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경복궁 후원이었다고요? 역사로 살펴보는 청와대의 재발견!
발행일 2023.08.23. 14:50
풍수지리에서 명당의 뒤에 있는 산을 주산(主山)이라 한다. 청와대를 품고 있는 북악산은 한양과 경복궁의 주산이다. 영문 이름 Blue House답게 청와대의 상징인 본관 지붕에는 15만 장의 청기와를 얹었다. 본관은 하나의 본채와 2개의 별채로 이루어졌으며, 동쪽(사진 상 오른쪽) 별채는 충무실, 서쪽(사진 상 왼쪽) 별채는 세종실이다. ⓒ양인억
개방 1주년 맞은 청와대
어느덧 청와대 개방이 15개월째다. 개방 초 회차별 인원을 한정했음에도 많은 관람객이 매 회차마다 몰려 여유 있는 관람이 어려웠다. 특히 청와대의 상징이자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 내부 관람은 입장을 위해 길게는 1시간 이상 뙤약볕 아래 줄서야 했고, 그런 어려움 속에 입장해도 관람객에 떠밀려 다니다시피 했다. 많은 시행착오와 개방 1년이 지난 요즘 한결 여유롭고 알차게 청와대를 관람할 수 있다.
북악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청와대는 지형상 가파른 언덕과 계단을 이용해야만 살필 수 있는 공간들도 있다. 게다가 대지면적이 25만 3,505㎡(7만 6,685평)로 아직은 무더위가 기승인 요즘 모든 장소를 살피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대신 냉방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실내 관람 코스 위주로 관람해 볼 것을 추천한다.
북악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청와대는 지형상 가파른 언덕과 계단을 이용해야만 살필 수 있는 공간들도 있다. 게다가 대지면적이 25만 3,505㎡(7만 6,685평)로 아직은 무더위가 기승인 요즘 모든 장소를 살피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대신 냉방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실내 관람 코스 위주로 관람해 볼 것을 추천한다.
청와대의 도로명 주소는 청와대로 1번지다. 사전 예약 후 관람 가능한 청와대는 정문과 동쪽에 있는 춘추문에서 사전 예약을 확인한 후 입장할 수 있다. ⓒ양인억
역사 속 재발견, 청와대 이야기
청와대 지역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천년 전,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왕을 비롯한 일부 고려 왕들은 남경으로 불린 청와대 지역으로 천도한 역사 기록도 있다. 이후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한양을 새로운 수도로 정하고 조선의 첫 궁궐 경복궁을 짓는다. 조선 초기 경복궁과 북악산 사이 현 청와대 지역은 특별한 시설물 없이 공신들과 그 자제들이 왕에게 충성 서약을 하던 ‘회맹단’ 정도만 있었다. 그러한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한성부 내 다른 궁궐(창덕궁과 창경궁)과 함께 불타고 가장 규모가 컸던 경복궁은 270여 년 간 복구되지 못한 채 폐허 상태로 남는다.
다행히 경복궁은 고종 때 중건된다. 중건 된 경복궁은 태조 때 궁장(궁궐의 담장)과 같았지만, 궐내 전각의 규모는 10배 정도 늘어난 500여 동으로 초기에 없었던 많은 전각이 필요에 따라 추가된다. 특히 왕과 왕의 가족이 생활을 하는 내전에는 당시 네 분의 대비를 모시는 전각이 각각 들어서는 등 조선 전기 경복궁에 비해 후원 영역이 매우 협소 해진다. 이에 1868년 경복궁이 완공된 후 창덕궁에서 이어(移御)한 고종은 창덕궁 후원처럼 경복궁 북쪽에 궁장을 이어 쌓고 경복궁 후원을 만든다. 고종 때 만든 경복궁 후원이 바로 지금의 청와대 지역인 것이다.
