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쓰면 어떡하지’라는 공포심
강원국
발행일 2015.12.07. 16:02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9) 시간을 활용한 글쓰기
글쓰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써야 한다는 것 때문에 글쓰기가 힘들다.
오죽하면 마감시간을 ‘데드라인’이라 하겠는가.
어차피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마감시한도 긍정적으로 보면 글쓰기를 독려하는 힘이 된다.
특히 의지만으로는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 글쓰기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과 공포인 사람에게는 효과 만점이다.
나는 책을 쓸 때, 스스로 마감시한을 만들었다.
온라인 매체에 글쓰기 칼럼을 매주 게재하기로 약속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매주 한 편씩 써야 하는 글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그 당시,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왠지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고,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원고 마감 전날이었다.
할 수 없이 컴퓨터를 켜고 꾸역꾸역 글을 썼다.
어느 때는 ‘못 쓰면 어떡하지’ 라는 공포심에서, 또 어떤 때에는 ‘웬일로 이렇게 술술 써지지’ 의아해하며 글을 썼다.
그 힘으로 나온 게 <대통령의 글쓰기>다.
지금 쓰고 있는 <글쓰기 필살기> 역시 월요일에 게재되니 마감시한이 일요일 자정까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나 스스로 데드라인을 수요일로 정했다.
사흘을 앞당긴 것이다.
아니, 첫 회 쓸 때 한 번만 사흘 앞서 썼다.
그 다음부턴 매주 한 편씩 똑같다.
그러나 효과는 놀라웠다.
글쓰기가 훨씬 수월하다.
쥐어짜듯 쓰지 않게 됐다.
과장해서 말하면 즐겁기까지 하다.
사흘간의 여유가 가져다준 즐거움이다.
스스로 마감시간을 만들거나, 마감시한을 앞당겨 쓰는 것 외에도 ‘시간’과 글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글은 들인 시간을 만큼 좋아진다.
원숭이에게 타자기를 주고 아무 키나 누르게 했다.
시간이 흐르니 <햄릿>의 일부를 원문 그대로 타이핑했다.
시간만 들이면 원숭이도 셰익스피어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야 일러 무엇 하리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시간을 많이 들이면 된다.
괴테는 60년간 <파우스트>를 썼다.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오듯, 써질 때까지 시간을 들이면 반드시 써지는 게 글이다.
그러나 이런 직장 상사는 곤란하다.
“시간을 충분히 줄 테니 가급적 빨리 써라.”
가급적 빨리 쓰는 걸 원한다면 글의 품질은 시간에 양보해야 한다.
일정한 시간만큼 글을 써보자.
5분이면 5분, 10분이면 10분, 시간과 주제를 정해놓고 그 시간 동안 무념무상으로 쓰는 것이다.
쓸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는다’고 써서라도 정한 시간을 채운다.
글 쓰는 시간도 아침 7시, 밤 10시 등 일정한 시간대를 정해놓고 지킨다.
매일 이런 식으로 석 달 정도만 훈련하면, 야구선수가 반사적으로 공을 쳐내는 것처럼 손가락이 자판 위를 날아다닐 수 있게 된다.
글 쓰는 시간을 옮겨가면서 써보는 것도 좋다.
어느 시간에는 안 써지던 글이 다른 때 쓰면 잘 써진다.
글의 종류에 따라서도 잘 써지는 시간대가 있다.
그 시간은 오전, 오후 등 물리적인 시간만도 아니다.
우울한 시간에 잘 써지는 글이 있고, 한껏 들떴을 때 잘 써지는 글이 있다.
시시때때로 옮겨 다니면서 써봐야 자신에게 맞는 시간대를 알 수 있다.
시간을 촉박하게 정해놓고 쓰는 것도 방법이다.
시간이 많으면 쓸데없는 욕심을 내게 된다.
일부러 시간을 짧게 잡고, 그때까지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마친다는 생각으로 쓴다.
그러면 오히려 글이 좋아지기도 한다.
야구선수가 방망이를 짧게 잡고 출루만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잘 칠 수 있는 것처럼.
시간이 남으면 뱀 다리(蛇足)까지 그리게 된다.
끝으로, 독자의 시간을 존중하는 글을 쓰자.
글은 읽는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다. 독자의 시간을 먹고 사는 게 글이다. 100 사람이 2시간씩 내 글을 읽으면 나는 200시간을 빼앗는 셈이다.
그러므로 간결할수록 좋다.
간결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내 시간을 더 써야 한다.
머릿속 숙성 시간과 퇴고 시간을 충분히 써야 한다.
글을 쓰다 보면 내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글이 술술 풀리는 시간이 온다.
그런 시간이 되기 전에 설익은 글을 내놓으면 독자들 머릿속이 캄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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