가장 하얗다는 걸 알고 있던 로키에게 스카디가 낚이고 만 것이다.
분노한 스카디는 두 번째 조건이 아직 남아있다고 했지만, 이번에도 로키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로키가 자신의 고환에 묶은 줄을 염소의 수염에 묶고 그녀 앞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도저히 웃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들의 축복 속에 뇨르드와 스카디의 성대한 결혼식이 치러지게 됐다. 이때부터 거인이었던 스카디도 정식으로 신에 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신랑과 신부가 신접살림을 차리고 싶어 했던 곳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뇨르드는 바다에 있는 자신의 거처에서 살기를 원했다. 스카디는 높은 산이 아닌 곳에서는 살 수 없다고 우겼다. 긴 밀당 끝에 겨우 절충한 의견은 아흐레 밤은 바다에서, 또 다음 아흐레 밤은 산에서, 이렇게 집을 옮겨가며 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방안도 종국에는 소용이 없었다. 뇨르드는 바위만 가득하고 물소리라고는 들을 수가 없는 산에 통 정을 붙일 수가 없었고 스카디는 소금기운이 가득한 바닷바람을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둘은 서로의 거처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끝내는 갈라서고 말았다. 스카디는 이혼 후에 산비탈을 스키로 내달리며 활이나 창으로 동물들을 사냥하는 행복한 삶을 살았고, 결국 산 사냥꾼과 스키어들의 수호신이 되었다. 북구의 땅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 반도의 이름도 스카디에게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후에는 울(Ullr)이라는 신과 결혼해 자식을 여럿 남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갑자기 스카디 이야기를 한 건 어제 지인 중 한 명이 이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찾아보니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에서는 9위, 아시아 회원국 중에서는 1위라는 이야기라고 한다. 최근에는 드라마에도 이른바 `돌싱` 설정의 인물들이 부쩍 많이 나오는 것 같고, 이런저런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출연자들의 이혼 이야기가 흠이 되는 것 같지도 않다. 생각해보니 주변에도 돌싱들이 몇 있는데, 다들 멋지고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돌싱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스카디처럼 자신의 행복을 멋지게 찾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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