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어떻게 탄생했나? 궁금증 '여기'서 해결!

시민기자 이정규

발행일 2023.09.25. 09:40

수정일 2023.09.25. 17:21

조회 967

우리가 무심결에 사용하거나 듣곤 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우리나라의 국호는 언제,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 처음일까?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명쾌히, 상세히 알려주는 곳이 있으니 바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다.

2022년 3월에 개관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하 임시정부기념관)은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모진 옥고를 치렀던 옛 서대문형무소를 굽어보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임시정부기념관의 관람을 마친 후 4층 전망대에서 옛 서대문형무소와 그 주변의 발전된 도시풍경, 그리고 저 멀리 남산서울타워를 바라보노라면 지난 한 세기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이 떠오르며 감회에 젖게 된다.

임시정부기념관은 상설전시와 특별전시로 구성되며, 상설전시는 상설전시1관~3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상설전시1관의 주제는 ‘군주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이고, 상설전시2관의 주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사람들’, 상설전시3관의 주제는 ‘임시정부에서 정부로’이다. 대체로, 임시정부의 전사에서부터 성립과 발전, 일제와의 투쟁, 광복 후 독립국가 건설에 이르는 시간순으로 전시는 전개된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2022년 3월에 개관하였다. “대한민국, 여기서 시작하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이정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2022년 3월에 개관하였다. “대한민국, 여기서 시작하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이정규
1층 야외에 있는 상징광장에는 ‘역사의 파도’(이배경)라는 임시정부기념관 상징기념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가운데에 있는 태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정규
1층 야외에 있는 상징광장에는 ‘역사의 파도’(이배경)라는 임시정부기념관 상징기념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가운데에 있는 태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정규
1층 내부의 복합문화공간에는 다양한 주제별로 도서를 비치한 서가가 있다. ⓒ이정규
1층 내부의 복합문화공간에는 다양한 주제별로 도서를 비치한 서가가 있다. ⓒ이정규
나라사랑의 마음을 담은 나무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어 포토존으로도 좋을 것 같다. ⓒ이정규
나라사랑의 마음을 담은 나무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어 포토존으로도 좋을 것 같다. ⓒ이정규

상설전시1관에 입장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료는 ‘대동단결선언’(1917.7)이라는 선언문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신채호, 박은식, 조소앙, 김규식 등 14명의 이름으로 발표된 이 선언문에는 “경술년 융희황제의 주권 포기는 즉 우리 국민 동지에 대한 묵시적 선위니”라는 문구가 있다. 즉, 대한제국이 망한 순간부터 주권은 국민이 가짐을 선언하며, 이를 실현시킬 최고 통일기관을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가는 길을 연 것이다.

상설전시1관 가운데에는 마치 커튼이 드리워진 원탁 회의실처럼 꾸며진 전시공간이 있다. 중국 상하이에서 국내외 대표급 독립운동가 29명이 모여 1919년 4월 10일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인 11일 오전 10시까지 장장 12시간에 걸쳐 치열하게 회의를 행했던 순간을 재현한 영상이 상영되는 곳이다. 이 회의가 바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1회 회의’가 된다. 이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나라를 새로 세우고 국호를 정했다. 대한제국을 잇는다는 뜻에서 ‘대한’을, 그러나 주권은 국민이 가진다는 의미에서 ‘민국’을 택해 ‘대한민국’을 국호로 삼은 것이다. 1919년 4월 11일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성립된 의회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면서 국가 운영의 기본 원칙을 밝힌 헌법‘대한민국 임시헌장’(1919.4.11)을 공포하였다. 그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다. 그리고 그 법통은 현재 대한민국헌법의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상설전시1관에 입장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료인 ‘대동단결선언’ 선언문. 대한제국이 망한 순간부터 주권은 황제가 아닌 국민이 가짐을 선언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이정규
상설전시1관에 입장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료인 ‘대동단결선언’ 선언문. 대한제국이 망한 순간부터 주권은 황제가 아닌 국민이 가짐을 선언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이정규
1919년 4월 10일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인 11일 오전 10시까지 장장 12시간에 걸쳐 열렸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1회 회의’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정해지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정규
1919년 4월 10일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인 11일 오전 10시까지 장장 12시간에 걸쳐 열렸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1회 회의’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정해지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정규
1919년 8월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 샤페이로에 자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8월~10월). 임시정부 수립 직후에는 제대로 된 청사 건물이 없었으나 안창호 선생이 미주에서 모금해 온 자금으로 이곳에 청사를 마련하여 본격적인 정부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정규
1919년 8월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 샤페이로에 자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8월~10월). 임시정부 수립 직후에는 제대로 된 청사 건물이 없었으나 안창호 선생이 미주에서 모금해 온 자금으로 이곳에 청사를 마련하여 본격적인 정부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정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소개하는 전시관의 입구. 임시정부 청사 건물의 전면에 있는 붉은 색 아치를 본 따 입구를 장식하여 마치 임시정부 청사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 ⓒ이정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소개하는 전시관의 입구. 임시정부 청사 건물의 전면에 있는 붉은 색 아치를 본 따 입구를 장식하여 마치 임시정부 청사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 ⓒ이정규
임시정부는 독립전쟁을 선포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였으며 공군 창설을 위해 미국에 한인비행사양성소도 설립하였다. 중일전쟁 이후 1940년에는 정규군인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이정규
임시정부는 독립전쟁을 선포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였으며 공군 창설을 위해 미국에 한인비행사양성소도 설립하였다. 중일전쟁 이후 1940년에는 정규군인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이정규
임시정부는 정부를 운영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재정 활동을 펼쳤으며, 그 중에는 독립공채 발행도 있었다. ⓒ이정규
임시정부는 정부를 운영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재정 활동을 펼쳤으며, 그 중에는 독립공채 발행도 있었다. ⓒ이정규

상설전시2관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 대한 상세한 전시(구성, 선출, 활동 등)를 볼 수 있다. 또한 임시정부가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직후 상하이를 떠난 이래 일제의 대대적인 추적과 공격을 피해 8년간 4,000km에 달하는 대여정을 펼친 내용도 알 수 있다.

