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무 소용없는 인간인가...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1.30. 18:01

수정일 2015.11.16. 06:09

조회 1,456

성당ⓒ투수

인간으로서 가장 슬픈 일은 병이나 빈곤이 아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아무 소용없는 인간이라고 체념하는 일이다.
그리고 최대의 악은, 그런 사람을 보살펴줄 이들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마더 테레사 《넘치는 사랑》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0

애초에 행복이나 불행은 비교해 순위를 매길 수 없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비교는 흔히 욕심에서 비롯된다. 내가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한 무엇을 가진 사람은 분명 행복하리라고 넘겨짚어 버리는 것이다. 돈이 많으면, 부모가 든든하면, 자식이 잘 되면, 좋은 직업을 가지면... 행복의 조건이 곧 욕심의 목록이 된다. 욕심은 결핍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고, 진통도 없이 질투를 낳는다.

그런가 하면 불행에 대한 비교는 비관이 되기 십상이다. 불행조차도 비교하다보면 경쟁이 되고, 그 서글픈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더 불행해지는 것뿐이다. 비관은 우울과 분노 등등을 난산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것은 절망이다. 포기다. 그리고 체념이다.

'빈자의 성녀'로 불리는 가톨릭 수녀 마더 테레사의 생의 자취를 따라 읽노라면 문득문득 독실한 무신론자(!)의 가슴마저 뻐근해진다. 그것은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영성을 가진 수도자였는가를 강조하는 대목에서보다 얼마나 솔직한 인간이었나를 고백하는 대목에서 비롯된다. 평생을 이방인 인도에서 빈자와 병자들을 돌보며 철저히 낮은 자리에서 살고도 그녀는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나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리 거두고 살펴도 끊이지 않는 죄와 악과 질병과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외친다.
"저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까?"

모두가 성모 마리아의 그것으로 비견하는 자신의 미소를 '모든 것을 감추려는 가면'이라고 부른다거나, 다들 감동하여 칭송하는 자신의 선행을 '위선'으로 부르는 대목에서는 그 날선 자기응시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일각에서는 그녀가 종교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비판한다지만, 마더 테레사의 고뇌야말로 그녀의 가장 열렬한 신앙고백에 다름 아니다.

마더 테레사를 번민과 고뇌에 빠뜨린 것은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무리 하느님의 사랑과 삶의 의미를 강조해도 거듭하여 절망하고 포기하고 체념해버리는 사람들에게 지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어둠의 굴길에서 꺼내는데 힘을 보태기보다는 그들을 보살피는 일을 비웃거나 심지어 그들의 등을 떠밀어 더 어두운 곳으로 몰아넣는... 세상에 만개한 평범한 악(惡)들에 때때로 무력해졌을 테다.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고 가난한 사람에게 옷과 집을 주는 것보다 체념한 사람의 꺾인 무릎을 일으켜 세우기가 더 힘들다. 그것이야말로 시혜와 동정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품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감정인 이해와 연민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수환 추기경도 말년에 고백하기를,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고 했다. 고작 30센티의 거리를 70년에 걸쳐 내려간다. 그만큼 어렵지만 그래서 더욱 덧없는 시도일지라도 포기할 수 없을지니,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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