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이 도서관을 품었다! 파노라마 뷰에 강연, 모임까지

지정우 건축가

발행일 2024.02.02. 15:49

수정일 2024.02.02. 16:58

조회 4,643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남산부터 용산까지 파노라마 뷰가 인테리어 된 전쟁기념관 도서휴게공간의 전경.
남산부터 용산까지 파노라마 뷰가 인테리어 된 전쟁기념관 도서휴게공간의 전경.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21) 도서관을 품은 뮤지엄

도서관 하면 대부분 책으로 꽉 채워져 있는 우리 지역에 있는 공공 도서관이나 학교 안의 학교 도서관을 떠올리기 쉽다. 물론 그 도서관들도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미술관, 박물관 같은 뮤지엄(세계적으로는 구분 없이 museum으로 통일하여 쓴다) 안에도 ‘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뮤지엄 하면 다양한 전시물을 구경하러 가는 곳, 혹은 가끔 특강이나 강습 등 문화 행사를 참여하러 가는 곳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 뮤지엄 안에도 최근에는 ‘도서관’이 생겨나고 있다. 그 도서관들은 일반 도서관들과 다른 점들이 있다. 
EUS+건축이 ‘하나의 사건, 모두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설계된 전쟁기념관 도서휴게공간의 조감도.
EUS+건축이 ‘하나의 사건, 모두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설계된 전쟁기념관 도서휴게공간의 조감도.

전쟁기념관 속 도서관

6.25전쟁사에 대한 타워형 특별 서가와 세심하게 높이가 조절되어 설계된 일반 도서용 수평 서가.
6.25전쟁사에 대한 타워형 특별 서가와 세심하게 높이가 조절되어 설계된 일반 도서용 수평 서가.

용산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뮤지엄이 여럿 있다. 그중 ‘전쟁기념관’은 더욱 특별한 뮤지엄에 속한다. 전쟁과 우리나라를 지켜온 역사를 전시하는 전쟁기념관은 추모의 메모리얼 성격과 전시를 통해 미래를 다짐해 보는 공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뮤지엄 건축으로도 중요한 시대상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 전쟁기념관은 그동안 조금씩 계속 변화 발전해 왔는데, 최근 이곳에 ‘도서휴게공간 겸 아카이브’(KWAC. Korea War Archive Center)가 조성되었다. 다음세대의 공간을 집중해서 설계해온 필자의 EUS+건축이 그 디자인을 담당했는데 이 또한 중요한 ‘다음세대 공간이라 생각해서 이 장소에 어울리는 새로운 유형의 도서관을 조성하게 됐다.

뮤지엄의 라운지로서의 도서관

뮤지엄의 활동은 주로 전시된 전시물들을 관람하는 행위이다. 여러 명이 같이 구경을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개인적인 활동일 수밖에 없다. 예전 뮤지엄들은 수없이 많은 전시물들로 빽빽하게 채워서 그것을 돌아보는 것 자체가 무척 고된 노동 수준이기도 했으나 현대의 뮤지엄들은 전시물의 양을 줄이더라도 좀 더 커뮤니티와 휴식이 될 수 있는 공간을 통합해서 설계하곤 한다. 

이런 커뮤니티와 휴식의 공간 중에 도서관이 핵심이 될 수 있다. 개인적인 관람 행위가 다시 모여서 나눌 수도 있고 여러 소셜미디어를 거쳐서 확산될 수도 있게끔 하는 장소가 라운지로서의 도서관이 될 수 있다.
전쟁기념관 쪽에서 투명한 유리벽으로 되어 있어 관람객을 환대하고 너머의 풍경을 여유롭게 느끼자고 손짓한다.
전쟁기념관 쪽에서 투명한 유리벽으로 되어 있어 관람객을 환대하고 너머의 풍경을 여유롭게 느끼자고 손짓한다.

도서관이 뮤지엄 안에 필요한 이유

뮤지엄이라는 공간은 자료의 수집과 축적이 필수다. 전시에 내보내지 않는 자료들도 많고 전시를 하기 위한 바탕이 되는 다양한 문서와 미디어 자료들도 쌓여간다. 박물관 안에서 우리가 보는 전시는 그런 것들의 극히 일부에 해당되는 것이다. 깊이 들어가서 전시뿐 아니라 그 배경과 전체적인 컨텍스트를 살피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료들에 접근해야 하고 그런 것을 위해 아카이빙(Archiving, 보관)을 해놓게 된다. 