상설전시3관에서는 광복 후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에서부터 1948년 정부수립까지의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제헌헌법에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선포함으로써 이 나라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정신적 가치를 계승하였음을 밝혔다. 또한 대한민국은 제도적 유산뿐만 아니라 국호와 연호, 국기, 국가(애국가), 국경일과 기념일 등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이어받았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대한민국으로의 계승은 당연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혹독한 일제강점기를 버티며 임시정부를 지킨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설전시2관의 입구에는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 ⓒ이정규
상설전시2관의 입구에는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 ⓒ이정규
임시정부가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직후 상하이를 떠난 이래 일제의 대대적인 추적과 공격을 피해 8년간 4,000km에 달하는 대여정을 펼친 내용을 알려 주는 전시물 ⓒ이정규
임시정부가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직후 상하이를 떠난 이래 일제의 대대적인 추적과 공격을 피해 8년간 4,000km에 달하는 대여정을 펼친 내용을 알려 주는 전시물 ⓒ이정규
상설전시2관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 - 돌아오기 위해 떠난 4,000km’(한계륜)라는 커다란 영상 작품이 상영된다. ⓒ이정규
상설전시2관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 - 돌아오기 위해 떠난 4,000km’(한계륜)라는 커다란 영상 작품이 상영된다. ⓒ이정규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는 즉각 일본에 전쟁을 선포했고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연합군과 함께 대일 작전을 수행했다. 특히 한국광복군 제2지대는 미국 전략첩보국(OSS)과 함께 국내 침투작전인 ‘독수리작전(The Eagle Project)’을 추진하였다. 1945년 8월 4일 독수리작전 제1기 요원들의 훈련이 종료되고 최종 실행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일본의 항복선언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이정규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는 즉각 일본에 전쟁을 선포했고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연합군과 함께 대일 작전을 수행했다. 특히 한국광복군 제2지대는 미국 전략첩보국(OSS)과 함께 국내 침투작전인 ‘독수리작전(The Eagle Project)’을 추진하였다. 1945년 8월 4일 독수리작전 제1기 요원들의 훈련이 종료되고 최종 실행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일본의 항복선언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이정규
상설전시3관에서는 광복 후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에서부터 1948년 정부수립까지의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비록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은 개인 자격으로 이루어졌지만 국민들은 이들을 독립전쟁에서 개선하는 ‘정부’로 받아들이며 열렬히 환영했다. ⓒ이정규
상설전시3관에서는 광복 후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에서부터 1948년 정부수립까지의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비록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은 개인 자격으로 이루어졌지만 국민들은 이들을 독립전쟁에서 개선하는 ‘정부’로 받아들이며 열렬히 환영했다. ⓒ이정규
임시정부 주요 인사 23명이 광복을 맞아 중국 충칭을 떠나면서 조국 독립의 감회를 붓글씨로 적어 남긴 서첩. 우측 첫 번째가 이시영, 세 번째가 김구의 필묵이다. ⓒ이정규
임시정부 주요 인사 23명이 광복을 맞아 중국 충칭을 떠나면서 조국 독립의 감회를 붓글씨로 적어 남긴 서첩. 우측 첫 번째가 이시영, 세 번째가 김구의 필묵이다. ⓒ이정규
임시정부 외무부장으로 활동한 조소앙 선생이 1946년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된 3‧1절 기념식에서 행한 육성 연설을 직접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를 독립국으로 하오리다”라는 다짐이 가슴을 울린다. ⓒ이정규
임시정부 외무부장으로 활동한 조소앙 선생이 1946년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된 3‧1절 기념식에서 행한 육성 연설을 직접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를 독립국으로 하오리다”라는 다짐이 가슴을 울린다. ⓒ이정규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로부터 제도적 유산뿐만 아니라 국호와 연호, 국기, 국가(애국가), 국경일과 기념일 등도 이어받았다. ⓒ이정규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로부터 제도적 유산뿐만 아니라 국호와 연호, 국기, 국가(애국가), 국경일과 기념일 등도 이어받았다. ⓒ이정규
4층 전망대에서는 <현장에서 사진으로 보는 광복의 순간>이라는 사진전시가 8월 12일~10월 15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정규
4층 전망대에서는 <현장에서 사진으로 보는 광복의 순간>이라는 사진전시가 8월 12일~10월 15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정규
4층 전망대에서는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옥고를 치렀던 옛 서대문형무소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동시에 대한민국의 발전을 상징하는 남산서울타워도 저 멀리 눈에 들어온다. ⓒ이정규
4층 전망대에서는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옥고를 치렀던 옛 서대문형무소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동시에 대한민국의 발전을 상징하는 남산서울타워도 저 멀리 눈에 들어온다. ⓒ이정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 위치 : 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 279-24
○ 교통 : 3호선 독립문역 5번출구에서 도보 5분
○ 관람 시간 : 10:00~18:00(입장 마감 17:00)
○ 휴관일 :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는 공휴일 다음 첫 번째 평일 휴관)
○ 관람료 : 무료
누리집
○ 문의 : 02-772-8708

시민기자 이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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