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장례…빨라진 고령화 시대, 도시의 숙제는?

박한슬 작가

발행일 2025.12.29. 13:04

수정일 2025.12.29. 17:46

조회 1,189

박한슬 작가의 숫자로 보는 서울 이야기
서울추모공원
서울추모공원
  15화   고령사회를 대비하는 돌봄 인프라

최근 몇 년 사이 '응급실 뺑뺑이'라는 단어가 사회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일이 잦아졌다. 119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도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도로 위를 배회하다, 골든타임을 놓치고 마는 비극적인 사건들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단순히 의사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놓기도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사정은 조금 다르다.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응급실에서 일차 처치를 한 뒤, 수술이나 입원 같은 후속 진료를 수행할 수 있는 배후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탓이 크다. 소아 응급 환자가 왔는데, 정작 소아과 전문의나 전용 병동이 없으니 응급실에서도 손사래를 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명확하단 얘기다. 기실 우리가 겪는 '뺑뺑이' 문제의 본질은 대부분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그리고 인프라의 부재가 주된 원인이란 것이다.

그런데 비단 숨이 붙어있는 사람만 이런 고통스러운 뺑뺑이를 겪는 게 아니다. 삶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떠나는 망자(亡者)들조차 마지막 안식처를 찾지 못해 영안실 냉동고를 며칠간 추가로 배회해야만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화장장을 구하지 못해 강제로 3일장이 아닌 4일장, 5일장을 치러야 하는 '장례 대란'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고령사회의 청구서, 화장(火葬) 급증

서울시는 명실상부한 거대도시다. 인구가 밀집한 만큼 삶과 죽음의 밀도 또한 높을 수밖에 없다.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서울에서만 1년에 5만 명이 넘는 이들이 사망하고 있으며, 작년인 2024년에는 그 수가 5만 9,000명에 달했다. 과거에는 선산(先山)이나 공원묘지에 시신을 매장하는 비율이 높았으나,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장례 문화의 변화로 인해 2016년부터는 화장 비율이 50%를 넘어섰고, 현재는 9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사실상 서울 시민 다수가 화장으로 생을 마감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수요가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났음에도, 공급 시설인 화장장은 여전히 대표적인 님비(NIMBY) 시설, 즉 기피시설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사회문화적 변화로 화장이 보편화된 데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사망자 수 자체가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고령 사망자 수는 앞으로도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이 자명하다. 그러니 화장장 포화는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수급 불균형이 가장 극적으로, 그리고 비극적으로 드러났던 시기가 바로 코로나19 대유행 때였다. 고령 사망자가 급증하자 전국의 화장로는 쉴 새 없이 가동되었지만, 쏟아지는 시신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유족들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도 화장 순번이 돌아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며 5일장을 지내야 했고, 심지어 서울에서 강원도나 충청도 같은 인구가 적은 지역으로 시신을 운구해 화장하는 이른바 '원정 화장'까지 등장했다.

감염병이라는 특수한 상황 탓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인프라 부족이 초래한 재난이었다. 팬데믹이 종료된 이후에도 독감이 유행하거나 환절기가 되면 어르신들의 사망 시점이 겹치며 유사한 장례 대란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에서는 이런 일이 다른 지자체에 비해 조금 덜한 편이다. 서울시는 어떻게 장례 대란을 막아내게 된 걸까.
서울시는 ‘서울추모공원’ 화장로를 추가 증설하고 지난 8월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서울추모공원’ 화장로를 추가 증설하고 지난 8월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시립 장사시설 ‘서울추모공원’ 확충…주요 시설 지하화

2024년 기준으로도 서울의 화장장 예약 현황은 타 수도권 지역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인다. 대체 왜일까. 이는 10여년 전 서울시가 화장장을 확충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성공시킨 덕분이다.

현재 서울시는 권역 내에 2개의 시립 화장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나는 1970년대부터 경기도 고양시에서 운영 중인 서울시립승화원이고, 다른 하나는 2012년 서초구 원지동에 문을 연 서울추모공원이다. 혐오시설로 분류되는 화장장이 서울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서초구, 그것도 도심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게 된 과정은 꽤 극적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화장 문화가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당시 서울시는 부족한 화장 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여 있던 현재의 서울추모공원 부지를 낙점하고 시립 화장장 건립을 추진했다. 이후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리고 실제 준공까지 밀어붙였는데, 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았다. 내 집 앞, 내 지역구에 화장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주민들의 반발은 격렬해서다.

