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3·1운동 발자취 돌아보기

시민기자 박세호

발행일 2024.02.21. 09:21

수정일 2024.02.21. 18:12

조회 1,985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전 민족이 봉기한 3·1운동 ©박세호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전 민족이 봉기한 3·1운동 ©박세호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대한 독립 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올해로 105주년을 맞는 삼일절. 일본의 식민 통치에 저항해 조선의 자주독립을 외쳤던 날이다. 집에서 TV로 기념식 중계를 볼 수 있지만 3·1운동의 의미와 정신을 되새기에는 부족하다.

아이들을 데리고 3·1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그날의 감격을 이야기로 전해줄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면 이보다 좋은 교육은 없을 듯하다.

① 탑골공원 팔각정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탑골공원. 탑골공원의 유래를 살펴보니, 1902년 고종 즉위 40년 기념행사를 위해 군악대의 연주 장소로 지었다고 한다. 국보 제2호로 지정된 원각사지십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어 역사적인 의미를 더한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 3·1운동이 일어나 그 물결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독립운동의 발상지가 됐다는 점이다.

1919년 3·1운동 때 학생과 시민들이 팔각정 앞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벌였다. 팔각정은 탑골공원에 있는 누정(누각과 정자)으로 1989년 9월 19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탑골공원의 정문인 삼일문 ©박세호
탑골공원의 정문인 삼일문 ©박세호

팔각형 정자로 된 팔각정은 지붕 면이 8면으로 되어 있으며 겹처마로 되어 있다. 외관이 훌륭해 남산 팔각정의 본보기가 되었다. 공포스러운 식민 치하에서 목청껏 독립을 외치던 곳으로 10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체취가 남아 있는 듯하다.

1919년 3월 1일 그날 학생 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팔각정 위로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바로 그 인파가 시내로 쏟아져 나와 사대문 안을 행진하면서 마포와 성북구 등 시내 곳곳으로 진출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고향과 거주지인 지방 각처로 선언문과 태극기를 숨겨 운반하여 그곳에서 밤을 새며 더 많은 태극기를 만들어 행인들에게 나눠 주었다. 3·1운동은 단 하루 만에 끝난 것이 아니다.
국보 제2호로 지정된 원각사지십층석탑 ©박세호
국보 제2호로 지정된 원각사지십층석탑 ©박세호

전국 각지로 들불처럼 번져 3월 한 달과 4월 중순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도시와 농어촌과 산간벽지와 장터 그리고 섬마을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불꽃 같은 열정을 분출했다. 세계사의 맥락에서 볼 때도 어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인지, 감격스러울 뿐이다. 전국 어느 고장 할 것 없이 모두 자기 지역에서 일어났던 3·1운동의 역사를 기록한 기념비동상을 소개하며 자랑스러워 한다. 이러한 저력이 국내외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으로 힘을 한데 모았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부조물을 살펴보면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장면 등 3·1운동 진행 사항이 한눈에 보인다. 기마부대와 일경이 발포하고 총칼을 휘두르며 진압하는 장면은 분노를 자아낸다. 전국 각지 사상자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고, 일제의 주동자들에 대한 보복과 더불어 고문과 폭행의 도가 지나쳐 가히 야만의 경지에 이르렀다.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탑골공원 팔각정 ©박세호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탑골공원 팔각정 ©박세호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탑골공원을 찾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우리 민족의 얼을 느낄 수 있는 기념관 설립 등 발전적인 모습을 갖출 계획과 함께 공원 성역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와 문화재청, 관계 기관은 물론 지역 주민도 협력하여 민족의 독립 정신을 기억하고 후세에 교육하는 뜻깊은 장소로 그 존재감을 키워야 하겠다.

②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리면 출구 바로 앞에 사적 제32호로 지정된 독립문과 함께 1987년 의왕교도소로 업무를 이전할 때까지 일제강점기와 독재정부 시절 많은 우국지사들이 고초를 겪었던 역사의 장소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있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우리 민족은 치열하게 일제와 맞서 싸워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다.
악명 높은 일제 경찰의 고문 취조 도구들은 야만의 극치로 비난 받았다. ©박세호
악명 높은 일제 경찰의 고문 취조 도구들은 야만의 극치로 비난 받았다. ©박세호

대한제국 말에 일제의 강압으로 감옥이 지어진 서대문형무소는 우리 민족의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 기관으로 수많은 우리 애국지사들을 체포, 투옥시켰다. 민족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채 세월이 흘렀다. 해방 후에는 독재 정권과 군사 정권에 저항했던 이른 바 민주화 운동가들이 감옥에 가더라도 새 시대의 꿈을 이루고자 분투했던 곳이다.

1945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로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1987년 11월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한 뒤 역사성과 보존 가치를 고려하여 보안과 청사, 제9~12옥사, 공작사, 한센병사, 사형장 등을 남기고 나머지 시설은 철거했다.

이렇게 80년 여정을 달려와서 이제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다시 태어나 파란만장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전 세계인에게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1908년 10월에 문을 열어 1987년 11월에 폐쇄될 때까지 80년 동안 신체의 지유를 구금하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서울시는 애국 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독립 정신을 일깨워 주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삼기 위해 이곳을 보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1992년 완공해 '서대문독립공원'의 문을 열었다. 독립마당, 독립문, 수경시설, 3·1운동 기념탑, 매점,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어울쉼터, 이진아 기념 도서관, 순국선열 추념탑, 독립관, 서재필 동상 등이 차례로 들어섰다.
정면으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전시관이 바라다 보인다. ©박세호
정면으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전시관이 바라다 보인다. ©박세호

이용요금은 일반 3,000원, 청소년 및 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이며, 65세 이상은 무료인데 여러 할인 혜택도 있으니 직접 누리집을 참조하면 좋다.

