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앞 덕수궁만 가봤다면 여기도 가봐요! 대한제국의 흔적이 깃든 '환구단'
발행일 2025.03.27. 13:00
대한제국 자주 독립의 의지를 담은 환구단 ©박성애
서울시청을 방문할 때 우리는 덕수궁이나 서울광장을 방문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적인 장소를 지나칠 수 있다. 그곳은 바로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장소인 ‘환구단’이다. 3.1운동 106주년, 광복 80주년을 맞아 환구단을 방문했다. 정확히는 환구단의 정문과 부속건물 황궁우(皇穹宇)이다.
환구단은 1897년 (고종 34)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옛 남별궁 터에 단을 만들어 조성한 단지다. 그 뒤 단지 내에는 화강암으로 된 기단 위에 3층 8각 지붕의 황궁우를 1889년에 축조하고 신위판을 봉안했으며,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석고단을 황궁우 옆에 세웠다.
석고의 몸체에 부각된 용무늬는 조선 말기 조각의 걸작으로 꼽힌다. 처음 조성된 단지는 1913년 일제에 의해 철거되고 이듬해 그 자리에 철도호텔이 들어서면서 축소됐으며, 지금은 황궁우와 석고 그리고 3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만이 보존돼 조선호텔 뒤에 남아 있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 황제는 환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행하고,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했다. 삼한(三韓)에서 이어지는 역사를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대한’이라 했고, 황제국임을 선포해 ‘제국’이라 한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조선왕조가 1392년 건국돼 1910년 한일합병으로 멸망할 때까지 ‘조선’이라는 국호가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1897년 10월 국호는 대한제국으로 바뀌었다. 조선이 멸망할 때의 국호 역시 ‘대한제국’이었다. 대한제국은 13년간 존속한 황제국의 나라로서 강력한 황제권을 바탕으로 고종이 자주적 근대국가를 지향한 나라이기도 했다.
고종 황제 즉위식은 환구단에서 이뤄졌다. 10월 12일 고종은 국새를 싣고 환구단으로 가서 천신(天神)과 지신(地神)에게 제사를 올리고 나서 황금색 의자에 앉아 국새를 받았다. ‘천세’만을 부르던 신하들은 ‘만세’를 세 번 불렀다. 10월 13일 고종은 명성황후의 빈전에 가서 제사를 올리고 오전 8시경 ‘대한’이라는 국호를 선포했다.
고종이 황제로 격상됨으로써 왕실의 복식과 호칭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황제는 황색의 곤룡포를 입었고, 의식을 치를 때 입는 면복(冕服)에는 12가지의 무늬를 넣은 십이장복(十二章服)을 사용했다. 고종은 황제국에 걸맞게 연호를 ‘광무(光武)’로 정했다. 대한제국 시기 근대화를 추진한 개혁을 ‘광무개혁’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한제국은 1899년 8월 교정소라는 특별 입법기구를 통해 대한제국의 헌법인 9개조에 걸친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발표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게 대한민국의 서울, 그중에서도 서울특별시청 앞에서 독립된 자주국임을 염원하며 천신에게 제사를 지낸 고종의 마음을 생각하자.
환구단은 1897년 (고종 34)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옛 남별궁 터에 단을 만들어 조성한 단지다. 그 뒤 단지 내에는 화강암으로 된 기단 위에 3층 8각 지붕의 황궁우를 1889년에 축조하고 신위판을 봉안했으며,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석고단을 황궁우 옆에 세웠다.
석고의 몸체에 부각된 용무늬는 조선 말기 조각의 걸작으로 꼽힌다. 처음 조성된 단지는 1913년 일제에 의해 철거되고 이듬해 그 자리에 철도호텔이 들어서면서 축소됐으며, 지금은 황궁우와 석고 그리고 3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만이 보존돼 조선호텔 뒤에 남아 있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 황제는 환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행하고,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했다. 삼한(三韓)에서 이어지는 역사를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대한’이라 했고, 황제국임을 선포해 ‘제국’이라 한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조선왕조가 1392년 건국돼 1910년 한일합병으로 멸망할 때까지 ‘조선’이라는 국호가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1897년 10월 국호는 대한제국으로 바뀌었다. 조선이 멸망할 때의 국호 역시 ‘대한제국’이었다. 대한제국은 13년간 존속한 황제국의 나라로서 강력한 황제권을 바탕으로 고종이 자주적 근대국가를 지향한 나라이기도 했다.
고종 황제 즉위식은 환구단에서 이뤄졌다. 10월 12일 고종은 국새를 싣고 환구단으로 가서 천신(天神)과 지신(地神)에게 제사를 올리고 나서 황금색 의자에 앉아 국새를 받았다. ‘천세’만을 부르던 신하들은 ‘만세’를 세 번 불렀다. 10월 13일 고종은 명성황후의 빈전에 가서 제사를 올리고 오전 8시경 ‘대한’이라는 국호를 선포했다.
고종이 황제로 격상됨으로써 왕실의 복식과 호칭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황제는 황색의 곤룡포를 입었고, 의식을 치를 때 입는 면복(冕服)에는 12가지의 무늬를 넣은 십이장복(十二章服)을 사용했다. 고종은 황제국에 걸맞게 연호를 ‘광무(光武)’로 정했다. 대한제국 시기 근대화를 추진한 개혁을 ‘광무개혁’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한제국은 1899년 8월 교정소라는 특별 입법기구를 통해 대한제국의 헌법인 9개조에 걸친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발표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게 대한민국의 서울, 그중에서도 서울특별시청 앞에서 독립된 자주국임을 염원하며 천신에게 제사를 지낸 고종의 마음을 생각하자.

환구단 정문 안에서 바라본 서울광장 ©박성애

황궁우은 건물 1·2층은 통층구조로 중앙에는 태조 신위를 봉안했다. ©박성애

조선 경성철도호텔을 지으면서 환구단을 헐어서 남게 된 석물이다. ©박성애

석고(石鼓)는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환구단에 설치돼 있는 돌로 만든 북이다. ©박성애

3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에서 보는 황궁우 ©박성애
환구단
○ 주소 : 서울시 중구 소공로 103
○ 교통
-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5번 출구 약 160m 서울 광장 소공동 횡단보도 건너 환구단 정문
-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8번 출구 약 200m 환구단 후문
○ 운영 : 매일 9:00~21:00(연중무휴)
○ 입장료 : 무료
○ 문의 : 02-732-7525
○ 교통
-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5번 출구 약 160m 서울 광장 소공동 횡단보도 건너 환구단 정문
-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8번 출구 약 200m 환구단 후문
○ 운영 : 매일 9:00~21:00(연중무휴)
○ 입장료 : 무료
○ 문의 : 02-732-7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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