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꽃이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12.19. 18:12

수정일 2015.11.16. 06:11

조회 778

꽃 ⓒ리나

한 송이 꽃은 남에게 봉사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다.
오직 꽃이기만 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 사람의 존재 또한,
그가 만일 진정한 인간이라면 온 세상을 기쁘게 하기에 충분하다.
--틱낫한(Thich Nhat Hanh)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4

고단한 산행 중 길섶에서 마주치는 꽃은 기쁨이다. 위안이다. 힘겹게 산을 타야 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기실 그들의 외양은 산 아래 사람의 마을에서 사고파는 꽃들의 크고 화려한 모양새와 선명한 빛깔에 비하면 턱없이 미미하고 수수하다. 그럼에도 허위허위 오르막을 오르다가, 허겁지겁 내리막을 내려오다가 문득 그들과 만나면 발걸음이 멈춘다. 흘러내린 땀을 훔치며 들여다보는 사이, 절로 감탄의 말이 터져 나온다.

"너 참 곱구나!"

초록에 묻힌 산꽃들은 짐짓 지나쳐버리기 쉽다.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때로 쪼그려 앉아야만 마주할 수 있다. 애초에 사람의 소용에 맞추어 지어진 존재가 아니기에 사람에게 알랑대며 교태를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아름다움은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에서 나온다. 백석의 시구처럼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고 중얼거리며 떠나왔을 때, 한 송이 꽃은 뜻밖의 위로가 된다. 언젠가 우리가 왔고 언젠가 우리가 돌아갈 자연이라는 본원(本源)이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아무리 공중제비를 돌며 뒤채도 아직 세상에는 훼손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진실을 가만가만 다독여 일깨운다.

어지러운 세상사에 지치고 물릴 지경이다. 도대체 뉴스라는 것이 너무 많아서 하루라도 소식을 구해 듣지 않으면 금세 세상물정 모르는 아둔패기가 될 판국이다. 그런데 바지런을 떨어 챙겨 보자니 사건과 사고로 점철된 그것들이 하나같이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기에는 너무도 모질고 혹독한 짓이라서 뉴스를 듣는 것만으로 공포와 모욕감을 느낀다.

한마디로 사람의 값이 너무 헐하다. 몸값도 헐하고 목숨 값도 헐하다. 이처럼 사람이 대수롭지 않은 존재가 되다 보니 서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스스로도 귀하게 여길 수 없다. 내 눈에만 그리 보이는 것일까,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우울한 얼굴은 단순히 불경기의 징표만은 아닐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이 되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무표정한 얼굴마다 덩두렷하다.

이처럼 차갑고 무서운 세상에서 작은 꽃송이를 들여다보고 앉아있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꽃송이에게 난마처럼 얽힌 길을 헤쳐 갈 방도를 물어야 할는지도 모른다. 허청대는 몽유의 걸음으로 전진하기보다는 이렇게 쪼그리고 앉아 호흡을 고르며 꽃이 꽃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친 산객을 위로했던 것처럼, 사람도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어쩌면 어리석게만 보이는 소박한 믿음이, 지금 다시 필요하다.

오직 꽃이기만 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직 사람이기만 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럴 것이다. 그래야 한다.

#김별아 #빛나는말 #가만한생각 #틱낫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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