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향기 따라 걷는 고즈넉한 성북동 역사문화 탐방기

시민기자 이다현

발행일 2026.10.12. 09:19

수정일 2026.10.1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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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성북동은 문인과 예술가의 흔적이 남은 역사문화 탐방지로, 한성대입구역 서울연극창작센터를 출발해 성북근현대문학관, 최순우 옛집, 수연산방, 심우장, 길상사까지 걷는 코스가 소개됐다. 성북선잠박물관과 성북구립미술관도 함께 둘러볼 수 있으며, 도보로 약 2시간~2시간 30분 걸린다.
독특한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서울연극창작센터 ©이다현
독특한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서울연극창작센터 ©이다현

성북동의 관문에서 시작하는 고즈넉한 여정

높고 푸른 하늘 아래, 도심의 소음에서 벗어나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휴식을 얻고 싶다면 성북동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 성북구 성북동은 한용운, 이태준, 조지훈 등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들과 수많은 예술가들이 머물며 창작의 열정을 불태웠던 역사적 공간이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초입에서 출발해 성북동 골목 구석구석에 숨겨진 박물관과 미술관, 문화유산을 둘러보고, 마지막에는 도심 속 정적을 간직한 길상사에서 여정을 마무리하는 도보 산책 코스를 소개한다.

연극 창작과 지역 문화가 만나는 공간, 서울연극창작센터

탐방의 출발점은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앞, 성북동 입구에 자리한 서울연극창작센터다. 운생동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대학로의 상징인 붉은 벽돌을 잘게 분해해 재구성한 ‘천 개의 월(Thousand Walls)’이라는 명확한 건축적 개념을 보여준다. 잘게 분절된 벽돌 입면과 건물을 유기적으로 관통하는 ‘스트리트 갤러리’ 구조는 관객과 배우, 안과 밖, 도시와 건축의 경계를 허물며 건물 자체를 하나의 무대로 만든다. 1층 입구에서 옥상 도시공원까지 이어지는 입체적 동선은 성북동 탐방길의 첫인상을 강렬하게 새겨주며, 예술도시 성북동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멋진 관문 역할을 한다.
<님의 침묵> 발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성북근현대문학관 ©이다현
<님의 침묵> 발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성북근현대문학관 ©이다현

성북 문학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거점, 성북근현대문학관

서울연극창작센터를 지나 본격적인 성북로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서면, 2024년 3월 개관한 성북근현대문학관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성북동을 중심으로 활동한 문인들의 삶과 문학 세계를 체계적으로 수집·전시하는 종합 문화 공간이다.
성북근현대문학관 내부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시민들 ©이다현
성북근현대문학관 내부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시민들 ©이다현
상설전시실에서는 성북의 골목과 풍경을 배경으로 탄생한 다양한 문학 작품은 물론, 한용운·이태준·장기증 등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생애를 입체적인 시각 자료와 미디어 아카이브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현재 시집 <님의 침묵> 출간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님의 침묵> 100년 100권 아카이브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문학적 열기를 더한다. 1926년 회동서관 초판본부터 지난 한 세기 동안 발간된 100여 점의 대표 판본과 현대적 미디어 영상이 한자리에 전시돼 있어, 만해 한용운 선생의 치열했던 시 정신과 사상의 흐름을 깊이 있게 체감할 수 있다.