이 일대를 포괄하는 서대문독립공원은 서대문형무소, 독립문, 독립관, 3.1운동 기념탑 등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민족의 성지로서, 독립운동을 비롯한 한국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역사 공원이다.

형무소에는 좁은 방에 수용 인원의 몇 배를 가두어 앉아 있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밤에는 얇은 죄수복에 꽁꽁 얼어붙은 바닥에서 교대로 새우잠을 잤다. 게다가 극악한 일제의 식민지 통치수단으로 고문이 일상화되어 생명을 잃는 사례도 많았다. 지하 감방에 가면 갖가지 고문 기구가 전시되어 있어 공분을 자아낸다.  

동영상엔 고문을 당하고, 손발이 잘리거나 손상을 입은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의 증언이 소개되고 있다. 만행과 과오를 벌인 일본은 진심으로 참회하고 사과해야 한다. 국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역사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진전을 이뤄야 할 때가 되었다. 
대형 태극기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보인다. ©박세호
대형 태극기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보인다. ©박세호

③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가(家)의 집, 딜쿠샤

딜쿠샤는 미국 AP통신(Associated Press) 특파원으로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앨버트 W. 테일러(미국인) 부부가 종로구 행촌동에 짓고 살았던 벽돌 2층 저택이다. 이들 부부는 일제에 의해 추방되었고, 돌아오지 못하는 가운데 집은 황폐화되었다. 서울시는 이 집을 복원하면서 그동안의 유래와 감동 일화를 밝혀냈다.
 옛 모습을 복원한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 ©박세호
옛 모습을 복원한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 ©박세호

딜쿠샤를 가기 위해서는 독립문사거리(지하철 독립문역 3번 출구 이용)나 경복궁역 쪽에서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지하철 서대문역(3번 출구)에서 종로 마을버스 05번이 독립문역을 거쳐서 운행된다.
딜쿠샤의 거실을 복원하여 화려한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 ©박세호
딜쿠샤의 거실을 복원하여 화려한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 ©박세호

특히 1919년 앨버트의 아내인 메리 L. 테일러가 3.1운동 하루 전 아들(브루스 테일러)을 출산한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고 하겠다. 입원한 세브란스 병원에서 한국인 간호원들이 황급히 종이뭉치를 숨기려고 서두르다가 응급 결에 아기 침상 밑에 넣는다. 그것은 독립선언서 유인물이었다.

앨버트가 우연히 보고, 일제 경찰의 감시를 피하려고 구두 뒤축에 감추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작성한 기사와 선언문을 동생 윌리엄 테일러가 가지고 일본행 여객선에 오른다. 일본 관헌의 눈을 피해 일본 지사 시설로 가야 송고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AP통신 도쿄 지사에서 타전한 기사는, 통신사 배포망을 통해 세계 최고의 언론인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AP통신 타전으로 <뉴욕타임스>에 3.1운동 기사가 실렸다. ©박세호
AP통신 타전으로 <뉴욕타임스>에 3.1운동 기사가 실렸다. ©박세호

인도주의와 정의감의 동기에서 한국인들이 궐기한 3.1만세운동 독립선언서의 진의를 전 세계 각국에 시의 적절하게 공표하도록 해준 그 공로는 엄청난 것이었다. 인류애와 독립 정신에 기초한 수준 높은 3.1독립선언서는 세계인들을 감동시켰고, 약소국 한국인들의 투쟁에 응원을 보냈다.

딜쿠샤 복원 초창기에 관람해 봤다면 다시 한번 찾아가도 좋을 것이다. 더욱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주출입구를 개방했다. 딜쿠샤 주변의 원지형 회복 및 지장물 철거로 문화재 경관을 확보하고, 대로변(사직로)으로부터 출입이 가능하도록 해 접근성을 높였다.

앨버트 테일러가 타전한 기사는, 그 당시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타이틀을 내보냈다. 그 문구가 일주일 동안 눈에 선하다.
“한국인들이 독립을 선언하다(Koreans Declare For Independence).”

탑골공원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종로 99 탑골공원
○ 교통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번 출구(SC제일은행)로 나와 도보 7분
○ 문의 : 종로구청 공원녹지과 02-2148-2844~5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위치 : 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 관람시간 : 3월~10월 09:30~18:00, 11월~2월 09:30~17:00
○ 휴관일 :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매주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 날)
○ 관람료 :어른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군인 1,500원, 무료(경로, 장애인, 보훈대상자, 유아), 서대문구 거주 주민·관내 초·중·고등학교 50% 할인
누리집
○ 문의 : 02-360-8590

딜쿠샤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2길 17
○ 교통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 도보 10분
○ 운영시간 : 09:00~18:00 (17:30까지 입장)
○ 휴관 : 월요일, 1월 1일
※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는 개관
서울역사박물관누리집
○ 관람예약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 문의 : 070-4126-8853

시민기자 박세호

구석구석 삶의 현장에서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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