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에겐 안식처, 시민에겐 낭만…하늘공원 물들인 '겨울억새' 물결

시민기자 이혜숙

발행일 2026.01.22. 15:59

수정일 2026.01.22. 15:59

조회 2,373

한강 노을과 어우러진 '금빛 억새', 최고의 겨울 데이트 코스

은빛 억새 파도가 일렁이던 하늘공원은 11월경이면 아쉬운 이별을 준비하곤 했다. 이듬해의 생육을 위해 억새를 모두 베어내던 관례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서울시가 2002년 공원 조성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억새 예초 시기를 2026년 봄으로 늦췄기 때문이다. 덕분에 올해는 겨울억새가 선사하는 '금빛 낭만'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 [관련 기사] 겨울억새는 처음이지? 하늘공원 억새, 봄까지 남긴다

하늘공원에 들어서자 예년 같으면 밑동만 남았을 자리에 어른 키보다 높게 자란 억새들이 빽빽하게 줄지어 서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가을의 억새가 화려한 주인공 같았다면, 겨울의 억새는 세월의 깊이를 아는 현자(賢者) 같았다. 바싹 마른 잎사귀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내는 사각거리는 소리는 마음의 평안을 찾아준다. 도심의 소음이 지워진 금빛 억새숲을 걷다 보니 시간이 멈춰버린 낯선 행성에 떨어진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번 정책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은 ‘공존’에 있다. 하늘공원은 붉은배새매와 황조롱이가 머무는 생태의 보고이다. 그동안 억새를 베어내면 이 작은 생명들은 추운 겨울 몸을 숨길 곳과 먹이를 찾기 위해 떠돌아야 했으나, 이번 존치로 철새들도 겨울 내에 보다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봄에도 일부 구간은 존치 구획으로 설정하여 억새의 생육 상태 모니터링을 지속 추진하고, 겨울 동안 남겨진 억새 상태를 살펴본 후 수명이 다해 고사한 개체를 중심으로 교체 식재를 추진한다고 한다. 이같은 노력들은 억새 군락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하늘공원이 서울을 대표하는 억새 명소로서의 입지를 더욱 견고히 하는데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장에서 바라본 억새 군락은 이제 거대한 '생명의 이불'이 되어 있었다. 무성한 억새 숲 사이로 이름 모를 새들이 분주히 드나드는 모습은, 이곳이 단순히 인간의 눈길을 즐겁게 하는 관광지를 넘어 야생 동식물의 소중한 보금자리임을 일깨워주었다.

하늘중앙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일몰 또한 압권이었다. 지는 해가 금빛 억새에 닿을 때, 공원 전체가 황금빛 바다로 변하는 듯했다. ‘천국의 계단’ 포토존과 동측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전경도 겨울 하늘공원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었다.

