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탕의 '원조', 응암동 대림시장!

두 바퀴 서울여행 (33) 오일마다 찾아가는 재미가 있는 은평구 응암동 대림시장

대림시장 입구에 있는 명물 감잣국 가게

서울엔 '대림시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통시장이 두 군데 있다. 중국 동포들의 삶과 먹거리가 이채로운 영등포구 도림천변의 대림중앙시장과 은평구 불광천 가의 대림시장이 그곳. 북한산의 늠름한 봉우리가 병풍처럼 떡하니 펼쳐진 전망 좋은 불광천 길을 달리다 새절역에서 응암동 동네로 들어서면 대림시장이 나온다. 1960년대 후반 시장통이 형성된 대림시장, 들머리에서부터 감잣국 가게들이 맞이한다. 장충동에 족발이 있고 청진동엔 해장국이 있다면 응암동엔 감자탕이 있다.

요즘은 보통 감자탕이라고 부르는데 이곳만큼은 여전히 가게 이름에 감잣국이 들어간다. 감자탕의 원래 이름은 감잣국이었다는 걸 대림시장에서 알게 된다. 매콤하고 뜨거운 국물 속 쫀득한 돼지등뼈 고기가 잔뜩 든 감잣국(감자탕)은 지난 80년대부터 서민들의 음식으로 이곳 대림시장에 처음 자릴 잡았고 그 푸짐함과 맛으로 곧 유명해졌다. 대림시장은 감잣국 거리가 자리 잡은 이후에 시장의 전성기를 구가 했기에 서로 뗄 레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응암동에서 감잣국을 팔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대림시장의 한 식당에서 마장동에서 가져온 돼지 뼈를 우린 국에 감자, 우거지 등을 넣고 끓인 감잣국을 팔기 시작했는데,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자 주변에 감잣국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점점 늘어난 것. 1980, 90년대에는 10여개가 넘는 감잣국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지만 1997년 IMF의 타격으로 가게들이 떠나게 되었고 이후 전국적으로 프랜차이즈 감잣국집이 늘면서 현재는 '태조 대림 감잣국' 등 서너 곳만 남아 손님을 맞고 있다.

감자탕은 돼지등뼈에 붙은 살코기를 뜯어먹는 맛이 제일이다

내 아버지도 감자탕을 좋아해 한 달에 한 번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날이면 식구들을 대동하고서 동네 시장에 감자탕을 먹으러 갔다. 어른 주먹 같은 큰 감자를 두어 개 넣고 '공룡뼈'라고 불렀던 거대한 돼지등뼈를 넣어 푹 끓인 그 탕을 식구들은 진땀을 흘리며 먹었다. 두 손으로 움켜쥐고 돼지등뼈에 붙은 살코기를 발라먹는 맛도 좋았지만, 아버지를 따라 뼈의 골수를 쪽쪽 빨아먹는 고소한 맛은 아직도 진미로 기억에 남는다. 요즘에도 진정한 감자탕 마니아들은 젓가락으로 뼈에 붙은 살만 먹는 게 아니라 두 손으로 뼈를 잡고 '쪽쪽' 소리가 나도록 빨아먹는다. 고기를 변변히 먹을 수 없었던 시절, 서민들이 뼈다귀나마 저렴하게 배불리 뜯을 수 있는 데 기여한 음식이었다. 특히 요즘 같은 으슬으슬한 날씨의 늦겨울에 먹어야 더욱 맛있다. 보통 이런 음식은 2인용 이상만 파는 게 전국적인 식당의 관행인데 이곳은 고맙게도 1인분도 따로 판다 (7천원).

감잣국 거리 바로 뒤로 이어진 골목 시장통부터 본격적인 대림시장이다. 평일에도 북적북적하는 게 보기 좋다. 장옥(지붕이 있는 실내 시장)안에 있는 구(舊) 시장과 바깥골목으로 형성된 신 시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신 시장엔 야채, 과일, 생선, 정육 등 식료품을 팔고 구 시장인 장옥 안엔 그릇, 이불, 신발 등 생활용품 가게들과 단골손님들이 주로 찾는다는 '무진김밥' 등 오래된 몇몇 먹거리 가게가 있다.

1971년부터 시작된 최씨약국

둘러보다 보니, 시장통 입구에 있는 '최씨 약국'이 눈길을 끌었다. 약국 이름도 독특하고 간판 옆에 'since 1971' 이라고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는 글씨에서 오래된 역사가 느껴져서다. 약국 앞에 주민들이 앉아갈 수 있는 양지바른 작은 자리가 있는 것도 재미있다. 예닐곱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엔 시장통에 왔다가 쉬어가는 주민들이 늘 앉아있다. 나무로 된 여닫이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면 오래된 약국답게 칠순이 훌쩍 넘은 약사 할아버지가 깔끔한 흰 가운에 가슴엔 약사 증명 패찰을 하고 앉아 계신다.

