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돌봄이 필요해요" 숫자로 보는 가족돌봄청년 실태

박한슬 작가

발행일 2025.08.07. 16:22

수정일 2025.08.07. 17:09

조회 3,810

박한슬 작가의 숫자로 보는 서울 이야기
가족돌봄청년 지원 사업
가족돌봄청년 지원 사업

박한슬 작가의 ‘숫자로 보는 서울 이야기’ (7) 가족돌봄청년 지원 사업

우리에게 ‘청년’이라는 단어는 흔히 ‘가능성’과 동의어처럼 쓰인다. 청년기의 자기계발 수준에 따라 이후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청년들은 이 귀한 시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미래를 위한 도약 대신, 생존과 돌봄이라는 현실에 묶여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 돌봄을 맡는 청년들은 예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의 삶은 공식 통계에도, 복지제도에도 포착되지 않았다. 부모의 병간호, 조부모의 치매 돌봄, 장애가 있는 형제자매의 일상 보조 등 돌봄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 무게는 청년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크다.

물론 간병 부담은 청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청년에겐 이런 상황이 더 뼈아프다. 돌봄에 헌신하는 사이, 청년기에 반드시 이뤄야 할 성장이 유예되기 때문이다. 자기계발과 사회진입이라는 중요한 인생 과업을 수행해야 할 시기를, 가족의 생계와 건강을 책임지는 ‘비공식 복지 인력’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런 식의 가족 돌봄 노동에는 임금도 없고, 사회적 인정도 따르지 않는다. 경제적 보상이 없는 건 물론 사회적으로도 경력이 되지 못한다. 그 손실이 몇 년간 누적되면, 생애 초반에 생긴 격차는 점차 벌어지고, 결국에는 되돌리기 어려운 차이로 굳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가족 돌봄에 매인 청년들은 얼마나 될까?

숫자로 드러난 가족돌봄청년의 실태

서울시가 2023년 8월부터 1년간 수행한 실태조사 결과는 이러한 청년들의 실상을 처음으로 수치화했다. 조사에 따르면, 대상 청년들은 하루 평균 4.8시간, 주당 33.6시간을 가족 돌봄에 사용하고 있었으며, 돌봄 기간은 평균 6.72년에 달했다. 하루를 보내는 일정표가 돌봄을 중심으로 짜여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62.6%는 ‘거의 매일’ 돌봄을 수행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돌봄 중 가장 어려운 점으로는 경제적 부담(90.8%)이 압도적으로 지목됐다.

문제는 이러한 부담이 단순히 현재의 피로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족을 돌보는 청년이 겪는 스트레스는 곧 소진(burn-out) 증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우울, 불면, 사회적 고립 같은 정서적 후유증을 유발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은 비돌봄청년에 비해 우울감을 경험할 위험이 약 2배 높았으며, 스트레스 노출과 개인·사회 자원을 통제한 다층 분석에서는 그 위험이 4.07배까지 증가했다. 특히 여성, 청소년, 수도권 거주자,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청년일수록 취약도가 더 높았다.

실제로 가족돌봄 경험이 있는 청년 1,796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에서도 우울감의 발생률은 지속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남성의 경우 3.76%(비돌봄군 2.37%), 여성의 경우 7.73%(비돌봄군 4.62%)로, 성별을 불문하고 돌봄 경험자에서 우울감 비율이 더 높았다. 거주 지역 또한 유의미한 변수였다. 수도권 거주 가족돌봄청년의 우울 경험 비율은 7.27%로, 비수도권의 4.53%보다 현저히 높았다. 요컨대 돌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은 곧 심리적 고립과 사회적 불이익의 연쇄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족 안의 돌봄’은 왜 유독 청년에게 집중되는 것일까.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적 복지 체계에 있다. 효(孝)로 대표되는 전통적 가치관은 청년에게 부모나 형제자매에 대한 돌봄을 전담하도록 압박하며, 국가는 이를 방관함으로써 청년이 돌봄을 ‘독박’으로 떠안게 만든다. 특히 한국의 복지 제도는 가구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결혼하지 않은 청년은 여전히 가구원으로 분류되고, 이로 인해 공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청년이 자신의 진로나 생계를 미룬 채 가족을 돌보고 있더라도, 제도상 복지 대상자로조차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복지 제도는 가구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청년은 공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한국의 복지 제도는 가구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청년은 공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가족 내 사적 문제에서 공공 복지의 영역으로

