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에게 우린 무엇을 보았나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5.02.03. 11:29

수정일 2015.11.17. 18:44

조회 501

축구팀ⓒ뉴시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82

'감독은 역시 외국인 감독을 써야해...'
'우리나라는 학연, 지연 없는 외국인 감독이 딱이다.'

축구 국가대표팀 슈틸리케 감독에게 쏟아지는 네티즌 반응이다. 비록 아시안컵 우승엔 실패했지만 승패와 상관없이 슈틸리케 감독에겐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히딩크에 이어 두 번째 외국인 축구 감독 신드롬이다.

지난 월드컵 때의 실망이 워낙 컸다. 대표선수 선발의 기준에 대해 대중이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의리축구'라고들 했다. 감독과 인연이 있거나 명성이 있는 선수들만 대표로 뽑았다는 의미다. 아주 오래전부터 축구팬들은 축구행정에 분노해왔었다. 몇몇 유명 사립대 파벌들을 중심으로만 축구계가 움직이며, 그런 파벌에 들지 못하는 선수는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대표가 되기 힘들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히딩크는 박지성을 대표로 선발하는 파격을 보여줬다. 사람들은 기존 축구 시스템에선 박지성이 대표로 뽑힐 수 없었을 거라며 히딩크의 실력주의 리더십에 찬사를 보냈다. 슈틸리케는 이정협을 대표로 뽑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정협은 단 한 번도 대표팀에 뽑힌 적이 없었던 무명 선수로 2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군대에 가 있는 상황이었다. 프로 운동선수가 그 나이에 군대에 갔다는 건 팀에서 자리를 못 잡았다는 뜻이다. 그런 선수를 슈틸리케는 아무 선입견 없이 경기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대표에 올렸다. 바로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그동안의 파벌축구 논란으로 받았던 상처를 위로받았다. 이것이 외국인 감독 찬양론이 나오는 이유다.

파벌주의, 연고주의는 축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안현수의 활약. 그렇게 잘 하는 선수가 러시아로 간 것은 우리 내부의 파벌주의 때문이었다는 자성이 나왔었다. 추성훈이 일본으로 귀화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게 된 이유도 우리 유도계의 파벌주의에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동계올림픽 후엔 태권도 계에서 파벌주의로 인한 편파판정에 울분을 느낀 선수의 아버지가 자살한 사건도 알려졌다.

스포츠계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사건에선 해피아 이야기가 나왔고, '땅콩 회항' 사건에선 항피아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엔 철피아 사건 때문에 현역 국회의원이 구속됐다. 사회 곳곳이 마피아로 얽혀있는 사회인 것이다. 선거 때면 동향 사람을 뽑아주고, 선거가 끝나면 신임 대통령의 동향, 동창 인사들로 사회 상층부가 전면 물갈이된다. 이렇게 연고주의가 판을 치는 분위기에 국민은 분노를 키워왔다.

묻지마 실력주의의 공정한 리더십을 보여준 히딩크는 외부로부터의 리더십 1차 충격이었고, 슈틸리케가 2차 충격이 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이 과거에 한국사회를 뒤흔든 것이었는데, 슈틸리케 감독에 대해서도 비슷한 열풍의 조짐이 보인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이 한국사회의 기존 리더십 형태에 환멸을 느꼈다는 뜻이다.

히딩크는 또, 소통과 자율을 중시하는 리더십도 선보였다. 지나치게 수직적 위계질서가 엄격한 한국 대표팀의 분위기를 깨고 선후배간에 이름을 부르도록 하면서 수평적 대화의 문화를 만들었다. 슈틸리케 감독도 소통과 자율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고 알려졌다. 이런 점도 이들에 대한 호응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리더십을 흔히 보여준다. 요즘엔 특히 사회곳곳에서 갑질 논란이 커세다. 지도층이 안하무인으로 군림하면서 한국사회의 수직적 서열구조가 더욱 강화되는 느낌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이런 분위기에 환멸을 느껴왔는데, 그에 대한 반발로 슈틸리케 리더십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앞으로는 아예 감독을 국내 파벌 연고 구조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외국인으로만 뽑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더 나아가 정치인을 외국에서 수입하자는 말도 나오는데 물론 현실성 없는 몽상이다. 국민의 이런 몽상을 진짜 희망으로 바꾸려면 국내 지도자의 리더십 형태가 환골탈태하는 수밖에 없겠다. 외국인 감독의 깜짝활동을 보며 한풀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축구 #하재근 #아시안컵 #슈틸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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