이곳의 관람은 성북동 언덕 위에 자리한 한용운 선생의 항일 거처 ‘심우장’ 탐방과 연계해 둘러볼 때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한다. 알찬 전시를 모두 둘러본 뒤 옥상 쉼터에 오르면, 성북동의 고즈넉한 한옥 지붕과 나지막한 주택가가 시원하게 펼쳐져 산책 중 잠시 숨을 고르며 문학적 여운을 느끼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성북근현대문학관 상설전시실 내부 ©이다현
성북근현대문학관 상설전시실 내부 ©이다현

시민의 손으로 지켜낸 단아한 한옥, 최순우 옛집

성북동 골목길에 들어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고택은 ‘시민문화유산 1호’로 지정된 최순우 옛집이다. 한국미학의 거장이자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의 저자인 혜곡 최순우 선생이 거주했던 이 집은 1930년대 근대 한옥의 단아한 멋을 간직하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과 후원으로 보존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깊다. 툇마루에 앉아 아담한 마당과 기와지붕 끝을 바라보고 있으면 도심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평온함이 밀려온다.
자치구 최초의 구립 미술관인 성북구립미술관 ©이다현
자치구 최초의 구립 미술관인 성북구립미술관 ©이다현

지역 미술의 역사와 미학이 숨 쉬는 공간, 성북구립미술관

최순우 옛집에서 다시 성북로 대로변으로 나오면 자치구 최초의 구립 미술관인 성북구립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성북동은 과거 김환기, 변관식, 유영국, 이쾌대 등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빛낸 거장들이 둥지를 틀고 예술적 영감을 나누었던 공간이다. 성북구립미술관은 이러한 지역의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바탕으로 성북을 거점으로 활동했던 거장들의 작품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한국 근현대미술의 기틀을 다진 거장들의 기획전부터 지역 연계 현대미술 전시까지 완성도 높은 전시가 상시 개최된다.

건물 안팎으로 조성된 야외 조각 작품과 정갈한 전시 공간은 도심 산책길에 들러 문화적 충전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예술가들의 숨결이 서린 ‘예향(藝鄕)’ 성북동의 미술사적 가치와 한국 현대미술의 아카이브를 깊이 있게 체감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적 쉼터다.
독특한 외관이 돋보이는 성북선잠박물관 ©이다현
독특한 외관이 돋보이는 성북선잠박물관 ©이다현
성북선잠박물관 내에 전시되어 있는 의복과 장신구들 ©이다현
성북선잠박물관 내에 전시되어 있는 의복과 장신구들 ©이다현

조선시대 양잠 역사의 정수를 품은 성북선잠박물관과 선잠단지

성북구립미술관 인근에는 조선시대 양잠 역사의 정수를 품은 성북선잠박물관과 선잠단지가 자리한다. 성북선잠박물관은 조선시대 왕비가 풍년을 기원하며 잠신(蠶神)에게 제사를 지내고 양잠을 장려하던 국가지정유산 ‘선잠단’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건립된 문화 공간이다.

특히 선잠단지 발굴조사 1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특별전을 통해 선잠제 관련 유물과 전통 비단 의식, 조선시대 복식 문화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전시를 둘러본 뒤 옥상 정원에 오르면 성북동의 나지막한 지붕들과 한양도성이 어우러진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박물관 바로 옆에는 왕비가 친히 제사를 지내던 역사적 현장인 선잠단지가 함께 조성돼 있어, 실내 전시와 야외 유적을 연계해 둘러보기 좋다.
성북선잠박물관 옆에 자리한 선잠단지 ©이다현
성북선잠박물관 옆에 자리한 선잠단지 ©이다현

문학의 운치가 흐르는 산집, 수연산방

최순우 옛집을 나와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한국 단편소설의 거장 상허 이태준 선생의 가옥인 수연산방이 나타난다. 이태준 선생이 1933년부터 머물며 <달밤>, <황진이> 등 한국 근대문학의 명작을 집필했던 고택으로, ‘문인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산집’이라는 고풍스러운 이름을 지녔다. 정갈하게 가꾸어진 한옥 마당과 아담한 누마루는 당시 시인과 문학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던 문학적 운치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현재는 고즈넉한 한옥 전통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어 탐방길에 잠시 쉬어가기 좋다. 단호박 빙수, 대추차 등 정성 가득한 전통 차와 다과 메뉴가 다양하게 마련돼 있어, 글의 향기가 서린 누마루에 앉아 달콤한 당 충전과 함께 고즈넉한 여유를 즐겨보는 것을 추천한다.
현재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카페로 운영되는 수연산방 ©이다현
현재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카페로 운영되는 수연산방 ©이다현