고종이 만든 후원은 크게 3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 동쪽에는 문·무과 과거시험장으로 각각 사용된 융문당과 융무당을 짓고(현재 녹지원 영역), 서쪽에는 왕이 직접 농사 짓는 시범을 위한 ‘친경(親耕)’ 장소로 ‘팔도배미’(현재 영빈관 영역)가 마련된다. 그리고 북쪽에는 오운각, 옥련정 등 작은 정자를 짓고 후원 속의 후원처럼 진정한 왕의 휴식 공간(현재 관저 영역)을 마련한다.
다행히 경복궁은 고종 때 중건된다. 중건 된 경복궁은 태조 때 궁장(궁궐의 담장)과 같았지만, 궐내 전각의 규모는 10배 정도 늘어난 500여 동으로 초기에 없었던 많은 전각이 필요에 따라 추가된다. 특히 왕과 왕의 가족이 생활을 하는 내전에는 당시 네 분의 대비를 모시는 전각이 각각 들어서는 등 조선 전기 경복궁에 비해 후원 영역이 매우 협소 해진다. 이에 1868년 경복궁이 완공된 후 창덕궁에서 이어(移御)한 고종은 창덕궁 후원처럼 경복궁 북쪽에 궁장을 이어 쌓고 경복궁 후원을 만든다. 고종 때 만든 경복궁 후원이 바로 지금의 청와대 지역인 것이다.
고종이 만든 후원은 크게 3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 동쪽에는 문·무과 과거시험장으로 각각 사용된 융문당과 융무당을 짓고(현재 녹지원 영역), 서쪽에는 왕이 직접 농사 짓는 시범을 위한 ‘친경(親耕)’ 장소로 ‘팔도배미’(현재 영빈관 영역)가 마련된다. 그리고 북쪽에는 오운각, 옥련정 등 작은 정자를 짓고 후원 속의 후원처럼 진정한 왕의 휴식 공간(현재 관저 영역)을 마련한다.
고종 때 중건 된 경복궁 후원 영역이었던 청와대 지역은 경복궁 북쪽, 북악산 남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양인억
조선을 대표하는 경복궁이 재출발 했지만 강대국에 의해 약소국이 유린되는 제국주의 시대, 한 나라의 왕비가 경복궁에서 일제에 의해 시해 당하는 을미사변(1895)을 겪는다. 신변이 위태로웠던 고종은 이듬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1896)을 단행한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1년을 보낸 고종은 1897년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덕수궁)으로 환어하면서 경복궁은 또 다시 주인 잃은 궁궐로 전락한다. 이후 경복궁은 일제강점기 90% 이상의 전각이 매각되거나 훼철되는 수난을 당한다. 경복궁 후원인 청와대 지역도 훼손을 벗어날 수 없었으며, 1926년 조선총독부 청사가 경복궁에 지어 진 이후에는 조선총독 관저가 후원의 ‘수궁’ 터에 들어선다.
더 이상 경복궁 후원이 아니었던 이 지역은 조선시대 옛 지명인 ‘경무대(景武臺)’로 불리고, 경무대는 조선 총독 관저의 별칭처럼 사용된다. 해방 이후 미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의 관저로 사용된 경무대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1층)이자 생활(2층) 공간으로 사용된다. 4.19혁명으로 물러난 이승만 대통령에 이어 제2대 대통령 윤보선도 역시 경무대를 관저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경무대가 지닌 조선 총독 관저 이미지와 이승만 독재 이미지를 씻고자 관저 지붕에 사용된 푸른색 기와에서 힌트를 얻어 1960년 ‘청와대(靑瓦臺)’로 이름을 바꾼다.
경무대, 즉 구(舊)본관은 1988년 임기를 시작한 제13대 노태우 대통령까지 사용하게 된다. 1988년 개최된 ‘88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계기였으나 한국을 찾는 세계 정상들은 여전히 일제가 만든 조선 총독 관저에서 정상회담을 해야만 했다. 결국 노태우 대통령 임기 중 국격에 맞지 않는 구 청와대 시대를 마감하고 1991년 새로운 청와대, 즉 오늘 날의 청와대를 건립한다. 새롭게 건립된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 등 업무 공간인 청와대 본관(이하 본관)과 대통령 부부가 생활하는 ‘관저’로 분리해 건립한다. 아울러 이 시기(1990년) 청와대 상주 기자들의 기사 송고실 및 대통령 기자회견 장소로 춘추관도 함께 건립하여 새로운 청와대가 완성된 것이다.