예전에는 아카이브 된 자료들이 뮤지엄 관계자만 접근 가능한 뒤편의 장소였으나 최근에는 ‘개방형 수장고’ 같이 공공에게 개방하는 물결을 감안하여 아카이브 센터도 도서관과 결합하여 모든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고 찾아보고 연구할 수 있게 하는 추세에 있다. 즉, 뮤지엄 관람의 차원이 더욱 깊어지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물 전시물들이 있는 전쟁기념관의 거대한 전시홀 한쪽에 투명하게 위치한 도서휴게공간.
실물 전시물들이 있는 전쟁기념관의 거대한 전시홀 한쪽에 투명하게 위치한 도서휴게공간.

뮤지엄이 일상과 닿게 하는 장소

뮤지엄 내부의 전시실은 대부분 자연광이 들어오지 않게 조성되곤 한다. 전시실 안에 있으면 백화점처럼 주변 환경이 들어오지 않는다. 즉, 그곳에 오기 직전까지 내가 생활하던 일상과는 철저하게 단절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뮤지엄 속 도서관은 이와 반대로 조망이 좋은 곳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투명성을 더욱 갖는 것이 특징이다. 

즉, 뮤지엄의 경험이 뮤지엄 문밖을 나서면서 멈추게 되는 것이 아니라 뮤지엄 안에서도 일상의 도시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공유하고 휴식하며 일상과 닿게 하는 것이 도서관이 될 수 있다. 
낮은 서가와 타워형 특별 서가의 구성. 마치 지형을 연상케 한다.
낮은 서가와 타워형 특별 서가의 구성. 마치 지형을 연상케 한다.

속도의 차이와 균형

뮤지엄에서의 관람은 끊임없이 이동을 하며 이뤄진다. 의외로 상당히 동적인 활동이다. 반면 도서관에서의 활동은 한곳에 머물고, 뮤지엄에서의 경험을 반추하고, 책과 미디어로 심화시키는 정적인 활동이다. 이러한 동적, 정적 활동이 조화를 이루면서 뮤지엄 경험을 확장시킨다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어린이 도서관 영역이 있다.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어린이 도서관 영역이 있다.
6.25 전쟁 특별 서가는 당당한 기상을 위해 타워형으로 계획했다.
6.25 전쟁 특별 서가는 당당한 기상을 위해 타워형으로 계획했다.

전쟁기념관 도서휴게공간의 특징

다시 전쟁기념관 도서관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해보자면, 전쟁기념관 도서관은 위에 설명한 이러한 관점들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으면서도 고유한 공간 체계를 갖고 있다. 기념관 동측 가장 끝에 가장 큰 창문을 가진 장소에 위치하며 그곳에 서면 남산과 용산 공원이 파노라마로 들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즉, 현재 서울의 핵심을 조망하는 위치적 특징을 감안하여 ‘과거’의 전시물에서 현재의 관점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배치했다. 
이곳에선 휴가나온 군인이나 시민 모두 편안하게 머무르고 도서를 열림할 수 있다.
이곳에선 휴가나온 군인이나 시민 모두 편안하게 머무르고 도서를 열림할 수 있다.

연구자만을 위한 협의의 도서관이 아닌 ‘도서휴게’ 공간으로 계획되면서 창가 쪽으로 계단식 좌석과 어린이 도서관 영역을 입체적으로 배치하여 다양한 시선을 가질 수 있으면서도 자연광과 함께 휴식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다양한 강연과 전시 등의 이벤트를 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용산이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 계단식 공간이 있어 특별한 강연 등 이벤트에도 사용 가능하다.
용산이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 계단식 공간이 있어 특별한 강연 등 이벤트에도 사용 가능하다.

무엇보다 다양한 가구와 좌석을 제공해 원하는 활동과 느낌에 따라 이용자가 선택하여 매번 올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중간중간 대형 테이블과 그룹 모임이 가능한 유리 모임실을 배치하여 개방감 속에 크고 작은 활동이 느슨하게 연계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뮤지엄이기도 하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휴게나 리서치 등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뮤지엄이기도 하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휴게나 리서치 등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
서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대형 유리벽을 통해 용산과 남산이 보이는 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서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대형 유리벽을 통해 용산과 남산이 보이는 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넓은 도서관 내의 투명한 소모임 공간.
넓은 도서관 내의 투명한 소모임 공간.

