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의 핫플 '토리만화카페' 곳곳에 따뜻한 손길 가득

시민기자 강사랑

발행일 2023.11.14. 11:10

수정일 2023.11.14. 19:23

조회 795

방학3동 주민센터 지하에 '토리만화카페'가 들어섰다. Ⓒ강사랑
방학3동 주민센터 지하에 '토리만화카페'가 들어섰다. Ⓒ강사랑

어린 시절 틈만 나면 만화책방을 찾던 때가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동네 만화책방으로 달려가 순정 만화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재미였던 시절, 만화책은 어린 마음을 설레게도 하고, 위로하기도 했던 친구 같은 존재였다. 시간이 훌쩍 지나 사춘기의 추억으로 간직하게 된 만화책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주민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만들어진 '토리만화카페' 덕분이다.

도봉구 방학3동 주민센터의 지하 공간. 보통 주민들을 위한 헬스 시설이나 소모임 공간이 들어서는 이곳에 5,000권이 넘는 만화책을 소장'만화카페'가 들어섰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상업시설 못지않은 퀄리티를 자랑하는 공간이 지역 주민들의 십시일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소문도 조금은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듣도 보도 못한' 만화카페에 들어선 순간, 소리 없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알록달록 만화로 장식된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토리만화카페'가 모습을 드러낸다. Ⓒ강사랑
알록달록 만화로 장식된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토리만화카페'가 모습을 드러낸다. Ⓒ강사랑
5,000권이 넘는 만화책을 보유한 '토리만화카페'. 넓고 쾌적한 공간 조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강사랑
5,000권이 넘는 만화책을 보유한 '토리만화카페'. 넓고 쾌적한 공간 조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강사랑

약 54평의 넓고 쾌적한 공간은 그 자체로 밝은 기운이 가득했다. 나무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원목 책장에는 각양각색의 만화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고, 그 주변에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책상과 알록달록한 의자들이 자리했다.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기대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푹신한 좌식 소파도 곳곳에 놓였다.
만화책 서가를 중심으로 아늑한 공간이 조성되어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강사랑
만화책 서가를 중심으로 아늑한 공간이 조성되어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강사랑
한국 고전 만화책은 물론이고 인기가 많은 일본 만화책들도 빠짐없이 보유하고 있다. Ⓒ강사랑
한국 고전 만화책은 물론이고 인기가 많은 일본 만화책들도 빠짐없이 보유하고 있다. Ⓒ강사랑

만화를 직접 필사해 보는 재미를 누릴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은 마치 숨겨진 다락방처럼 아늑했다. 초등학교 입학 이전의 어린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는가 하면, 어른들이 아이들과 따로 만화책을 읽을 수 있는 전용 공간도 마련되어 눈길을 끌었다.
웹툰 카피보드를 통해 좋아하는 웹툰을 따라 그려볼 수도 있다. Ⓒ강사랑
웹툰 카피보드를 통해 좋아하는 웹툰을 따라 그려볼 수도 있다. Ⓒ강사랑
초등학교 입학 이전의 유아 전용 공간도 마련되었다. Ⓒ강사랑
초등학교 입학 이전의 유아 전용 공간도 마련되었다. Ⓒ강사랑
어른들 전용 열람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강사랑
어른들 전용 열람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강사랑

지역 예술가들의 만화 작품들도 공간 조성에 한몫했다. 하나같이 위트와 감각이 넘치는 한편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공간에 녹아든 모습이었다. 어떤 만화 그림은 튀어나온 손잡이를 통해 그것이 문이라는 것을 가까스로 인지할 만큼 감쪽같았다. 토리만화카페는 눈길을 돌리는 곳마다 공간을 조성한 이들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깃들어 있었다.
카페 내에서 '검정 고무신'의 이우영 작가가 그린 작품들을 여럿 발견했다. Ⓒ강사랑
카페 내에서 '검정 고무신'의 이우영 작가가 그린 작품들을 여럿 발견했다. Ⓒ강사랑
창고 문에는 이우영 작가의 신작 '유토피아'가 멋지게 그려졌다. Ⓒ강사랑
창고 문에는 이우영 작가의 신작 '유토피아'가 멋지게 그려졌다. Ⓒ강사랑

"이곳을 오픈한 날 정말 아이들이 올까 반신반의했어요. 일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공간을 조성하느라 힘들었는데, 혹시나 아무도 찾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저 계단 위에서 아이들이 기웃거리더니 터벅터벅 내려오면서, '여기서 만화책 읽을 수 있어요?' 하고 묻는데 그냥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토리만화카페 장영순 대표(마을 활동가)는 카페 초창기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공간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방학3동 주민센터의 비어있는 지하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흔한 시설 대신 '지역 아이들을 위한 만화카페'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곳 방학3동 인근에는 초중고 아이들이 안심하고 드나들 수 있는 시설이 전무했다. 방과후 여러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토리만화카페는 시작되었다.
'토리만화카페'를 조성하는데 앞장선 장영순 대표(마을 활동가) Ⓒ강사랑
'토리만화카페'를 조성하는데 앞장선 장영순 대표(마을 활동가) Ⓒ강사랑
초창기 시절의 '토리만화카페'.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다르나 공간 속에 정성이 가득하다. Ⓒ장영순 대표 제공
초창기 시절의 '토리만화카페'.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다르나 공간 속에 정성이 가득하다. Ⓒ장영순 대표 제공