서울시가 ‘가족돌봄 청년’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를 행정 개념으로 공식화한 것은 2023년 7월, '서울특별시 가족돌봄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가 시행되면서부터다. 그동안 사적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청년의 돌봄 노동이 비로소 제도적으로 호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서울 외에도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가족돌봄청년 지원 조례를 제정하긴 했지만, 대부분이 단발성 조사에 그치거나 실질적 지원사업이 전무한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의 정책은 전국적으로도 가장 앞선 선도 사례에 가깝다.

서울시 가족돌봄청년 지원사업은 크게 두 가지 트랙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2023년에 시행된 ‘선도사업’(또는 후원연계사업) 형태의 맞춤형 현금 지원 프로그램이다. 이 사업을 통해 가족돌봄 부담이 큰 청소년·청년 가구 약 150곳을 선정하여 생계·주거·의료·학습 등을 아우르는 복합 지원 패키지를 최대 500만 원 규모로 제공했다. 둘째는 2024년부터 본격화된 ‘디딤돌소득 3단계 시범사업’으로, 약 5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소득·재산 수준을 조사한 뒤, 기준 중위소득 85%와 실제 가구소득의 차액 중 절반을 매달 현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단순 정액 지원이 아니라, 그동안 개인에게 전가되어 온 돌봄 부담을 공공이 제도적으로 분담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서울시의 가족돌봄청년 지원은 기존 복지제도와 여러 측면에서 차별성을 보인다. 첫째, 대상 선정 기준이 비교적 유연하다. ‘지원 연령’은 만 9세(오기가 아니다)에서 39세까지로 넓게 설정되어 있고, ‘소득 기준’ 또한 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사업별로 상이)로 완화되어 있어, 생계급여나 긴급복지제도보다 진입 문턱이 낮다. 둘째, 단순한 현금 지급을 넘어, 돌봄 청년의 실질적인 복지를 위해 공공심리지원센터와 연계한 전문 심리상담이나 맞춤형 서비스 등 다층적 지원 체계를 마련했다. 이처럼 서울시는 청년의 돌봄 부담이 더 이상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제도적 과제임을 분명히 하며, 다방면의 공공 지원을 펼치고 있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지원 규모와 예산은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며, 무엇보다 당사자가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서울시 가족돌봄청년 정책은 분명 의미 있는 출발점이다. 돌봄을 단순한 ‘가족 내 사적 문제’가 아니라, ‘공공이 개입해야 할 구조적 위험’으로 정의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청년들이 돌봄으로 인해 미래의 가능성까지 박탈당하지 않도록 공적 개입을 실행한 것은,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서울시의 시정 철학과도 잘 맞닿아 있다. 돌봄은 어느 세대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오는 과제다. 단순히 청년만을 위한 정책이라고 비판하기엔, 이 정책의 수혜자들이 더 나은 경제적 기반 위에서 더 건강한 돌봄 환경을 조성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가 그 혜택을 함께 누리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진정한 의미의 동행(同行)이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가족돌봄청년 지원사업

○ 지원 내용
 - 개별 맞춤 정책 안내 및 정보 제공 : 생계, 주거, 돌봄, 의료, 금융, 교육, 취업, 심리, 문화지원 등
 - 기존 정책·서비스 연계(공공/민간)
 - 가족돌봄청년 당사자 네트워크, 돌봄 역량강화 프로그램 등
 ☞ 가족돌봄정보 등록

서울시 가족돌봄청년 지원팀

○ 운영시간 : 평일(월~금) 9:00~18:00
○ 장소 : 서울시 마포구 백범로 31길 21, 서울시복지재단
○ 문의 : 02-6353-0336-9 /서울시 가족돌봄청소년·청년 지원 안내/상담 : 1668-0120
 - 채팅상담 : 카카오톡 채널 '서울시가족돌봄청년지원 WAY'
 - 인스타그램 : @youngcarer_seoul
 - 전자우편 : careyouth@welfare.seoul.kr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