더 이상 경복궁 후원이 아니었던 이 지역은 조선시대 옛 지명인 ‘경무대(景武臺)’로 불리고, 경무대는 조선 총독 관저의 별칭처럼 사용된다. 해방 이후 미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의 관저로 사용된 경무대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1층)이자 생활(2층) 공간으로 사용된다. 4.19혁명으로 물러난 이승만 대통령에 이어 제2대 대통령 윤보선도 역시 경무대를 관저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경무대가 지닌 조선 총독 관저 이미지와 이승만 독재 이미지를 씻고자 관저 지붕에 사용된 푸른색 기와에서 힌트를 얻어 1960년 ‘청와대(靑瓦臺)’로 이름을 바꾼다.
경무대, 즉 구(舊)본관은 1988년 임기를 시작한 제13대 노태우 대통령까지 사용하게 된다. 1988년 개최된 ‘88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계기였으나 한국을 찾는 세계 정상들은 여전히 일제가 만든 조선 총독 관저에서 정상회담을 해야만 했다. 결국 노태우 대통령 임기 중 국격에 맞지 않는 구 청와대 시대를 마감하고 1991년 새로운 청와대, 즉 오늘 날의 청와대를 건립한다. 새롭게 건립된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 등 업무 공간인 청와대 본관(이하 본관)과 대통령 부부가 생활하는 ‘관저’로 분리해 건립한다. 아울러 이 시기(1990년) 청와대 상주 기자들의 기사 송고실 및 대통령 기자회견 장소로 춘추관도 함께 건립하여 새로운 청와대가 완성된 것이다.
본관 앞의 넓은 잔디 광장 이름은 ‘대정원’이다. 이곳은 외국 정상의 국빈 방문 시 전통의장대와 각군 의장대가 사열행사를 진행하는 공간이다. 대정원 잔디 밭에 난 길은 행사 시 레드카펫이 깔리는 길이다. ⓒ양인억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 관저로 건립된 ‘경무대(景武臺)’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장으로 사용된 융문당과 융무당 터를 일컫는 지명에서 유래한다. 1960년 경무대에 사용된 청색 기와에서 '청와대'로 이름이 바뀐 후 1991년 지금의 청와대 본관이 건립되면서 ‘구 본관(경무대)’이 된다. 구 본관은 1993년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영원히 사라진다. ⓒ양인억
청와대 본관은 다양한 궁궐 장식이 안팎으로 설치되어 있다. 궁궐과 마찬가지로 용마루 끝에는 취두, 내림마루 끝에는 용두, 추녀마루 위에는 잡상이 설치되어 있다. 본관 현관은 단청으로 마감, 격이 다른 건물임을 나타낸다. ⓒ양인억
조선을 대표하는 궁궐 경복궁의 정전, 근정전이다. 근정전을 살펴보면 지붕 형태(팔작지붕)와 장식물이 청와대 본관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단청은 궁궐과 왕릉 그리고 관청에만 사용 할 수 있는 특별한 건물 장식 수단이었다. ⓒ양인억
