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나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08.18. 14:28
[서울톡톡] 프란치스코 교황 열풍이 한 차례 한국사회를 휩쓸었다. 교황은 전 세계 카톨릭 신자들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방한이 화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번 방한의 화제성은 그런 일반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교황 리더십이라는 말이 회자됐고, 카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도 교황을 환영했다. 기업체 임원들도 교황과 관련된 강의를 들었다.
한국은 요즘 지도자에게 열광하는 사회가 됐다. 올해 들어서 정도전 신드롬, 이순신 신드롬, 그리고 교황 신드롬으로 이어지며 지도자상에 대한 열망이 표출되고 있다. 신드롬을 이끈 인물의 공통점은 모두 '지금/여기'에 없는 인물들이라는 데 있다. 즉 한국에 부재한 과거 혹은 외국의 지도자에게 한국인이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 현존한 지도자들이 워낙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지도자들에게 한없는 불신을 품게 된 한국인이 과거와 외부에서 이상적인 지도자의 상을 발견하고, 그들에게서 우리사회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미지는 '서민의 수호자'이며 '갑질하지 않는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대주교 시절부터 전용차를 거부하고 대중교통이나 소형차를 타고 다녔으며, 소박한 곳에서 기거했다. 교황궁을 몰래 빠져나가 부랑자들을 돌보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보통 지도층 인사들은 시찰이라는 명목으로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는 법이지만, 그는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 자국의 빈민시설을 돌아보는 데에 집중하느라 해외 일정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교황에게 주어지는 전통적인 예우를 대부분 거부하고 일반 신자들에게 직접 다가갔다. 심지어 한국에 오는 비행기엔 1등석이나 교황 휴식시설 등이 아예 없었다고 한다.
한국에선 얼마 전에 기업 임원이 황제 대접을 받으려 승무원을 구타한 이른바 '라면 상무'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과 함께 우리 사회에 심각한 갑들의 횡포, 즉 '갑질'이 국민의 분노를 샀는데 교황의 소탈한 행보는 정확히 그 반대의 이미지를 보여줬다.
한국에 온 교황은 네 가지 메시지를 말했는데 그것도 지금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 가치였다. 그것은 바로 평화와 사람중심의 경제, 가난하고 소외된 자 배려, 그리고 소통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남북대립이 격화되며 평화가 사라져가고 있고, 경제는 사람중심이 아닌 수치 중심이었다.
즉 경제성장률, 종합주가지수, 총수출액 등 경제총량적 수치가 중시되면서 서민의 민생이 경제에서 소외된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 배려는 복지강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지난 대선 때 가장 큰 이슈로 후보들이 모두 복지강화를 외쳤지만 아직도 그 성과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소통은 최근 들어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적 성격이 심화되면서, 대통령 지시에 장관들이 받아쓰기만 하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언로가 막혀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프란치스코란 이름부터가 의미심장하다. 프란치스코는 과거 교회가 기득권 세력이 되어 개혁대상으로 전락해가던 무렵 교회의 혁신을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귀족의 곁에서 호사를 누리던 교회가 그 모든 부를 내려놓고 다시 빈자들의 곁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의 수호자로 성인이 된 것인데, 이번 교황은 사상 최초로 프란치스코란 이름을 즉위명으로 삼으면서 다시금 청빈으로의 혁신을 주창한다.
그는 바티칸의 금융적 불투명성과 마피아와의 부적절한 관계 의혹도 전면적으로 혁신해가고 있다. 한국도 요즘 적폐청산과 기득권층의 특권적 행태에 대한 반성이 화두이기 때문에 이런 교황의 행보가 큰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상 최초로 무슬림, 여성, 범죄자 소년의 발을 씻겨준 교황이기도 하다. 타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 그리고 소통하려는 의지의 소산이다. 불관용과 불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사회에서 교황의 이런 모습은 위안이었다. '갑'들에 대한 실망, 분노, 불신이 계속되는 한 지도자 열풍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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