그 뜻에 공감한 주민들이 만화책을 기부하고 테이블과 의자 등 인테리어 요소들을 지원하는가 하면, 최대성 작가, 이우영 작가, 김부일 작가 등 도봉구의 만화 작가들이 재능을 기부하여 만화카페에 알록달록한 옷을 입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양질의 만화책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었다. 장영순 대표는 부천의 한국만화박물관으로 달려가 긴 설득 끝에 약 4,000권에 달하는 만화책을 기증 받았다. 나머지 1,000여 권은 구청의 지원으로 마련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지난해 5월 문을 열고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토리만화카페'는 '지역 아이들을 위한 만화카페' 조성 취지에 공감한 주민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장영순 대표 제공
'토리만화카페'는 '지역 아이들을 위한 만화카페' 조성 취지에 공감한 주민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장영순 대표 제공

"한국을 대표하는 고전만화는 물론 ‘최애의 아이’, ‘귀멸의 칼날’, ‘흔한 남매’ 등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기 만화도서를 빠짐없이 선보이고 있어요. 역사, 지리, 과학, 예술 등 재미있는 학습만화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몇십 년에 걸쳐 사랑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를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다만 아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성인의 입장 시간을 제한하고 있어요. 10시부터 12시까지는 아이들, 어른 모두 이용이 가능하지만, 오후 2시부터 운영 종료 시간인 5시까지는 오롯이 아이들을 위한 시간으로, 어른들은 아이들과 동반한 경우에만 입장이 가능해요. 아이들이 어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만화책을 읽으며 힐링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오랜 시간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아온 스테디셀러들이 있어서 마음을 설레게 한다. Ⓒ강사랑
오랜 시간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아온 스테디셀러들이 있어서 마음을 설레게 한다. Ⓒ강사랑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옛 순정 만화책들도 눈길을 끈다. Ⓒ강사랑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옛 순정 만화책들도 눈길을 끈다. Ⓒ강사랑

아이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입꼬리를 올리며 환한 미소를 짓는 장영순 대표에게 토리만화카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보았다.

Q. 토리만화카페가 만들어지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A.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닌 지역 아이들 때문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은지 아세요? 공부 공부, 하는 어른들 때문에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어요. 학교가 끝나면 대부분 서너 군데씩 학원을 전전하는데, 중간에 비어있는 시간이 생기면 딱히 갈 곳이 없어 편의점을 드나들거나 피씨방에 가는 정도지요. 그럴 때마다 토리만화카페가 아이들에게 집처럼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해요. 아이들이 공간을 불편하게 여기는 순간 결국 발길을 끊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장영순 대표의 말처럼 토리만화카페는 돈이 없어도 되고 어른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또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 만화책을 읽으며 놀 수 있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관내 시설이기에 학부모들도 안심하고 아이들을 보낼 수 있다. 물론 시간이 되는 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 와서 만화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면 된다.
아이들에게 전폭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토리만화카페'. 편안한 자세로 홀로 또는 같이 만화책에 빠져든다. Ⓒ장영순 대표 제공
아이들에게 전폭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토리만화카페'. 편안한 자세로 홀로 또는 같이 만화책에 빠져든다. Ⓒ장영순 대표 제공

취재 당일 토리만화카페에서 만난 이수향 학생(초당초등학교 3학년)은 ‘흔한 남매’ 웹툰을 읽고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 물었더니 "이거요? 으뜸이랑 에이미가 남매인데요. 얘네들이 같이 놀면서 재미있게 하루를 보내요. 에이미가 저랑 좀 비슷한 거 같아요. 여기는 친구가 알려줬는데, 재미있는 만화책이 많아서 자주 와요." 라고 말했다. "토리만화카페를 한 마디로 설명해줄 수 있어요?” 기자의 질문에 이수향 학생은 재치 있게 대답했다. “음... 놀이터요. 토리만화카페는 우리의 놀이터다!”
'귀멸의 칼날' 시리즈는 아이들이 다음 신권(新券)을 손꼽아 기다리는 대표적인 인기 만화책이다. Ⓒ강사랑
'귀멸의 칼날' 시리즈는 아이들이 다음 신권(新券)을 손꼽아 기다리는 대표적인 인기 만화책이다. Ⓒ강사랑
'토리만화카페'는 더욱 많고 다양한 만화책들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강사랑
'토리만화카페'는 더욱 많고 다양한 만화책들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강사랑

