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봄꽃 정원, 아래에는 역사와 예술이…서소문역사공원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발행일 2026.04.20. 10:04

서소문역사공원에 핀 튤립 ©최세범
봄이 되면 자연스레 발길이 닿는 곳이 있다. 벚꽃과 튤립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공원, 산책하기 좋은 너른 광장... 그런데 그 공원 바로 아래, 지하 깊숙이 무언가가 있다면? 서울 도심에 자리한 서소문역사공원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지상과 지하가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 곳이다. 위로는 봄꽃이 피어나고, 아래로는 역사와 예술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한 번 다녀온 사람은 꼭 다시 찾게 된다는 서울의 숨은 명소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으로 내려가는 길 ©최세범

지상은 공원, 지하는 박물관으로 되어 있다. ©최세범

서소문은 100여 년간 가장 많은 천주교인이 처형된 최대 순교 성지이다. ©최세범
서소문, 어떤 곳인가?
서소문은 조선시대 한양의 서쪽에 있던 작은 문, '소의문(昭義門)'의 다른 이름이다. 지금은 이름조차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이 일대는 조선시대 공식 처형장이 있던 자리다.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1839년 기해박해, 1866년부터 이어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바로 이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신원이 확인된 이들만 100여 명에 달한다. 그 역사적 무게를 품은 채, 이 땅은 오랫동안 잊혀 있었다. 그러다 2019년, 지하에 박물관이 들어서고 지상에 공원이 조성되면서 비로소 시민들 곁으로 돌아왔다.

서소문역사공원에 핀 색색의 튤립 ©최세범
서소문역사공원, 역사와 봄꽃이 함께
박물관을 찾는 공식 관람 동선은 지상 서소문역사공원에서 시작된다.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탁 트인 광장과 색색의 튤립이다. 노란색, 빨간색 튤립이 화단을 가득 채워, 자칫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는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지상 공원에 있는 순교자 현양탑 ©최세범
공원 한켠에는 순교자 현양탑이 서 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된 44명의 성인과 복자 27명을 비롯해, 이곳에서 희생된 수많은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는 탑이다. 처음 세워진 것은 1984년이지만 공원 정비 과정에서 헐리고, 지금의 탑은 1999년에 다시 세워진 것이다.

지상 공원에 있는 노숙자 예수 ©최세범
그 근처에는 발길을 멈추게 하는 조각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노숙자 예수'다. 얇은 담요를 얼굴까지 덮어쓰고 누운 노숙인의 형상인데, 담요 밖으로 보이는 발등에 못 자국이 나 있다. 캐나다 작가 티모시 슈말츠의 작품으로, 마태오복음 25장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박물관 입구에 있는 순교자의 칼 ©최세범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지하 1층, 내려가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공간
공원에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입구로 향하다 보면, 지하 1층으로 이어지는 야외 공간에 조형물 하나가 눈길을 붙잡는다. '순교자의 칼'(이경순 작)이다. 조선시대 죄인의 목에 씌웠던 칼을 형상화해 여러 겹으로 겹쳐 세운 작품으로, 땅을 뚫고 하늘로 솟구치는 형태가 강렬하다.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이들의 기개가 그대로 담긴 듯하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지하 1층 최종태 기증전시실 ©최세범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지하 1층에 도서관과 최종태 기증전시실이 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자 한국 현대조각의 거장인 최종태 작가가 일생의 작품 중 157점을 엄선해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기증하며 2024년 2월 문을 열었다. 인간을 주제로 삶과 종교, 예술을 탐구해온 작가의 작품들이 조용히 관람객을 맞는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지하 2층 성 정하상 기념경당 ©최세범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지하 2층 — 경당의 고요함
지하 2층에는 성 정하상 기념경당이 있다. 이곳에서 순교한 정하상과 그의 가족들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기해박해 당시 신앙의 부당함을 왕에게 직접 상소했던 정하상, 신유박해 때 처형된 그의 아버지와 형, 그리고 어머니와 누이까지 —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38년의 시간 간격을 두고 같은 자리에서 순교했다. 이 경당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지금도 실제 미사가 드려지는 곳으로, 매일(월요일 휴관)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열린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지하 3층 상설전시실 ©최세범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지하 3층, 가장 깊은 곳의 가장 밝은 공간
지하 3층은 상설전시실이다. 조선 후기 사상사의 흐름을 다룬 제1전시실과 서소문 지역의 역사성을 이야기하는 제2전시실로 나뉜다. 처음 지하로 내려올 때의 묵직한 분위기와 달리, 이곳은 놀랄 만큼 현대적이고 밝다. 조명과 전시 구성이 세련되어 역사적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 풀어낸다. 가장 깊은 곳에 가장 환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 묘하게 어울린다.

건축과 예술, 공원까지 함께 즐기는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과 서소문역사공원 ©최세범
서소문역사공원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이런 분들께 추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과 서소문역사공원은 입장료가 무료다. 종교와 무관하게 누구나 편하게 둘러볼 수 있으며, 역사에 관심 있는 분은 물론 건축과 예술을 즐기는 분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다. 봄꽃을 보며 가볍게 산책하고 싶다면 지상 공원만 들러도 좋고, 시간 여유가 있다면 지하로 내려가 찬찬히 둘러볼 것을 권한다. 지하철로는 서대문역 7번 출구, 충정로역 4번 출구, 서울역 2번 출구에서 접근할 수 있다. 박물관 운영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서소문역사공원
○ 위치 : 서울시 중구 칠패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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