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쉬면서도 지칠까…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휴식'

김동현 부장

발행일 2026.08.21. 15:11

수정일 2026.08.21. 15:27

조회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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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은 장기간의 업무 스트레스가 누적돼 신체적·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다. 휴가를 다녀온 뒤에도 피로와 무기력이 지속된다면 단순히 쉬는 것을 넘어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휴식이 필요하다. 산책과 대화, 디지털 기기 사용 줄이기 등 일상 속 회복의 시간을 꾸준히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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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번아웃에 더 취약한 경우가 많다.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번아웃에 더 취약한 경우가 많다.
  9화   여름휴가와 직장인의 번아웃 증후군
휴가만 다녀오면 괜찮아질 줄 알았습니다.
매년 여름휴가 시즌이 끝날 시기에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다. 며칠 동안 국내나 가까운 해외로 여행을 다녀왔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충분히 잠도 잤는데 휴가를 마치고 난 출근 첫날부터 다시 숨이 막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출근길 발걸음은 무겁고, 컴퓨터를 켜는 순간부터 피로가 밀려온다고 한다. 몸은 분명 휴가를 다녀왔는데 마음은 전혀 쉬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휴가를 ‘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휴가는 또 하나의 해결해야 할 프로젝트가 되기도 한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사진을 남기고, SNS에 올릴 추억을 만들다 보면 오히려 휴가가 끝난 뒤 “쉬러 갔다가 더 피곤해졌다”고 느끼게 된다.

번아웃…‘조금만 더’가 쌓인 결과

진정한 휴식은 단순히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긴장했던 마음이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 시간이다.

최근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번아웃(Burnout)이다. 번아웃은 오랜 기간 지속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에너지가 모두 고갈된 상태를 의미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번아웃을 직업과 관련된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처럼 느껴진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주말 내내 쉬어도 개운하지 않다. 점차 집중력이 떨어지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늘어나며,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이전에는 보람을 느끼던 업무도 이제는 의무처럼만 여겨지고, “열심히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 마음을 채운다.

이러한 변화는 결코 게으르거나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번아웃에 더 취약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한 채 “조금만 더”,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쉬자”를 반복하다 보면 마음의 에너지는 조금씩 소진된다.
우리는 여가시간조차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우리는 여가시간조차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일하지 않는다고 모두 쉬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열심히 사는 사람’을 칭찬한다. 하지만 ‘잘 쉬는 법’을 배우는 기회는 많지 않다. 여가시간조차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운동도 해야 하고, 자기계발도 해야 하며, 여행도 알차게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휴가지에서도 업무 메신저를 확인하고 이메일을 읽는 일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었다.
그러나 뇌는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난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회복된다. 업무와 관련된 생각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해야 할 일 대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시간, 즉 자기돌봄의 시간이 필요하다. 몸의 근육이 쉬어야 회복되듯 마음도 긴장을 풀어야 다시 힘을 낼 수 있다.

휴식에도 ‘질’이 있다

그래서 휴가의 길이보다 중요한 것은 휴가의 ‘질’이다. 멀리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좋다. 하루쯤은 알람 없이 늦잠을 자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하고, 숲길이나 강변을 천천히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스트레스 상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가까운 가족이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식사를 하며 웃고 이야기하는 시간도 마음에는 훌륭한 휴식이 된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에서 잠시 멀어지는 시간을 권하고 싶다. 우리는 쉬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의 삶과 자신을 비교한다. 이러한 디지털 자극은 뇌를 계속 각성 상태로 유지시키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을 방해할 수 있다. 하루 한두 시간이라도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현재의 풍경과 사람들에게 집중해 보자. 생각보다 마음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휴식은 몸보다 마음에게 주는 휴식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휴식은 몸보다 마음에게 주는 휴식일지도 모른다.

휴가 뒤에도 필요한 ‘회복의 시간’

휴가가 끝난 뒤에도 회복은 계속되어야 한다. 출근 첫날부터 밀린 업무를 모두 처리하려고 하기보다는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천천히 리듬을 회복하는 것이 좋다. 점심시간에 잠시 햇볕을 쬐며 걷고, 퇴근 후에는 업무 알림을 잠시 끄는 작은 습관도 번아웃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루 10분이라도 자신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결코 사치가 아니라 정신건강을 위한 투자다.

다만 휴가를 다녀온 뒤에도 피로감과 무기력, 불안감이 수주 이상 지속되거나, 일에 대한 의욕이 완전히 사라지고 이전에 즐겁던 활동에서도 더 이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단순한 번아웃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수면장애, 식욕 변화, 반복되는 자책감, 집중력 저하가 동반된다면 혼자 견디기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상태를 정확하게 평가받는 것이 필요하다. 번아웃과 우울증은 서로 구분되는 개념이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조기에 치료할수록 회복도 빠르다.
휴식은 게으름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힘을 충전하는 시간이다.
휴식은 게으름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힘을 충전하는 시간이다.

잠시 멈추는 용기...충분히 쉬어야 다시 나아갈 수 있다

정신건강은 특별한 사람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듯 마음이 지쳤을 때도 자신을 돌보는 것은 건강한 삶의 한 과정이다. 휴식은 게으름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힘을 충전하는 시간이며, 나 자신을 아끼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이번 여름휴가에는 여행 가방만 챙기지 말고 마음의 짐도 잠시 내려놓아 보자. 멀리 떠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잠시 멈추는 용기다. 충분히 쉬어야 다시 힘껏 걸어갈 수 있다. 올여름, 가장 필요한 휴식은 어쩌면 몸보다 먼저 마음에게 주는 휴식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오래 일하기 위해 쉬는 것이 아니라, 더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쉰다. 몸의 휴가만큼 마음의 휴가도 꼭 허락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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