토리만화카페는 지난 7월 구청의 지원을 통해 리모델링을 거치며 아이들에게 더욱 친화적인 공간으로 거듭났다. 책장의 눈높이를 아이들의 키를 고려하여 낮게 맞추면서 재질 또한 친환경으로 바꾸었다. 아이들이 눕거나 편히 기대어 쉴 수 있도록 휴식 공간도 곳곳에 조성했다. 이밖에 조명, 환기 시설, 난방 시스템 등 모든 것들이 이전보다 업그레이드 되어 좀 더 쾌적한 공간이 되었다.
'토리만화카페'는 지난 8월 리모델링을 거쳐 재오픈했다. Ⓒ강사랑
'토리만화카페'는 지난 8월 리모델링을 거쳐 재오픈했다. Ⓒ강사랑
리모델링을 거치며 아이들에게 더욱 친화적인 공간이 되었다. Ⓒ강사랑
리모델링을 거치며 아이들에게 더욱 친화적인 공간이 되었다. Ⓒ강사랑

여러 장르의 만화책을 시간제한 없이 무료로 읽을 수 있으니 누군들 좋지 않을까. 오픈 전 운영진들의 걱정과 달리 토리만화카페는 일 년 째 순항 중이다. 초창기부터 꾸준히 방문객이 늘어나 현재는 하루 40명에서 많게는 60명까지 드나드는 공간이 되었다. 특히 초등학생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한 번 방문한 아이들이 두 번 세 번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Q. 토리만화카페라는 공간 운영에 어려움이 있진 않나요?
A. 어린 아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라 신경을 써야 할 거라고 생각들 하시지만 아이들은 토리만화카페가 우리 모두의 공간이고, 또 이곳에 있는 책들을 내 것처럼 아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어요. 운영진 그리고 부모님들이 함께 공유의 가치를 알려주면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토리만화까페는 '완벽한 민관의 합작'이고, 모두가 마음과 뜻을 더하여 이루어낸 소중한 공간입니다.
정작 고민은 '신작을 확보하는 것'이죠. 대부분 시리즈물이라서 때마다 발매되는 새로운 책들을 확보하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운영비 문제로 어려운 상황이라 행여 아이들의 발길이 끊기지는 않을까 걱정이에요."
'토리만화카페'의 과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신작을 확보하는 것이다. Ⓒ강사랑
'토리만화카페'의 과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신작을 확보하는 것이다. Ⓒ강사랑
엄마와 아이가 함께 만화책 삼매경에 빠져든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강사랑
엄마와 아이가 함께 만화책 삼매경에 빠져든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강사랑

Q. 또 다른 바람이 있다면요?
A. 토리만화카페가 널리 홍보되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죠. 사실상 토리만화카페의 가치는 지역 내에서 유일할 뿐 아니라 서울 관내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듭니다. 남녀노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만화책’을 테마로 열린 공간인 만큼 앞으로 보여줄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곳이죠.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공간 운영에 있어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요. 일례로 지역 내 웹툰 작가를 초청하여 일일 클래스를 진행하는 계획도 있고요. 아이들과 성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와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만화책을 안볼 수 없다. Ⓒ강사랑
여기까지 왔는데 만화책을 안볼 수 없다. Ⓒ강사랑
기자에게도 추억이 가득한 슬램덩크 31권을 재미있게 읽어 내려갔다. Ⓒ강사랑
기자에게도 추억이 가득한 슬램덩크 31권을 재미있게 읽어 내려갔다. Ⓒ강사랑

토리만화카페의 이름 ‘토리’는 ‘도토리처럼 작지만 야무지다’라는 뜻을 가진 순수 우리말이다. 카페 안팎에는 작고 야물딱지게 생긴 도토리 캐릭터가 아이들을 반기고 있다.

“여기를 찾는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작지만, 그 안에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게 자라서 어른이 되면 이곳은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가 되겠지요. 그때까지 모쪼록 사라지지 않고 이 자리에서 다시 아이들을 기다리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토리만화카페를 나서는 길, 장영순 대표의 마지막 말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울렸다. 공간이 쉽게 사라지지 않도록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다름 아닌 찾는 이들의 사랑과 관심이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특히 아이들이 즐겨 찾는 공간을 표방하는 '토리만화카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강사랑
남녀노소, 특히 아이들이 즐겨 찾는 공간을 표방하는 '토리만화카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강사랑

토리만화카페

○ 위치 : 서울시 도봉구 시루봉로 94, 방학3동 주민센터 지하 1층
○ 이용시간 : 월~금요일 10:00~17:00 (토·일, 공휴일 휴관)
 - 10:00~12:00 성인 이용 가능, 
 - 14:00~17:00 아동, 청소년 동반 시 성인 이용 가능
 - 대출 불가, 카페 내 취식 불가
○ 문의 : 02-2091-5666 (방학3동 자치마을팀)

시민기자 강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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