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걷던 길이 새롭게 보인다"…해설사와 함께 서대문 한 바퀴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4.12.05. 13:40

수정일 2024.12.05. 13:41

조회 1,721

서대문 도보여행 1코스를 역사문화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면서 걸어봤다. ⓒ윤혜숙
서대문 도보여행 1코스를 역사문화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면서 걸어봤다. ⓒ윤혜숙
서대문을 걸어서 한 바퀴 돌아봤다. 박춘구 역사문화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면서 서대문 도보여행 1코스를 걸어본 것이다. 동네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가는 즐겁고 유익한 기회였다. 최근에 서대문 도보여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서울 서대문 지역을 탐방하고 싶어서 신청했다.

서대문 도보여행 1코스의 시작은 충정로역 10번 출구 쪽에 있는 충정공 민영환 동상 앞이었다. 지하철 2호선, 5호선이 교차하는 곳에 충정로역이 있다. ‘충정로’는 충정공 민영환을 기념해서 붙인 이름이다.
서대문 도보여행 1코스의 시작은 충정로역 10번 출구 쪽에 있는 충정공 민영환 동상 앞이다. ⓒ윤혜숙
서대문 도보여행 1코스의 시작은 충정로역 10번 출구 쪽에 있는 충정공 민영환 동상 앞이다. ⓒ윤혜숙
그렇다면 충정공 민영환은 어떤 인물일까?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자세히 알 수 있지만, 충정로역에 와도 그를 만날 수 있다. 충정공 민영환 동상뿐만 아니라 충정공에 관한 기록이 전시돼 있다.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했다. 대한제국은 명목상으로는 일본의 보호국이 됐다. 을사늑약에 대한 반대투쟁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졌다.

민영환은 당시 조선 최고의 갑부였던 민겸호의 아들이었다. 그는 대한제국의 고위 관리로 두 번의 세계일주를 하게 됐다. 그러면서 세계 정세를 파악하게 되면서 달라졌다. 을사늑약으로 우리의 외교권이 박탈되자 을사오적을 처단하자, 늑약을 무효화하자는 등 상소를 계속 올리지만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결한다. 그의 자결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충정로역에서 서대문역 사거리 방향으로 내려가면 대로변에 초록색의 충정아파트가 있다. ⓒ윤혜숙
충정로역에서 서대문역 사거리 방향으로 내려가면 대로변에 초록색의 충정아파트가 있다. ⓒ윤혜숙
충정공 민영환 동상에서 서대문역 쪽으로 걸어가면 대로변에 초록색의 충정아파트가 나온다. 지하 1층에서 지상 5층 높이에 60세대 규모의 아파트로 현대사의 굴곡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1930년대 당시 조선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본인 건축가 토요타 타네오의 설계 하에 충정아파트가 건설됐다. 당시 명칭은 설계자의 성씨를 본뜬 ‘도요타 아파트’였다.

광복 직전에 한 기업이 이 아파트를 인수하면서 호텔로 용도가 변경됐고, 6.25 전쟁 당시에는 조선인민군이 인민재판소 건물로 사용하면서 건물 지하에서 양민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휴전 이후에는 ‘트래머 호텔’이라고 불리는 유엔 전용 호텔이 됐다. 아들 6형제를 6.25 전쟁에 바쳤다는 이유로 이승만에게 공로훈장을 받은 김병조가 박정희의 눈에 띄어 1962년 3월 1일자로 이 건물의 관리권을 받게 됐다. 하지만 김병조의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그는 구속됐다.

1979년에 충정로 왕복 8차선 확장 공사로 아파트의 3분의 1 정도가 잘려 나가는 수난을 겪게 된다. 현재 철거가 확정된 상태로 이 자리에 28층의 주상복합건물이 지어질 예정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라는 충정각은 현재 레스토랑 및 대안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윤혜숙
현존하는 최고의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라는 충정각은 현재 레스토랑 및 대안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윤혜숙
충정각현존하는 최고의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라고 말한다.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서도 보존 필요성이 인정돼, 노후화된 건물이어도 보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충정각은 캐나다 건축가 헨리 볼드 고든(Henry Bauld Gordon)이 설계해 1901~1903년 완공한 것으로 추정하는 건물이다. 붉은 벽돌로 지은 근대건축물이기도 하다.

최초의 건물주는 한성전기 기사장으로 근무한 미국인 매클렐런(R. A. McLellan)으로 조사됐다. 북서쪽으로 난 출입구로 들어가면 축대 위에 9각형 터릿(turret·첨탑)이 있다. 터릿의 한 면에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달려있다. 20세기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유행하던 스타일의 주택이라고 한다. 현재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및 대안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충정각을 우측으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건물마다 ‘프랑스로’라고 표기돼 있다. ⓒ윤혜숙
충정각을 우측으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건물마다 ‘프랑스로’라고 표기돼 있다. ⓒ윤혜숙
충정각을 우측으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건물마다 ‘프랑스로’라고 표기돼 있다. 근처에 프랑스대사관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대사관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바깥에서 내부의 건축물을 봤다. 업무동의 지붕이 한옥 처마처럼 휘어져 있다. 프랑스가 낳은 거장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제자 김중업이 주한프랑스대사관을 설계했다.