청와대 본관은 조선시대 궁궐 건축 구조와 비슷하다. 다만 한옥 건축의 단점인 내구성과 내마모성을 보완하기 위하여 건축 재료는 강도 높은 철근 및 콘크리트 등 현대 재료를 사용했다. 그러면서도 지붕 하중을 분산시키는 부재, ‘공포(栱包)’는 세밀한 가공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옥과 마찬가지로 목재를 사용했다. ⓒ양인억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된 다수의 ‘공포(栱包)’가 지붕을 떠 받치고 있는 경복궁 근정전. 청와대 본관을 궁궐 전각과 비교해 보면 궁궐 건축에서 많은 모티브를 따 온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양인억
본관 현관에서 남면한 모습으로 현관 프레임 속에 멋진 소나무들을 볼 수 있다 ⓒ양인억
청와대 본관은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내부 관람 동선은 세종실을 비롯한 왼쪽 공간 → 중앙 계단 → 2층 접견실 및 집무실 → 중앙 계단 → 인왕실과 충무실이 있는 오른쪽 공간 순이다. 본관에 들어서면 한옥 구조에서 모티브를 얻은 내부 장식과 붉은색 카펫에서 이곳이 대한민국 대통령 집무실임을 실감하게 된다. ⓒ양인억
별채로 이동하는 복도 천장에는 한옥 구조의 ‘공포(栱包)’에서 모티브를 따온 샹들리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양인억
복도뿐만 아니라 본관 내부 곳곳에는 ‘공포(栱包)’ 모양의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공포 끝 부분에는 왕이 나라를 잘 다스려 태평성대가 이루어지면 나타난다는 상상 속의 새, 봉황의 머리를 추가했다. ⓒ양인억
본관의 본채와 별채는 복도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서쪽에 위치한 세종실 맞은 편 벽면에는 12명의 역대 대통령 초상화가 걸려있다. ⓒ양인억
생생한 현장을 기록한 전시 3가지
지난 6월 1일부터 청와대에서는 3가지의 개방 1주년 기념 전시가 열리고 있다. 본관에서 진행되는 2가지 전시 중 ▴본관 내부 복원 프로젝트는 청와대가 실제 운용되고 있던 대통령 집무 당시를 기준으로 내부 장식을 복원하여 소개하는 전시이다. ‘본관 내부 복원 프로젝트’는 끝나는 날짜가 정해지지 않은 상시 전시로 어느 때고 관람할 수 있다.
본관의 세종실과 인왕실에서 열리는 또 다른 전시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 특별전으로, 청와대에서 생활했던 12명의 역대 대통령 관련 자료를 8월 28일까지 소개한다. 마찬가지로 6월 1일부터 8월 28까지 춘추관에서 진행되는 ▴초대, 장(招待, 場) 전시는 청와대 영내 다양한 공간에서 실제 사용된 가구와 각 대통령 재임 시기별 식기 세트가 소개된다.
실제 청와대가 활용되던 당시를 소개하는 3가지 전시는 모두 실내에서 진행되는 바 더위도 피하면서 청와대 내부에 걸렸던 멋진 예술 작품 감상 및 역대 대통령 관련 자료를 함께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본관의 세종실과 인왕실에서 열리는 또 다른 전시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 특별전으로, 청와대에서 생활했던 12명의 역대 대통령 관련 자료를 8월 28일까지 소개한다. 마찬가지로 6월 1일부터 8월 28까지 춘추관에서 진행되는 ▴초대, 장(招待, 場) 전시는 청와대 영내 다양한 공간에서 실제 사용된 가구와 각 대통령 재임 시기별 식기 세트가 소개된다.