북향을 향한 민족의 지조, 만해 한용운 선생의 거처 심우장

수연산방을 뒤로하고 북정마을 방향의 언덕 골목길을 올라가면 만해 한용운 선생의 마지막 거처인 심우장을 만날 수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한용운 선생이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지은 이 집은 남쪽에 있던 조선총독부를 바라보기 싫다는 이유로 끝내 북향으로 지어진 곳이다. ‘소, 즉 마음의 본성을 찾는다’는 뜻을 지닌 심우장(尋牛莊)은 민족 자존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서대문형무소 수감 이후 이곳에 정착해 일본의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지조를 지켰다. 또한 이곳은 김동삼, 안창호 등 수많은 민족지사들과 교류하며 항일 의지를 다졌던 장소로, 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마당의 소나무가 여전히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그 숭고한 정신을 전한다.
수많은 민족지사들과 교류하며 항일 의지를 다졌던 심우장 ©이다현
수많은 민족지사들과 교류하며 항일 의지를 다졌던 심우장 ©이다현
심우장에는 한용운 선생의 생애 연보와 친필 유묵, 문학 사료들이 정갈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다현
심우장에는 한용운 선생의 생애 연보와 친필 유묵, 문학 사료들이 정갈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다현
심우장에서 내려오는 길목의 만해산책공원에는 꼿꼿한 기개의 한용운 선생 동상이 자리해 그 의미를 다시금 새기게 한다. 근처에는 한양도성길과 성북역사문화공원이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어, 성북동의 고즈넉한 성곽 풍경을 따라 도보 코스로 함께 둘러보기에 안성맞춤이다.
만해산책공원에 조성된 한용운 선생의 동상 ©이다현
만해산책공원에 조성된 한용운 선생의 동상 ©이다현

숲속 고찰에서 경험하는 무소유의 울림, 길상사

이번 성북동 역사문화 탐방길의 하이라이트이자 마침표를 찍는 공간은 숲속의 고찰 길상사다. 심우장에서 내려와 주택가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고요한 산사 길상사에 다다르게 된다. 과거 3대 요정 중 하나였던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 보살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 가르침에 감명받아 시주하면서 사찰로 탈바꿈한 특별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 교수가 조성한 관음보살상과 법정 스님의 유품이 남아 있는 진영각을 거닐다 보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함께 마음속 깊은 울림과 정적을 경험하게 된다.
길상사의 초입 전경 ©이다현
길상사의 초입 전경 ©이다현
길상사 내부에 있는 진영각 ©이다현
길상사 내부에 있는 진영각 ©이다현

성북동 산책길을 알차게 즐기는 법

성북동 역사문화 탐방길은 도보로 천천히 걸으면 약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앞 서울연극창작센터에서 출발해 최순우 옛집, 수연산방, 심우장을 거쳐 길상사까지 직관적으로 걸어서 이동할 수 있어 동선이 매우 효율적이다. 오르막길이 부담스럽다면 성북로 대로변 정류장에서 성북02번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탐방을 마친 뒤에는 길상사 정문 바로 앞 정류장에서 성북02번 마을버스를 타면 시작점인 한성대입구역으로 한 번에 편안하게 내려올 수 있다.

성북동 역사문화 탐방지

○ 서울연극창작센터 :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8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 성북근현대문학관 :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21길 24
○ 최순우 옛집 :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15길 9
○ 성북구립미술관 :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134
○ 성북선잠박물관 & 선잠단지: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96
○ 수연산방 :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26길 8
○ 만해 한용운 심우장 :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29길 29-1
○ 길상사 : 서울시 성북구 선잠로5길 68

시민기자 이다현

선명한 시선으로 현장의 맥락을 정확히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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