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학생증을 목에 걸고 있는 어머니, 잊혀지지 않아...

시민기자 이현정

발행일 2014.08.07. 11:20

수정일 2014.08.07. 11:20

조회 1,234

지난 8월 2일,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음악회 모습

[서울톡톡] 올 여름, 우리 가족은 아주 특별한 휴가를 다녀왔다. 세월호 가족과 함께 하는 '광화문 국민휴가'로, 여느 휴가보다 의미 있고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음을 다잡고 온 '광화문 국민휴가'였지만, 막상 광화문 광장에 들어서는 일은 용기가 필요했다. 늘 보던 이순신 동상과 분수대였건만, 천막도, 그 아래 모인 사람들도 무척 낯설었다. 어찌 다가가야 할지 몰라 한참을 머뭇거리다, 일단 진행요원인 듯 보이는 청년에게 물어 참가 접수도 하고,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광화문 단식장의 하루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국민휴가'는 8월 1일부터 9일까지 언제든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는데, 기자는 8월 1일부터 3일간의 일정으로 참가했다. 단식장의 하루 일정은 아침 10시 인사를 나누기, 12시 전후 점심 홍보활동, 오후 2시 몸자보 산책, 오후 5시 유가족과 만남 후 저녁 홍보활동 등으로 느슨하게 짜여 있다. 하지만 얽매일 필요 없이 각자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근처 대형서점이나 문화공간을 둘러보거나, 도심 여행을 해도 좋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 첫날은 분위기도 익힐 겸, 단식장에 있기로 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이다 보니 살짝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어 여기저기 기웃거려 봤다.

단식 20일째, 유민이 아버님 건강이 나빠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순신 동상 아래쪽 천막에는 단식 19일째를 맞는 단원고 2학년 10반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 씨와 함께 17일째 단식 중인 도철스님이 계셨다. 이렇게 단식을 해도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특별법 제정은커녕, 갈수록 의문만 쌓여가지니, 비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광화문에 그리다`에 함께하고 있는 예술가들

그 앞쪽에서 '광화문에 그리다' 행사가 이틀에 걸쳐 진행 중이었다. 천막 뒤쪽에 그림을 그려 넣고, 천막마다 간판도 달고, 테이블이 있는 카페를 만드는 등 이곳 단식장을 함께 꾸미고 가꾸고 있었다. 뜻을 함께하는 예술가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한 것으로,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지칠 줄 모르고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교사들과 함께 노란 배지도 만들 수 있다

단식장 앞 뒤쪽으론 수사권·기소권이 있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서명도 늦은 밤까지 진행됐다. 한쪽에는 단원고 아이들이 바닷 속에서 보내온 영상 등이 상영되고 있었는데, 많은 시민들이 멈춰 서서 영상도 보고 서명에 참여하기도 했다. 안쪽 '행동하는 방' 천막에서는 동시·동화 작가와 함께 세월호 노란 엽서 만들기를, 반대편 분수대 옆 서명 장소에서는 교사들과 함께 노란 배지 만들기를 할 수 있다. 배지에 넣을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어떠한 참사도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사회에 대한 요구가 더없이 절실해진다. 

박예슬전시회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박예슬전시회 가는 길, 2학년 5반 선생님과 아이들 이름이 적힌 노란 우산이 눈길을 끈다

오후 2시, 노란 우산을 들고 단원고 희생자 고 박예슬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촌갤러리에 다녀왔다. 우산에는 안전한 나라를 꿈꾸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내용의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단원고 2학년 5반 선생님과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우산도 있었는데, 보고 있자니 또 다시 가슴이 미어진다.

한 달여 만에 다시 찾은 박예슬 전시장은 전시 첫 날과 다름없이 많은 시민이 눈시울을 붉히며 관람하고 있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전시장 입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적은 염원의 쪽지들. 이토록 많은 이들이 마음 아파하며,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바라고 있다는 것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유가족과 만남의 시간 전 유가족에서 편지를 쓰고 있는 참가자들

단식장에서는 매일 오후 5시, 유가족과 만나는 시간을 가진다. 지난달 14일,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관과 광화문에서 단식 시작했던 15명의 세월호 유가족들은 하나둘 응급실로 실려가고, 이제 국회에 있는 유경근 씨와 이곳 광화문 광장의 김영오 씨 두 분만 남았다. 남은 단원고 희생자 가족들은 반별로 돌아가며 국회와 광화문 단식장에서 하루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광화문 광장에는 2학년 8반 부모님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날 기자는 이승민 군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하나뿐인 아들의 학생증을 목에 걸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오래도록 잊혀지질 않는다. 영어를 무척 잘했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꿈이었던 아들. 혼자인 엄마를 생각하며 청소며 빨래도 도와주던, 배려심 많고 착한 아들. 승민이에 대한 그리움과 가슴에 묻은 사연 하나하나가 아프게 다가왔다. 그토록 다정하면서도 의젓했던 아들은 사고 당일 통화를 하면서도 사고에 대해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혹여 엄마가 걱정할까 싶어서였겠지만, 엄마는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아이 키우며, 직장 다니며 억척스럽게 살아왔던 지난 시간은 승민이가 있어 힘든 줄도, 아픈 줄도 모르고 지냈는데, 이젠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마음의 병이 몸까지 무너지게 하는 모양이라며 지어 보이는 쓸쓸한 미소에 가슴이 미어진다. 때론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고 기쁨이었을 하나뿐인 아들, 그 의미를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현재 세월호 유가족들은 의사자 지정이나 특례입학은 물론, 어떠한 보상을 요구한 적이 없음에도 잘못된 유언비어와 폭언으로 인해 상처가 깊어 보였다. 단지 철저한 진상조사와 그를 위해 수사권 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을 요구할 뿐인데, 그조차 왜곡되고 있어 무척 힘겨워 보였다. 지금 유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잊지 않고 함께하는 시민들의 응원이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이뤄내려는 노력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야 할 때다.

이번 주말에는 광화문 일대 나들이를 계획해보면 어떨까? 단식장에서 모든 시간을 보내지 않고도, 단지 광장에 들러 서명을 하고, 나눔카페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아이스티와 커피를 마시며 쉬어가도 좋다. 그저 더 이상 참사가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을 전하는 일, 작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국민휴가 참여 안내와 자세한 일정은 세월호 참사 국민 대책회의 홈페이지(http://sewolho416.org/)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sewolho416), 트위터(https://twitter.com/sewolho416)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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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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