1962년 완공된 이 대사관은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로 불린 스승 르 코르뷔지에가 창시한 돔이노(Dom-Ino) 구조로 짓되, 김중업만의 혼을 담아 냈다. 김중업 건축가는 “한국의 얼을 담고, 프랑스다운 우아함을 표현하려고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바깥에서 바라본 프랑스대사관 업무동의 지붕이 한옥 처마처럼 휘어져 있다. 김중업 건축가의 작품 ⓒ윤혜숙
바깥에서 바라본 프랑스대사관 업무동의 지붕이 한옥 처마처럼 휘어져 있다. 김중업 건축가의 작품 ⓒ윤혜숙
프랑스와 국교를 맺을 때 프랑스는 조건을 내걸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신부 9명이 죽었으니 조선에서 천주교를 믿을 수 있게 해달라라는 조건이었다. 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인정해 주는 그런 조항이었다. 그 뒤에 우리나라에서 선교사가 들어오고 교회나 성당을 지었다.
해설사가 과거 약현성당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다. ⓒ윤혜숙
해설사가 과거 약현성당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다. ⓒ윤혜숙
저 멀리 보이는 게 약현성당이다. 한양에 천주교 신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1887년 잠배의 순랫골에 강당을 짓고 일반 서민을 교육했다. 이 강당의 이름이 약현성당이었는데, 성당이 위치한 언덕의 이름이 서대문 밖 약현이었던 데서 유래됐다. 예전에 약초를 재배했던 지역으로 ‘약초 밭이 있는 고개’ 라는 뜻의 약전현(藥田峴)이라 불렀다. 이후에 줄여서 ‘약현’이라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 성당, 교회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명동성당보다 6년 빨리 지어졌다.
  • 천주교 성지라고 부르는 서소문역사공원은 과거 사람들을 처형했던 곳이다. ⓒ윤혜숙
    천주교 성지라고 부르는 서소문역사공원은 과거 사람들을 처형했던 곳이다. ⓒ윤혜숙
  • 서소문역사공원 앞에 철로가 있어서 지나가는 기차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윤혜숙
    서소문역사공원 앞에 철로가 있어서 지나가는 기차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윤혜숙
  • 천주교 성지라고 부르는 서소문역사공원은 과거 사람들을 처형했던 곳이다. ⓒ윤혜숙
  • 서소문역사공원 앞에 철로가 있어서 지나가는 기차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윤혜숙
천주교 성지라고 부르는 서소문역사공원이 있다. 앞쪽에서 지금 철로가 있다. 마침 철로를 지나는 기차를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이곳에 만초천이라는 개천이 있었다. 개천가에 모래사장이 있어서 그곳을 처형장으로 이용했다. 서소문처형장이다. 천주교를 박해할 때 천주교 신자도 많이 처형했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다니는 곳이라서 여기에 처형장이 있었다.
서소문아파트가 옛 만초천이 흘렀을 자리를 따라 긴 곡선을 형성하고 있다. ⓒ윤혜숙
서소문아파트가 옛 만초천이 흘렀을 자리를 따라 긴 곡선을 형성하고 있다. ⓒ윤혜숙
예전 만초천이 흘렀을 자리를 따라 걸었다. 만초천은 현저동 무악재에서 발원해 서대문 사거리를 거쳐 서부역과 청파로, 원효로를 따라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길이 7.7㎞의 물줄기다. 지금은 용산미군기지 내 일부가 남아 있다. 만초천은 복개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건물이나 도로에서 만초천이 흘렀던 곳을 짐작할 수 있다. 서대문 사거리 방향으로 흘렀을 만초천은 경찰청을 지나 동쪽으로 굽이치는데 그곳에 1974년 세워진 서소문아파트가 있다. 서소문아파트가 긴 곡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만초천을 따라 지었기 때문이다.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정문 왼쪽 보도에 서대문정거장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윤혜숙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정문 왼쪽 보도에 서대문정거장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윤혜숙
서소문아파트를 지나서 건널목을 건너면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가 나온다. 정문 왼쪽 보도에 서대문정거장 터 표지석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개통 당시의 시발역이었다. 경인선은 1899년 9월 인천~노량진 구간이 개통됐고, 1900년 7월 한강철교가 준공됨에 따라 서울~인천 전구간이 개통됐다. 1901년부터 1905년까지 ‘경성역’으로 불렸으며, 지금의 서울역보다 북쪽에 있었다.
농협중앙회 앞마당에 있는 회화나무는 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나무다. ⓒ윤혜숙
농협중앙회 앞마당에 있는 회화나무는 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나무다. ⓒ윤혜숙
농협중앙회 앞마당에 회화나무가 있다. 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나무다. 1901년에 찍은 사진에 나오는 나무가 회화나무다. 여기에 스테이션호텔이 있었다. 영국인 엠벌 리가 지은 스테이션호텔은 서대문정거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투숙했던 호텔이었다.
