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에서 탑골공원까지, 1919년 3·1운동의 시간을 걷다

시민기자 조수연

발행일 2026.02.25. 14:48

수정일 2026.02.25. 16:15

조회 569

승동교회에 있는 '3·1독립운동 기념터' 비석 ©조수연
승동교회에 있는 '3·1독립운동 기념터' 비석 ©조수연
우리는 바쁜 일상에서 역사를 잊고 살아간다. 출퇴근길에 스쳐 지나가는 건물과 골목, 공원 한편에 담긴 의미를 미처 돌아보지 못한 채 오늘의 시간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서울 도심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발걸음을 조금만 늦추면, 익숙한 풍경 속에서 100여 년 전의 숨결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서울 도심을 직접 걸었다. 덕수궁에서 시작해 중앙고등학교와 천도교, 승동교회, 그리고 탑골공원에 이르기까지 흩어져 있던 역사의 자취를 하나씩 따라갔다. 잊혀져 가던 장소에 다시 이름을 불러주듯, 그날의 의미를 오늘의 공간 위에 겹쳐보는 시간이었다.
덕수궁 중화전 ©조수연
덕수궁 중화전 ©조수연

고종황제의 서거로 3·1운동의 발단이 된 곳 '덕수궁'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덕수궁이다. 고종 황제가 승하한 곳이자, 3·1운동의 발단이 된 장소다. 1919년 1월 고종의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은 민심을 크게 흔들었다. 국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황제의 죽음은 단순한 비보가 아니었다. 당시 독살설까지 퍼지며 분노는 빠르게 확산됐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 ©조수연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 ©조수연
덕수궁 대한문 앞은 지금도 시민과 관광객으로 붐빈다. 그러나 100여 년 전, 이곳에는 국장 행렬을 보기 위해 모인 인파와 함께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던 백성들의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고종의 장례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서울로 모였고, 이는 3월 1일 만세운동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배경이 됐다.
중앙고등학교 전경 ©조수연
중앙고등학교 전경 ©조수연

3·1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학생들 '중앙학교'

다음으로 향한 곳은 중앙고등학교다. 석조로 지어진 본관 건물은 단단한 외관만큼이나 한국 근대사의 굵직한 장면들을 품고 있다. 교정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건물은 단순한 학교를 넘어, 일제강점기 민족교육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당시 중앙고등학교는 신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키워내던 공간이었다.

3·1운동 당시 학생들은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었다. 중앙학교를 비롯한 학생들은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교실 안에서 배우던 역사와 현실의 괴리를 몸으로 체감한 청년들은 거리로 나섰고, 그 용기는 전국적인 학생운동으로 확산됐다. 중앙고 교정은 그런 시대의 공기를 함께 견뎌낸 자리다.
인촌 김성수 선생 가옥 ©조수연
인촌 김성수 선생 가옥 ©조수연
중앙고학교 인근에 자리한 김성수 선생 가옥 역시 3·1운동과 함께한 곳이다. 민족교육과 언론, 계몽운동에 힘썼던 인물들의 활동무대가 이 일대를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는 사실은, 북촌이 단순한 주거지가 아닌 사상의 거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오늘의 교정은 고요하지만, 그 안에는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던 청년들의 질문과 결단이 여전히 겹쳐 흐르고 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 제107주년 3·1절 기념식 현수막이 걸려 있다. ©조수연
천도교 중앙대교당. 제107주년 3·1절 기념식 현수막이 걸려 있다. ©조수연

독립선언서 인쇄와 배포가 이뤄진 곳 '천도교 중앙대교당'

이후 찾은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3·1운동 준비의 핵심 공간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다수가 천도교 인사였고, 이곳에서 독립선언서 인쇄와 배포가 이루어졌다. 건물 내부는 고요했지만, 1919년 3월을 앞둔 긴박한 분위기가 상상됐다.
천도교는 독립선언문을 배부했다. ©조수연
천도교는 독립선언문을 배부했다. ©조수연
천도교는 종교를 넘어 민족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일은 곧 목숨을 건 선택이었다. 선언서 한 장, 한 장에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조선은 독립국임을 선언한다’는 시대적 결단이 담겨 있었다.
  •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조성한 '삼일대로 시민공간 사업'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을 넣었다. ©조수연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조성한 '삼일대로 시민공간 사업'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을 넣었다. ©조수연
  • 천도교 중앙대교장 인근에 자리한 '독립선언문 배부 터' 비석과 시민들의 이름 ©조수연
    천도교 중앙대교장 인근에 자리한 '독립선언문 배부 터' 비석과 시민들의 이름 ©조수연
  •  '삼일대로 시민공간 사업'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조수연
    '삼일대로 시민공간 사업'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조수연
  •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조성한 '삼일대로 시민공간 사업'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을 넣었다. ©조수연
  • 천도교 중앙대교장 인근에 자리한 '독립선언문 배부 터' 비석과 시민들의 이름 ©조수연
  •  '삼일대로 시민공간 사업'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조수연
천도교 중앙대교당 인근에는 '독립선언문 배부 터' 표석과 3·1운동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삼일대로 시민공간 사업'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들을 새긴 '시민참여 이름돌'이 설치돼 있다. 이는 특정 인물만을 기리는 방식이 아니라, 독립을 향한 뜻이 모두의 것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19년의 만세운동이 지도층만의 결단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 학생, 종교인들이 함께 만들어낸 역사였듯, 오늘의 시민 역시 기억의 주체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름 하나하나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은 선언처럼 읽힌다.
승동교회 전경 ©조수연
승동교회 전경 ©조수연

