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생들을 위해 성(性)까지 바꾼 나무

내 손안에 서울

발행일 2014.12.04. 15:29

수정일 2014.12.0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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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 은행나무

이장희의 사연있는 나무이야기 6 –문묘 은행나무

성균관은 조선의 국립대학이었다. 고려의 국자감을 시초로 두고 있으니 진정 세계 최고의 현존하는 대학교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성균(成均)'이란 '어그러짐을 바로잡아 고르게 한다'는 의미다.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답게 모든 것이 국비로 지원되었던 이 교육시설에서는 당대 수재들이 모여 숙식을 해가며 유학을 공부했다. 그들을 유생(儒生)이라 불렀다. 유생에게는 엄격한 생활과 강도 높은 수업이 진행되었고, 문과 응시에 많은 편의가 제공되었다. 특히 유생들은 오늘날의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나라의 부당한 처사나 정치에 대해 자신들의 뜻을 피력하기도 했는데 왕에게 직접 상소를 올리거나 권당이라 하여 수업을 거부하기도 했던 것이다. 권당의 횟수는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될 정도였는데, 흥미로운 점은 조선 후기의 중흥기라 할 수 있는 영조와 정조시대에 가장 많은 권당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회가 발전되어가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지만 유학의 근본이념에 의거하여 순수하게 제시되었던 유생들의 발언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당파의 입장을 표출하면서 변질되는 모습을 보여 아쉽기만 하다.

성균관의 공간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앞부분은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던 사당으로써의 공간이고,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뒷부분은 공부를 가르치던 교육의 공간이다. 이를 전묘후학(前廟後學{)이라 하는데, 교육공간이 제사공간 앞에 있던 지방의 향교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양쪽 영역에는 모두 커다란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예로부터 서원이나 향교에 이토록 은행나무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던 이유는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문헌상의 기원 때문이다. 학문을 닦는 곳을 행단(杏亶)이라 부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 은행나무는 1519년(중종 14년), 당시 성균관의 수장이었던 대사성 윤탁이 심었던 것이라고 하니 50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된 나무다. 가지는 많이 변형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모두 건강하게 잘 살아있어 역사의 깊이를 말해준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열의가 은행나무에게도 큰 양분이 되어온 건 아닐까.

이 은행나무는 가을에 잎이 노랗게 물들 때면 내가 찾는 단골나무 중 하나다. 그런데 가을의 은행나무를 떠올려 보면 노란 은행잎만큼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열매다. 은행나무가 많은 동네는 가을 분위기까지 바꾸어 버린다는 말까지 있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큰 나무는 얼마나 많은 열매와 더불어 무서운 냄새를 선사할까? 하지만불행인지 다행인지 문묘에 있는 나무는 수나무라 열매를 맺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과 관련된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원래 이 나무는 열매가 많이 열리는 암나무였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냄새가 고약하고 은행을 주우려는 잡인들의 출입이 많아 유생들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원성을 높였다. 결국 문묘의 어른들은 나무 앞에서 암나무를 수나무로 바꾸어 달라고 제사를 지냈다.

이에 하늘도 공부의 중요성에 공감했는지 이윽고 암나무는 수나무로 바뀌었고, 이후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전설같은 결말이다. 재미도 있지만 당장 나무부터 베어내는 요즘의 세태에 비하면 되새겨볼 만한 선인들의 이야기다. 최근 연세대학교 앞에 대중교통전용 거리를 만들면서 50년 이상 자란 은행나무를 거침없이 베어낸 일이 있다.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암나무가 많아 가을이면 냄새가 심하고 거리가 지저분해진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런 풍토에서 우리는 훗날 이 땅의 주인들에게 들려줄 근사한 전설이라도 남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출처 : 사연있는 나무이야기 / 이장희

※<사연있는 나무이야기>는 서울시 E-BOOK(http://ebook.seoul.g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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