  • 디타워돈의문 빌딩 지하 1층에 경기감영 터를 보여주는 경기감영유적전시관이 있다. ⓒ윤혜숙
    디타워돈의문 빌딩 지하 1층에 경기감영 터를 보여주는 경기감영유적전시관이 있다. ⓒ윤혜숙
  • 경기감영 안에 연못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윤혜숙
    경기감영 안에 연못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윤혜숙
  • ‘경기감영도’가 병풍으로 전해지고 있어서 조선시대 서대문역부터 독립문역까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윤혜숙
    ‘경기감영도’가 병풍으로 전해지고 있어서 조선시대 서대문역부터 독립문역까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윤혜숙
  • 디타워돈의문 빌딩 지하 1층에 경기감영 터를 보여주는 경기감영유적전시관이 있다. ⓒ윤혜숙
  • 경기감영 안에 연못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윤혜숙
  • ‘경기감영도’가 병풍으로 전해지고 있어서 조선시대 서대문역부터 독립문역까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윤혜숙
농협중앙회에서 큰길을 건너면 디타워돈의문 빌딩이 있다. 대림산업 본사 타운인데 과거 경기감영이 있었다. 돈의문 밖이니깐 한양도성 바깥으로 경기도였다. 경기감영은 조선시대의 8개 도(道) 가운데 하나인 경기도의 행정, 사법을 담당하던 관찰사가 근무하던 곳이다. 현재의 도청 소재지 및 도청 건물에 해당한다. 디타워돈의문 빌딩 지하 1층에 경기감영유적전시관이 있다.
  • 금화초등학교 앞 육교에서 내려다 본 독립문역 사거리 전경이다. ⓒ윤혜숙
    금화초등학교 앞 육교에서 내려다 본 독립문역 사거리 전경이다. ⓒ윤혜숙
  • 금화초등학교 정문 앞에 경기준군영 터, 청수관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윤혜숙
    금화초등학교 정문 앞에 경기준군영 터, 청수관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윤혜숙
  • 금화초등학교 앞 육교에서 내려다 본 독립문역 사거리 전경이다. ⓒ윤혜숙
  • 금화초등학교 정문 앞에 경기준군영 터, 청수관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윤혜숙
경기감영 왼쪽에 경기중군영이 있었다. 경기중군영경기도를 지키는 총사령관이 있는 곳을 뜻한다. 경기중군영은 일명 '청수관'이라고도 했다. 군영의 본명보다 청수관이라는 속명으로 세간에 알려지게 된 이유는 군영 정문 앞에 다량의 청냉수가 솟아 나오는 우물이 있어 부근 주민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화초등학교 앞에는 경기준군영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독립문이 있던 자리 바로 앞에 영은문이 있었다. 중국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모화관 앞에 세웠던 문이다. ⓒ윤혜숙
독립문이 있던 자리 바로 앞에 영은문이 있었다. 중국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모화관 앞에 세웠던 문이다. ⓒ윤혜숙
금화초등학교를 지나면 독립문영천시장이 있고 독립문역사거리에 독립문이 있다. 현저고가도로가 지어지면서 그 아래에 있던 것을 뒤로 옮긴 게 지금의 위치다. 현재 독립문이 있는 곳의 바로 앞에 영은문이 있었다. 중국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모화관 앞에 세웠던 문이다. 새 임금이 즉위하여 중국 사신이 조칙을 가지고 오면 임금이 친히 모화관까지 나오는 것이 상례였다.
독립문영천시장에서 서대문 도보여행 1코스가 끝났다. 서대문 도보여행은 7코스까지 있다. ⓒ윤혜숙
독립문영천시장에서 서대문 도보여행 1코스가 끝났다. 서대문 도보여행은 7코스까지 있다. ⓒ윤혜숙
독립문영천시장 앞에서 서대문 도보여행 1코스가 끝났다. 해설사는 서대문 도보여행이 7코스까지 있으니 순차적으로 참여해 볼 것을 권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걷다 보니 예정된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서울은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6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그렇기에 서대문 도보여행 1코스에 불과하지만, 한양도성의 역사를 알게 된 기회였다.

서울 시내를 걸어다니다 보면 표지석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쳐 왔는데 표지석에 우리의 역사가 흔적으로 남아 있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표지석 하나라도 관심 있게 읽어봐야겠다. 서대문 도보여행은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누리집에서 신청할 수 있다.

서대문 도보여행 1코스 ‘독립의 열망을 품은 길, 의주로’

○ 코스 : 충정로역 10번 출구 → 충청공 민영환 동상 → 충정각 → 프랑스대사관 → 약현성당 → 서소문아파트 → 미동초 → 서대문역 터 → 서대문사거리(돈의문 터, 경기감영) → 독립문영천시장
○ 신청 :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누리집

시민기자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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