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10.21. 18:00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67
최근 컴백한 서태지의 기사가 연일 포털에 오르고 있다. 흘러간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는 건 이례적인 일인데, 그만큼 서태지가 특별한 존재라는 걸 말해준다.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서태지의 위상은 압도적이다.
물리적으로 90년대가 시작된 건 1990년이겠지만 문화적으로 90년대가 시작된 건 1992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바로 그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전까지의 한국 가요와는 전혀 다른 음악을 들고 나왔다. 기존의 대중음악계 전문가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젊은이들은 달랐다. 젊은이들은 열광적으로 그들의 영웅을 맞이했고, 서태지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바로 신세대, 이른바 엑스세대의 시대였다. 신세대는 고도성장의 과실을 처음으로 향유하기 시작한 세대다. 이들은 개성을 원했고, 기성세대와는 다른 자신들만의 문화를 원했다. 이들은 동시에 서구적이고 세련된 문화를 원하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 모든 욕망의 시대적 응답이었다. 시대가 그들을 원했던 것이다.
1980년대까지는 나이트클럽에서 전주만 듣고도 팝송과 가요를 구분할 수 있었다. 가요의 전주는 팝송에 비해 사운드가 현저히 빈약했다. 그런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이후부터 전주만 듣고는 팝과 가요를 구분할 수 없게 됐다. 즉 서태지가 우리 가요 사운드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가요의 문법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전까지 우리 가요의 중심은 멜로디였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은 춤을 추기 좋은 리듬을 전면에 내세웠다. 바야흐로 댄스음악의 시대가 시작된다. 한국어로는 본격적인 랩이 불가능하다고들 했었는데 서태지는 그것을 해냈다. 이때를 기점으로 랩은 완전히 가요의 일부분이 되고, 미국의 흑인음악인 힙합도 본격적으로 한국화 되기 시작한다.
서태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가수는 그저 '딴따라'였다. 방송사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음악산업 시스템의 부속품 같은 존재였다. 서태지는 그랬던 가수의 위상을 독립적인 아티스트로 격상시켰다. 스스로 방송 시기를 선택하고,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독자적으로 설계하는 예술적 주체 말이다.
서태지는 <교실이데아> 같은 노래를 통해서 현실의 문제를 통렬히 고발하기도 했다. 음악, 스타일, 가사 등 모든 면에서 신세대의 새로운 취향을 대표했던 셈이다. 그리하여 서태지는 단순한 가수를 넘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서태지의 혁신성과 그를 따르는 10대들의 괴성은 기성세대를 불편하게 했다. 너무나 이질적이기도 했고, 10대들이 과도하게 기존 문화를 공격하는 것이 우려를 낳기도 했다. 그래서 서태지를 경계하는 시선이 생겨났는데 이것은 그가 가장 강도 높게 기성 시스템을 공격했고 음악적으로도 기존 가요의 분위기와 가장 거리가 멀었던 <교실이데아> 때 폭발해, 마침내 서태지 악마주의 논란을 촉발시키게 된다. 서태지를 악마라며 지탄할 정도로 서태지와 그로 대변되는 신세대 물결에 대한 기성세대의 불편감이 컸던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반발도 대세를 막을 순 없었다. 결국 신세대는 문화권력을 접수했고 그들에 의해 한국 대중문화는 국제적인 수준으로 뛰어오르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서태지로부터 촉발된 1990년대 문화르네상스의 유산을 독식한 건 결국 아이돌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거둔 어마어마한 성공을 보면서 대중문화산업계는 댄스그룹을 만들면 10대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곧바로 아이돌 양산에 돌입했다. 아이돌은 서태지가 보여줬던 혁신성, 문화적 창조성, 현실비판 등을 모두 제외하고 오직 댄스리듬과 랩만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문화적 에너지가 폭발했던 서태지의 시대는 이제 추억으로만 남게 됐다. 다시금 서태지와 같은 혁신적 아이콘이 등장해 가요판을 뒤집을 순 없는 것일까? 또 다른 서태지를 기다리게 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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