실제 청와대가 활용되던 당시를 소개하는 3가지 전시는 모두 실내에서 진행되는 바 더위도 피하면서 청와대 내부에 걸렸던 멋진 예술 작품 감상 및 역대 대통령 관련 자료를 함께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개방 1년 간 공개하지 않았던 세종실이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 특별전을 계기로 개방되었다. 12명의 역대 대통령 별 소개 코너가 마련된 세종실은 국무회의가 열리던 공간이다. ⓒ양인억
세종실 북쪽 벽면에 설치된 송규태 작가의 <일월도>. 조선시대 왕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으로 368 x 465cm의 대작이다. 원색이 많이 사용된 조선시대 일월오봉도와 달리 채도가 낮아 부드럽게 보인다. ⓒ양인억
경복궁 근정전 어좌 뒤에 설치된 <일월오봉도>. 송규태 작가의 <일월도>보다 색감이 화려하다. ⓒ양인억
세종실 남쪽 벽면에 일월도와 같은 크기로 설치된 작품은 백금남 작가의 <훈민정음>이다. 이 작품은 무수한 한자가 겹쳐 있는 바탕에 ‘월인천강지곡’체의 한글로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된 서문을 적고 있다. ⓒ양인억
본관 본채 건물 서쪽에는 대통령 영부인을 위한 3개의 공간이 있다. 각각 무궁화실, 접견실 그리고 집무실이다. 무궁화실 남측 벽면에는 11명의 대통령 영부인 사진이 걸려 있다. ⓒ양인억
본관 내부 인테리어 장식 중 관심을 갖고 볼 만한 것은 각 실마다 다른 형태의 조명시설이다. 무궁화실에는 여성의 공간답게 나비 모양의 샹드리에가 설치되어 있다. ⓒ양인억
소박한 가구와 넓지 않은 이곳은 대통령 영부인 집무실이다. ⓒ양인억
2층 구조인 본관은 본채 중앙에 설치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목재 마감재와 어울리는 붉은색 레드카펫이 깔려 있는 이곳은 포토존으로 관람 인증샷을 담기 위해 적지 않은 관람객이 줄을 서는 곳이다. ⓒ양인억
중앙 계단, 계단참 벽면을 장식한 가로 11.46m, 세로 5.33m의 대형 한반도 그림은 김식 작가의 <금수강산도>이다. 본관 건립 시 설치된 그림은 산 봉우리를 은을 혼합하여 채색한 금색으로 작업하였으나 30년 세월 동안 변색되었다. 다행히 금번 전시를 위해 작가가 직접 복원하여 복원 전과 전혀 다른 인상을 받게 된다. ⓒ양인억
중앙 계단 이용 시 계단 중간에서 천장을 한번 살펴보자. 천장에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을 모티브로 한 <천문도>가 그려져 있다. 단, 개방 초기와 달리 현재는 관람객이 이 모습을 촬영하다가 안전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계단 위에서의 천문도 사진 촬영은 금지하고 있다. ⓒ양인억
본관 2층에는 2개의 공간, 대통령 접견실과 집무실이 있다. 접견실 앞은 금수강산도와 함께 중앙 계단을 담을 수 있는 포인트이다. 안전상 중앙 계단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하므로 이곳을 추천한다. ⓒ양인억
접견실 맞은 편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다. 서쪽 벽면의 대통령 휘장이 대통령 집무실임을 알려 주고 있다. 집무실 바닥에는 십장생 카펫이 깔려 있다. ⓒ양인억
집무실에서 유념해 볼 실내 장식품 중의 하나는 북쪽 벽면에 설치된 조명으로 신라 금관을 응용한 것이다. 참고로 집무실 관람을 마치고 나가는 문 좌측 벽면에 신라 금관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양인억
대통령 집무실을 나서면 볼 수 있는 정경이다. <천문도>에 설치된 2개의 대형 샹들리에는 한옥 구조의 공포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본관에 있는 샹들리에 중 가장 크다. ⓒ양인억
12명의 역대 대통령을 소개하는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 특별전은 인왕실로 이어진다. 인왕실 서쪽 벽면을 장식한 그림은 전혁림 화백이 2006년 인왕실 벽면 크기에 맞게 그린 <통영항>이다. 이 작품은 <한려수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양인억
본관의 익랑(翼廊) 격에 해당하는 별채, 세종실과 충무실은 단층이다. 동쪽에 있는 별채 충무실 입구 앞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거북선과 귀갑 문양의 카펫이 깔려 있다. ⓒ양인억
충무실 내부 입장은 불가하며 열린 문을 통해 내부를 살필 수 있다. 이곳 충무실은 국무위원인 각 부처 장관의 임명장 수여식 등이 열리는 곳이다. ⓒ양인억
