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하다는 궁녀의 묘, 왜 여기에?
시민기자 최용수
발행일 2014.08.27. 11:47
[서울톡톡] 은평구 진관내·외동에는 '이말산(莉茉山)'이 있다. '이말산'이란 명칭을 갖게 된 것은 이 산에 '이말(莉茉)'이라는 일종의 재스민 식물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시에서는 지난 1977년 이곳 '이말산(莉茉山, 해발고도 132.7m)' 일대 약 98만 ㎡를 '진관근린공원(津寬近隣公園)'으로 지정했다. 배드민턴장을 비롯한 운동시설과 휴게시설이 잘 갖추어 있고 산세가 험하지 않은 흙산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이다. 또한 북한산 등산객과 산악자전거(MTB) 마니아들에게는 이미 인기 있는 운동코스로 널리 입소문이 나있다.
조선시대에는 '성저십리(城底十里)'라는 말이 있었다. '도성(都城) 밖으로부터 십리(3.93km) 안쪽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이 지역은 행정조직상 한성부(漢城府)에서 직접 통치하는 수도에 편입되어 어떠한 묘(墓)도 만들 수가 없는 지역이다. 그러나 이말산은 서울 북서쪽의 성저십리 바로 바깥 지역이고 풍수지리적 길지(吉地)여서 내시와 궁녀들을 비롯하여 양반, 서민 등 다양한 계층이 묘를 썼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인식하여 서울시는 2010년 진관공원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무연고 묘지 313기, 연고 있는 묘지 1,433기 등 총 1,746기의 분묘가 조사되었고, 비석·문인석·망주석 등 13종 1,488기의 석물이 확인되었다. 특히 명종조 내시부상선이었던 환관 노윤천, 상궁 옥구임씨(沃溝林氏) 묘표를 확인한 것은 매우 큰 성과였다.
더구나 상궁 옥구임씨 묘표는 조선조 상궁 개성박씨, 상궁 안동김씨와 함께 현재까지 남아있는 단 3개뿐인 궁녀묘비 중 하나라고 한다. 이렇게 궁녀들의 묘가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뭘까? 당시 궁녀들은 늙게 되면 대부분 절에 가서 살았고, 죽은 후에는 자연히 불교의 관습으로 화장을 했기 때문에 궁녀의 묘는 희귀하다고 한다.
은평향토사학회 부회장 박상진('내시와 궁녀'의 저자)은 '이말산일대의 묘는 조선시대 매장문화연구의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불행하게도 그 동안 많은 유물들이 없어지고 훼손되었다고 하니 안타깝다. 공원을 걷다보면 수많은 석물들을 만난다. 그 돌무더기 하나하나가 문화재적 큰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절대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아울러 이곳을 애용하는 등산객, MTB라이더, 지역주민 모두가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알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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