칠순이 훌쩍 넘은 할아버지 약사님

1971년 이곳에 약국을 차리고 젊은 시절을 고스란히 시장과 상인, 주민들과 함께한 대림시장 역사의 산증인이다.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안 좋을 때 산신령처럼 하얀 눈썹에 안온한 표정을 한 약사 할아버지를 찾으면 굳이 청진기를 대지 않고 안색만 보아도 좋은 약을 지어줄 것 같다. 약국 안 벤치 같은 의자에 앉아 약사 할아버지에게서 응암동과 주변 은평구 동네 이야기, 시장통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참 편안했다. 살아있는 도서관이 따로 없었다. 어느 작가가 동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대림시장은 주변의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대형 할인마트에 살아남기 위해 대림시장만의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었다.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2013년부터 5일장을 운영하고 있는 점이 대표적이다. 매달 5일과 10일, 15일, 20일, 25일, 30일을 '전통시장 가는 날'로 정하고 대림시장 내 상점 외에 좌판 같은 이동식 상점을 유치하여 시장 내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덕분에 매주 금요일마다 대림시장에 온다는 뻥튀기 부부를 만나 직접 튀긴 구수한 곡물을 먹어볼 수 있었다. 작은 트럭을 개조해 뻥튀기 기계인 쇠통을 실었을 뿐이지만 5일장의 운치를 제법 살려 주는 일등공신이었다. 저마다 튀기고픈 곡물을 가져와 양철통에 넣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는 동네 주민들 모습도 정다웠다. 시장 상인의 많은 노력이 합쳐서 5일장을 지속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된다면 대림시장의 5일장이 감잣국처럼 시장을 대표하는 것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다양한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온누리 상품권' (전통시장을 보호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2009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전통시장 및 상점가 전용 상품권)을 이용할 수 있고, 최근에는 '온누리 전자상품권'이 발행되어 카드 단말기가 설치되어 있는 점포에서는 보다 편리하게 사용이 가능해졌다. 또한 대림시장은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보조를 받아 인근 주민들은 무료배달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이 가능하며, 시장에서 물품을 구입한 후 상점에 맡겨두면 오토바이를 이용해 무료로 배송해준단다.

각종 전과 부침을 직접 만들어 파는 가게에서 모듬전을 한 봉지 사다가 비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부침개 뒤집개를 한 손이 아닌 양손에 하나씩 들고 사용하면 훨씬 뒤집기가 수월해 기름이 안 튀고 전의 모양도 망치지 않는다니 집에서 써먹어야겠다. 오일장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늦은 점심으로 어떤 걸 먹을까, 시장 상인에게 물어 찾아간 곳은 장옥 안에 있는 손만두집이다. 대림시장엔 아주머니가 직접 빚는 걸 볼 수 있는 진짜 손만두집이 서너 집 있다.

대림시장엔 저마다의 솜씨로 만드는 손만두 집이 여럿 있다

아주머니의 솜씨나 취향에 따라 만두 모양이 다른 건 손만두 만의 매력. 어떤 집은 야무지게 동글동글하고 어느 집은 편편하고 넓적하다. 만두 맛 또한 만두 모양만큼이나 달라 먹는 맛이 색다르다. 난 두부를 좋아해서인지 '두부공장' 간판을 달고 있는 가게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는데 요즘 보기드믄 비지를 봉지에 담아 팔고 있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자주 해주던 돼지고기와 신 김치를 넣은 비지찌개가 생각나서였다. 두부를 직접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만드는 비지지만 식이섬유와 단백질, 칼슘 등의 영양소가 두부보다 많은데다 가격은 저렴해 '뜨는 먹거리'란다. 자전거 짐받이 가방엔 어느 새 이런저런 먹거리들로 꽉 찼다.

방앗간 (좌), 전통과자 가게 (우)

철마다 떡과 빨간 고춧가루가 나오는 신기한 방앗간도 반갑고, 외국 소스와 과자들이 가득한 수입상품 가게들도 구경할만하다. 오랜만에 보는 '양화점'이라 불리는 신발가게에선 특유의 새 신발 냄새가 고향의 향수처럼 풍겨왔다. 항아리도 파는 재미있는 그릇가게며, 무료로 뜨개질을 알려주는 털실 가게 안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사랑방이었다. 짜장면은 2천 원, 짬뽕은 3천 원에 파는 응암동 토박이 중국집 여사장님은 오랜 시간 가게를 자리 잡게 해준 주민들을 위해 특별히 이런 가격에 내놓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어디 멀리 소읍에 여행 온 듯 해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곳, 바로 여기 대림시장이다.

○ 교통편 ; 6호선 새절역 2번 출구 도보 10분

김종성 시민기자는 스스로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이라 자처하며,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과 사진에서는 매일 보는 낯익은 풍경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 서울을 꽤나 알고 있는 사람들, 서울을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이 칼럼을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