청와대 개방 1주년 기념 특별전 ‘초대, 장’(招待, 場)이 열리는 춘추관은 청와대 동쪽 끝에 있다. ‘춘추관’은 고려와 조선시대 역사를 편찬하던 관청 이름으로 대통령 기자회견 장소이자 출입기자들이 기사송고실로 사용한 공간이다. 춘추관 관람은 청와대 관람 예약 없이 가능하다. ⓒ양인억
‘초대, 장’(招待, 場) 전시가 열리는 춘추관 입구에 들어서면 과거 뉴스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브리핑 무대가 보인다. 이곳에서 대통령 휘장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담을 수 있다. ⓒ양인억
‘초대, 장’(招待, 場) 전시가 열리고 있는 춘추관 브리핑룸 전경이다. 브리핑룸은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거나 국내외 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하는 곳이다. 금번 특별전을 위해 중앙에는 식기 세트를, 벽면에는 청와대에서 실제 사용했던 가구를 전시하고 있다. ⓒ양인억
춘추관 브리핑룸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12개의 방패연 조명. 옛날 통신 수단의 하나로 사용했던 연을 이용한 브리핑룸 조명에서 이곳이 춘추관임을 알 수 있다. ⓒ양인억
‘초대, 장’(招待, 場) 전시물 중의 하나로 경무대, 즉 ‘구 본관’에서 사용하던 가구. 경무대는 1993년 김영삼 정부에서 추진한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헐리고 현재는 경복궁 후원 당시 '수궁'이 있었던 터로 복원해 놓았다. ⓒ양인억
청와대 본관 내 영부인을 위한 공간인 무궁화실에서 사용하던 가구 ⓒ양인억
청와대 영내에 제대로 된 한옥 건물이 없는 아쉬움을 보완하여 1983년 전두환 대통령 재임 시 건립한 건물이 ‘상춘재(常春齋)’다. ‘항상 봄이 머무는 집’이라는 상춘재는 국빈을 위한 소규모 연회, 여야 대표와의 맥주 회동 등이 열린 곳이다. ⓒ양인억
조선시대 왕을 상징하던 봉황은 대통령 공식 휘장에도 등장한다. 전시된 가구는 전두환 대통령 재임 시 상춘재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당시까지는 '상춘재'에서 좌식 생활 가구만 사용했다. '상춘재'의 입식 가구 사용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라고 한다. ⓒ양인억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기 위해 비치한 가구. 대통령 의자 등판에는 봉황이 있는 대통령 휘장이 음각되어 있고 참모들 의자에는 무궁화가 새겨져 있다. ⓒ양인억
관저는 대통령과 대통령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전통 한옥 느낌이 물씬 난다. 본관보다 한 해 앞선 1990년 춘추관과 함께 건립된 관저는 대통령의 공적 공간인 본관과 분리된 사적 공간이다. ⓒ양인억
관저에서 사용한 가구 ⓒ양인억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 대구에 사시는 노모께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자주 상경했다고 한다. 이 때 노모를 위한 관저의 방 하나를 ‘할머니방’이라 불렀다. 이 가구는 바로 그 할머니방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양인억
‘초대, 장’(招待, 場) 전시의 또 다른 전시물은 각 대통령 시기별 식기 세트다. 이 식기 세트는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 식기 세트로 박대통령 재임 전까지는 청와대에서 일본산 수입 자기 세트를 사용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육영수 여사가 국내 식기업체에 의뢰하여 국내 최초로 개발한 본차이나 식기 세트가 전시 중이다. ⓒ양인억
이명박 대통령 재임기인 2010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G20 정상회의 만찬을 가졌다. 당시 사용한 식기 세트는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유려한 선이 특징이다. ⓒ양인억
청와대 서쪽에 있는 ‘영빈관(迎賓館)’은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란 뜻으로 1978년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에 대규모 만찬장으로 건립한 것이다. 현 정부에서 대규모 만찬 행사 시 영빈관을 사용하면서부터 상황에 따라 내부 관람 및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양인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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