하늘공원을 감싸도는 '메타세쿼이아 숲길'도 찾았다. 이 길은 하늘공원 산책로를 따라 조성되어, 도심 한 가운데서도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힐링 공간으로 유명하다. 가을에는 붉은 빛과 갈색으로 물들며 아름다운 단풍 길을 만들어 준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은, 겨울에도 독특한 자태를 뽐내며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메타세쿼이아길의 1.6km 구간에 조성된 '시인의 거리'도 눈길을 끌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걸으며 읽는 시의 음율은 마치 숲속의 교향악 같이 마음을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흙길 위를 맨발로 걷는 시민들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도심 속에서도 자연과 교감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겨울 억새를 남긴 이번 결정은 도시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봄의 새순을 위해 서두르지 않고, 겨울의 매력을 오롯이 지켜내는 서울시의 유연한 관리 방식에 박수를 보내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늘공원이 '자연을 생각하며 함께 머무는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하늘공원의 겨울 억새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하늘공원 조망지점'
하늘공원의 겨울 억새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하늘공원 조망지점'©이혜숙
어른 키보다 높게 자란 억새들이 빽빽하게 줄지어 서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신기하다.
어른 키보다 높게 자란 억새들이 빽빽하게 줄지어 서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신기하다. ©이혜숙
하늘공원 입구에서부터 차가운 강바람을 머금은 억새들이 나지막이 속삭이는 듯하다.
하늘공원 입구에서부터 차가운 강바람을 머금은 억새들이 나지막이 속삭이는 듯하다. ©이혜숙
가을의 억새가 화려한 주인공 같았다면, 겨울의 억새는 세월의 깊이를 아는 현자(賢者) 같다.
가을의 억새가 화려한 주인공 같았다면, 겨울의 억새는 세월의 깊이를 아는 현자(賢者) 같다. ©이혜숙
도심의 소음이 지워진 금빛 억새숲을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낯선 행성에 떨어진 듯 신비로운 기분마저 든다.
도심의 소음이 지워진 금빛 억새숲을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낯선 행성에 떨어진 듯 신비로운 기분마저 든다.©이혜숙
매년 11~12월에 억새를 잘라내어 겨울 풍경을 즐기기 어려웠지만, 올해는 관리 시기를 늦춰 겨울 억새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매년 11~12월에 억새를 잘라내어 겨울 풍경을 즐기기 어려웠지만, 올해는 관리 시기를 늦춰 겨울 억새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혜숙
갈대숲 사이로 우뚝 솟은 하늘공원의 전력 수요를 담당하는 풍차의 모습
갈대숲 사이로 우뚝 솟은 하늘공원의 전력 수요를 담당하는 풍차의 모습©이혜숙
관람객들이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서울억새 포토존
관람객들이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서울억새 포토존©이혜숙
잘린 억새와 갈대들은 평화의 공원 '억새말 형제' 같은 대형 조형물의 재료로 쓰인다.
잘린 억새와 갈대들은 평화의 공원 '억새말 형제' 같은 대형 조형물의 재료로 쓰인다.©이혜숙
동남측에 위치한 억새 문자를 형상화한 포토존과 ‘천국의 계단’ 포토존
동남측에 위치한 억새 문자를 형상화한 포토존과 ‘천국의 계단’ 포토존©이혜숙
  • 하늘공원 남서측에 조성된 '2023 서울정원박람회 존치정원'
    하늘공원 남서측에 조성된 '2023 서울정원박람회 존치정원'©이혜숙
  • 노을빛에 물든 겨울 억새와 정원박람회 수상작품들이 한 폭의 그림같이 어울린다.
    노을빛에 물든 겨울 억새와 정원박람회 수상작품들이 한 폭의 그림같이 어울린다.©이혜숙
  • 관람객들은 정원박람회에서 받았던 감동을 억새풀밭 사이에서 다시금 느낄 수 있다.
    관람객들은 정원박람회에서 받았던 감동을 억새풀밭 사이에서 다시금 느낄 수 있다.©이혜숙
  • 하늘공원 남서측에 조성된 '2023 서울정원박람회 존치정원'
  • 노을빛에 물든 겨울 억새와 정원박람회 수상작품들이 한 폭의 그림같이 어울린다.
  • 관람객들은 정원박람회에서 받았던 감동을 억새풀밭 사이에서 다시금 느낄 수 있다.
과거 난지도 매립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매립가스 포집시설
과거 난지도 매립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매립가스 포집시설©이혜숙
난지도 매립지 시설이 있던 시절부터 지금의 하늘공원이 있기까지 역사를 기록한 안내문
난지도 매립지 시설이 있던 시절부터 지금의 하늘공원이 있기까지 역사를 기록한 안내문©이혜숙
하늘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모습
하늘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모습ⓒ이혜숙
하늘공원 산책로를 따라 조성된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도심 속 대표적인 힐링 공간이다.
하늘공원 산책로를 따라 조성된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도심 속 대표적인 힐링 공간이다. ©이혜숙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것으로 유명한데, 겨울에는 잎이 떨어지고 매마르면서도 거대한 모습을 보여준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것으로 유명한데, 겨울에는 잎이 떨어지고 매마르면서도 거대한 모습을 보여준다.©이혜숙
  •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시인의 거리에서 완벽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시인의 거리에서 완벽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이혜숙
  • '시인의 거리'란 이름은 꽃과 함께 시도 감상할 수 있게 꾸며 놓아 붙여졌다.
    '시인의 거리'란 이름은 꽃과 함께 시도 감상할 수 있게 꾸며 놓아 붙여졌다.©이혜숙
  • 마포문화원과 마포문인협회가 선정한 시민 시인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산책하며 숲 속에 전시된 시를 감상할 수 있다.
    마포문화원과 마포문인협회가 선정한 시민 시인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산책하며 숲 속에 전시된 시를 감상할 수 있다.©이혜숙
  •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시인의 거리에서 완벽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 '시인의 거리'란 이름은 꽃과 함께 시도 감상할 수 있게 꾸며 놓아 붙여졌다.
  • 마포문화원과 마포문인협회가 선정한 시민 시인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산책하며 숲 속에 전시된 시를 감상할 수 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에 조성된 독서 공간에서 시를 읽으며 휴식도 취하는 시간을 가진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에 조성된 독서 공간에서 시를 읽으며 휴식도 취하는 시간을 가진다.©이혜숙
  • 하늘공원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하늘계단
    하늘공원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하늘계단©이혜숙
  • 하늘계단 입구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는 길고양이
    하늘계단 입구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는 길고양이©이혜숙
  • 하늘공원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하늘계단
  • 하늘계단 입구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는 길고양이
하늘공원 겨울 억새 군락은 이제 거대한 '생명의 이불'이 되어 온누리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하늘공원 겨울 억새 군락은 이제 거대한 '생명의 이불'이 되어 온누리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이혜숙

하늘공원 겨울 억새

○ 위치 : 서울시 마포구 하늘공원로 95
○ 교통 :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마포구청역 하차 후 도보 약 30분 거리
누리집

하늘공원 메타세쿼이아길

○ 위치 :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4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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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이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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