학생대표들이 모여 3·1운동을 논의했던 '승동교회'

승동교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이곳은 학생대표들이 모여 3·1운동을 논의한 기념터로 남아 있다. 교회 한편에 세워진 표석에는 “학생대표들이 모의하였던 곳”이라는 설명이 새겨져 있다.
  • 승동교회에서 학생대표들은  3·1운동 계획을 구체화했다. ©조수연
    승동교회에서 학생대표들은 3·1운동 계획을 구체화했다. ©조수연
  • 3·1독립운동 기념터 ©조수연
    3·1독립운동 기념터 ©조수연
  • 승동교회에서 학생대표들은  3·1운동 계획을 구체화했다. ©조수연
  • 3·1독립운동 기념터 ©조수연
1919년 2월, 이곳에서 학생대표들은 만세운동 계획을 구체화했다.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전국적인 거사로 확산시키기 위한 논의가 이어졌다. 교회라는 공간은 감시를 피하면서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였다.

오늘의 승동교회는 일상적인 예배 공간이지만, 그 자리에는 청년들의 치열한 고민이 겹쳐진다. 신앙과 민족의식이 교차했던 현장이 지금도 도심 속에 남아 있다.
  • 인사동에 자리한 3·1독립선언광장 ©조수연
    인사동에 자리한 3·1독립선언광장 ©조수연
  • 3.1독립선언광장 전경 ©조수연
    3.1독립선언광장 전경 ©조수연
  • 인사동에 자리한 3·1독립선언광장 ©조수연
  • 3.1독립선언광장 전경 ©조수연
인사동으로 이동해 3·1독립선언광장에 섰다. 안내판에는 독립선언의 의미와 공간 조성 취지가 적혀 있다. 도심 빌딩 사이에 자리한 3·1독립선언광장은 생각보다 소박하지만, 의미는 작지 않다.

한편에 새겨진 ‘3·1독립선언광장’이라는 글자를 바라보며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간이지만, 우리가 잠시만 멈춘다면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선언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지탱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탑골공원 삼일문 ©조수연
탑골공원 삼일문 ©조수연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탑골공원'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탑골공원이다. 삼일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팔각정 주변으로 시민들이 쉬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이곳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다.
  • 탑골공원 팔각정 ©조수연
    탑골공원 팔각정 ©조수연
  • 탑골공원 안내 및 주의사항 ©조수연
    탑골공원 안내 및 주의사항 ©조수연
  • 탑골공원 팔각정 ©조수연
  • 탑골공원 안내 및 주의사항 ©조수연
지금의 공원은 평온하다. 어르신들이 담소를 나누고, 시민이 산책한다. 그러나 107년 전 이곳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그 함성은 곧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탑골공원 팔각정을 바라보며 그날의 장면을 떠올려 본다. 두려움에서도 외쳤던 한마디는 역사를 움직였다. 비폭력 만세운동은 세계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시민 저항으로 기록되고 있다.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독립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가치이다. 도심을 걷다 잠시 멈춰 서서, 그날의 함성을 떠올려보는 일.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가장 일상적인 방법 아닐까.

덕수궁

○ 위치 :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99
○ 교통 :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1번 출구에서 71m
○ 운영시간 : 화~일요일 09:00~21:00, 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누리집

중앙고등학교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길 164(계동)

인촌 김성수 선생 가옥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84-6

천도교 중앙대교당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승동교회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7-1

3.1독립선언광장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94-39

탑골공원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종로 99 탑골공원
○ 운영일시 : 월~일요일 하절기(3~10월) 09:00~18:00, 동절기(11~2월) 09:00~17:00

시민기자 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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