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가장 동쪽 농촌 마을 '가래여울'
발행일 2015.03.19. 15:35

가래여울에 가장 오래 있었던 가게, 추탄상회
서울 가장 동쪽에 위치한 강동구, 그 중에서도 가장 동쪽에 위치한 강일동은 현재 뉴타운 사업으로 인하여 많은 아파트가 숲처럼 빽빽하다. 하지만 강일동 끝머리에는,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는 한적한 농촌마을이자, 한 성씨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가래여울이다.
원래 서울에도 경주 최씨의 광명마을, 창녕 조씨의 염통골 등 집성촌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서울의 끝머리에 위치하고 있어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집성촌들이 점점 뉴타운 사업, 재개발 사업 등으로 인해 해체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4군데 정도의 마을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가래여울은 본디 한강의 상류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지역에서 양화나루, 뚝섬 등지로 이동하던 배들이 집결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가래나무가 많이 나고, 한강의 상류물이 좁은 길목을 통과한다고 해서 가래여울이라고 하였다. 이곳 강가에 살던 영의정 오윤겸은 '가래 추'자와 '여울 탄'자를 따서 '추탄'이라는 자신의 호를 지었다고 한다.

스프레이로 그은 듯한 주차금지 표식 아래로 연탄재가 가득히 놓여있다(좌), 가래여울 마을 초입에는 마을 유래비가 놓여있다(우)
적어도 250년 전부터 남평 문씨들이 정착했다는 가래여울은 홍수가 잦았다고 한다. 올림픽대로를 만들고 제방을 쌓고 자전거도로를 짓기 전까지는 홍수가 날 때마다 자주 사라졌고, 1925년의 대홍수 때에는 모든 가옥이 물에 잠겨 집을 모두 새로 지었다고 할 정도다.
원체 가래여울과 인접한 평지에는 청송 심씨가 모여 살았던 벌말이 있었는데, 강일지구 개발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어 가래여울 하나만이 남게 되었다. 가래여울은 강 건너 구리시와 등 뒤의 강일동이 개발되는 동안 상수원 보호구역, 군사보호구역, 그린벨트 등 무려 3개의 개발 제한구역에 걸려있어 개발이 불가능한 지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높은 건물은 당연히 지을 수 없고, 한옥마저도 더 지을 수 없다고 한다.

가래여울까지 들어오는 강동02번 버스
주민의 대부분은 농사를 짓고 있다. 서너 가구는 바로 건너편에 조성된 자전거길에 접해있는 민물고기 음식점을 하고 있다. 흡사 시골마을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마을 안의 가게는 마을 초입에 있는 추탄상회, 단 하나다. 평상이 놓여있고 느티나무가 가게 앞을 버티고 있는 모습은 흡사 시골마을의 가게 같다.

비닐하우스 위로 해가 떨어지려 하고 있다
마을의 주변에는 비닐하우스와 밭이 널려있다. 강동구 주민들을 위한 주말농장도 운영되고 있다. 너른 땅의 북쪽을 한강이, 서쪽을 외곽순환고속도로가, 남쪽을 올림픽대로가 막고 있으니, 그야말로 육지 위의 섬과 같은 마을이다.
앞으로 가래여울의 맞은편에 있는 일자마을도 강일 보금자리지구에 편입되어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강일동의 옛 풍경이 담긴 마을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이야기이다. 다만 가래여울은 군사 및 상수도 보호를 위해 앞으로도 개발 제한 상태가 유지될 예정이다.
마곡, 내곡 등 서울에서도 여러 곳이 개발로 인해 서울답지 않은 이질적인 모습을 완전히 잃어가고 있다. 비록 끄트머리에 있지만 강일동 가래여울 마을을 보며, 예전에는 서울도 논밭 가득한 시골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언제까지나 지속되었으면 하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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