공간 구성 개념은 보관적 연결에서 시작된다. 도서 휴게 공간은 일상과는 구분된 전쟁이라는 기억이 현재 우리의 일상적인 기록과 연결되어 구체적으로 전승되고 공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한다. 

또한 공간은 낮은 서가와 책장으로 구성되어있어, 사용자의 시각적 공간경험을 빚어내어 과거의 사건이었던 전쟁을 일상과 연결시켜 "하나의 사건, 모두의 기억"으로 전승할 수 있는 기록의 경험을 체험하게 한다. 

남산을 닮은 낮은 서가는 일상을 배경으로 하여 살아있는 자들의 소통을 이끌어내고 과거의 기억을 반추하게 한다. 서가는 단순히 책만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지형이며 풍경이고, 꺼낸 책을 그 위에서 펼쳐볼 수 있는 다양한 경사를 가지게 했다. 수평적인 낮은 서가가 일반 서적들을 위한 특별한 가구라면, 이 뮤지엄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6.25 전쟁의 기록을 담는 서가는 타워형으로 계획하여 더욱 초점이 되고 수평성에 대비되는 수직성으로 든든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서가는 단순히 책만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지형이며 풍경이고
책을 읽는 이들에게 다양한 경사를 제공한다. 

건축가 서민우는 이 공간을 계획하며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복도에서 정면으로 바라본 도서휴게공간은 투명한 고정유리벽이 위치하여 높낮이가 다른 전시 서가와 그것 너머의 남산 풍경이 펼쳐진다. 서가 틈으로 보이는 사용자들의 모습과 발자취가 서로 연결되며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이 하나로 연결된다. 전면 채광창을 통하여 자연광이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 위로 떨어지며 공간에 깊이감을 더한다. 강연/집합 공간의 넓은 계단식 스탠드에 앉아 전쟁의 기억과 관련된 사건과 기록을 일상과 함께 반추한다. 6.25전쟁 아카이브 및 도서휴게공간이 전시 기록의 경험을 통하여 다음세대에 추상적으로 전승하는 ‘기록과 사용자’가 주인인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도서 휴게 공간 입구의 안내데스크와 전체 도서 위치를 나타내는 안내도.
도서 휴게 공간 입구의 안내데스크와 전체 도서 위치를 나타내는 안내도.
건축가 서민우의 공간과 서가 설계 개념 스케치.
건축가 서민우의 공간과 서가 설계 개념 스케치.

국내와 국외의 뮤지엄 속 도서관

전쟁기념관의 도서관 뿐만 아니라 최근 국내의 다른 뮤지엄에도 이런 공간들이 생겨났다.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이 파주관을 지으면서 그 내부 한켠에도 아카이브 겸 도서실이 위치했다. 이곳은 주변 풍광을 바라볼 수 있는 큰 창은 없지만 다양한 미디어의 자료를 열람하고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게 아기자기하게 조성되었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도 기존의 아카이브 센터가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렵고 폐쇄적이며 창고처럼 운영되던 것에서 관람객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상당히 세심하게 고려된 특별한 책장과 가구와 조명으로 채워져 과천관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쾌적하게 자료를 열람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곳은 다만 휴게의 라운지 성격보다는 자료 열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 내 도서아카이브 공간.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 내 도서아카이브 공간.
최근 조성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내의 도서아카이브 공간. 설계_푸하하하 건축.
최근 조성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내의 도서아카이브 공간. 설계_푸하하하 건축.

미국 신시내티 아트 뮤지엄 (Cincinnati Art Museum)은 역사적인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가 2015년에 건물 한쪽을 보수 복원하면서 옥상에 현대적인 증축 부를 만들며 그곳에 ‘Library & Archive’를 구성했다. 고전적 전시실을 다니다가 발견하여 들어간 이 도서관은 상당히 세련된 가구들과 인테리어로 또 다른 느낌을 주며 전쟁기념관 도서휴게공간처럼 큰 창과 발코니를 통해서 신시내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을 제공하고 있다.
2015년 증축과 리노베이션을 한 미국 신시내티 아트 뮤지엄의 라이브러리 아카이브 공간. 설계_Emersion Design.
2015년 증축·리노베이션을 한 미국 신시내티 아트뮤지엄의 라이브러리 아카이브 공간. 설계_Emersion Design.

길고 긴 겨울 방학, 그리고 봄방학에 많이 찾는 뮤지엄에서 전시만 보고 나오는 게 아니라 뮤지엄 속 ‘도서관’을 찾아서 공간도 즐기고 자료도 찾아보면 또 다른 체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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