당시 관할 구청장이 삭발 시위까지 감행하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을 정도니, 갈등의 수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수년간의 법적 공방 끝에 대법원이 서울시의 손을 들어주며 일단락되었지만, 행정이 법적 승리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파격적인 설계를 도입했다. 국내 최초로 화장로와 유족 대기실, 주차장 등 모든 주요 시설을 지하화하고, 지상에는 공원과 산책로를 조성한 것이다. 여기에 최첨단 제연소로와 고성능 필터를 도입해 연기와 냄새, 분진 등 오염물질 배출을 원천 차단했다. 시각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기피시설이라는 느낌을 완전히 지워버린 셈이다.

동시에 해당 지역의 개발제한구역 해제라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단순한 화장장이 아닌 삶을 회고하는 문화 예술 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의 박탈감을 최소화했다. 갈등을 조정하고 혜택을 분배하는 정치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 모범 사례다. 덕분에 지금은 많은 시민이 거부감 없이 서울추모공원에서 고인과의 마지막 이별을 나누고 있다.
서울추모공원은 화장로와 유족 대기실 등 주요 시설을 지하화했다.
서울추모공원은 화장로와 유족 대기실 등 주요 시설을 지하화했다.

잠재갈등 치매, 미리 대비해야

2008년 서울시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에 화장 수요가 폭발할 것을 예견하고 서울추모공원 설계 단계부터 확장 가능한 유휴 부지를 미리 확보해뒀다. 당장의 예산 절감이나 효율성만 따졌다면 불가능했을 결정이다. 이 선제적 조치는 15년 뒤 빛을 발했다. 확보해 둔 부지를 활용해 서울추모공원 화장로 증설 공사를 신속하게 추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2025년 기준, 기존 11기였던 화장로는 15기로 늘어났고, 하루 최대 59건이던 화장 건수는 85건까지 확대됐다. 수치로 보면 별것 아닌 단순한 증가 같지만, 이는 매일 26가구의 유족이 4일장이라는 고통을 겪지 않고 정상적으로 3일장을 치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서울시립승화원 역시 노후화된 구형 화장로를 스마트 화장로로 교체하여 화장 시간을 단축하고 처리 용량을 늘리는 작업을 병행 중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리 준비한 인프라가 10년 뒤 시민의 존엄을 지켜준 셈이다.

화장장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고령사회의 도래는 단순히 노인 인구의 증가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를 구성하는 인프라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한다는 얘기다. 과거 젊은 부부가 밀집해 살던 신도시 지역에서는 이제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초등학교의 통폐합이나 유휴교실 활용 문제가 화두다. 반면, 노령화가 진행된 구도심에서는 노인 돌봄 시설 부족이 발등의 불이다. 한때 결혼식으로 붐비던 예식장이 하나둘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요양병원이 들어서는 풍경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시는 2006년 서울시광역치매센터를 열고, 치매 관리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사진은 서울의 한 치매안심센터.
서울시는 2006년 서울시광역치매센터를 열고, 치매 관리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사진은 서울의 한 치매안심센터.
그런데 지금의 추이를 냉정하게 뜯어보면 우려스러운 지점이 있다. 노인 돌봄 시설, 특히 치매 전담 요양시설 역시 우리 사회에서 일종의 기피시설로 인식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 치매 노인들이 몰려다니는 시설이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식의 반발은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늙고, 누구나 아플 수 있다. 치매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노화라는 생물학적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병일 뿐이다. 망자의 화장과 같이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 잠재적인 지역 내 갈등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서울시의 추정 치매 환자 수는 15만 명을 넘어섰고, 65세 이상 인구의 약 8.84%가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인 후기 고령층(75세 이상)에 진입하는 시점이 오면 이 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공교롭게도 서울시는 2000년대 후반, 전국 지자체 중 선도적으로 '서울시광역치매센터'를 개소하며 치매 관리 인프라 구축에 시동을 걸었다. 화장장 부지를 미리 확보했듯, 다가올 고령화의 파도를 미리 읽고 대비한 것이다.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시정 철학이 선거 한철에만 쓰는 구호가 아니란 얘기다.

추후 본격적인 돌봄 대란이 닥쳤을 때, 누가 먼저 문제를 인식하고 준비했는지는 역사가 증언할 것이다. 서울추모공원이 15년 뒤의 존엄을 지켰듯, 지금 짓는 돌봄 인프라가 미래의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시민의 삶과 죽음을 책임지는 묵직한 약속으로 남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화장터와 마찬가지로 서울시의 약자 돌봄이 더 먼 미래를 내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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