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된 이발소, 꽃으로 뒤덮이다! 백발의 이발사가 전하는 감동

시민기자 조시승

발행일 2023.06.02. 13:00

수정일 2023.06.02. 18:33

조회 1,822

[우리동네 시민영웅] 골목 정원을 가꾸며 주민에게 기쁨 주는 이홍구 이발사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이홍구 님이 35년간 운영하고 있는 '정진이발관' 전경. 앞면을 장식한 화원이 눈길을 끈다. ⓒ조시승
이홍구 님이 35년간 운영하고 있는 '정진이발관' 전경. 앞면을 장식한 화원이 눈길을 끈다. ⓒ조시승

15세부터 이발을 천직으로 여기며 이웃과 함께 한평생을 살아 온 동네 어르신이 있다. 성동구 성수2가 성덕정길에서 35년간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는 80세의 이발사, '정진이발관' 이홍구 님이다.

상가와 주택이 혼재한 성덕정길 왕복 2차선의 차도선은 실선이 아닌 점선이다. 차도와 인도와의 구별이 잘 안되기도 한다. 한낮의 도로는 오가는 차들과 왕래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성수2가동 공영주차장 옆에 아담한 이발관 간판이 보인다. ‘정진이발관’이다. 문 앞의 차양을 젖히고 들어가니 마침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는 이홍구 님이 보였다. 희끗희끗한 머리가 노련한 삭삭 가위질 소리와 어우러지며 자상스런 얼굴과 조화를 이룬다.
손님 머리를 이발하는 이홍구 님. 노련한 삭삭 가위질 소리가 반겨준다. ⓒ조시승
손님 머리를 이발하는 이홍구 님. 노련한 삭삭 가위질 소리가 반겨준다. ⓒ조시승

이홍구 님은 젊은 시절에 재능기부 등 지역봉사활동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분으로, 지금은 이발관 앞과 이발소 내실에 화원을 만들어 동네를 아름답게 하고 주민들을 기쁘게 해 주고 있다. 이웃들에게 직접 재배하거나 키운 화초를 나누어 주기도 한다.

주민들에게 감동의 여운을 주는 이발소 앞 화원의 화초 50종의 상태를 매일매일 체크하고 있다는 그의 입에서 장미, 수국, 난, 분홍색과 하얀색 라인이 예쁜 사파니아(페튜니아) 등 화초 이름이 술술 나온다. 꽃들을 키우다 보니 동네 주민들은 꽃향기 가득한 이발소 앞을 지나며 행복을 충전한다. 꽃동산에는 벌나비가 날아들고 새들도 쉬다 간다.

페튜니아, 장미화로 쭉쭉 뻗은 수직 정원을 살피자니 '성수동 마을정원'이라는 표찰이 보인다. 동사무소에서 인정한 '마을정원'이자 '동네화원'이라는 의미다. 작지만 오롯이 세월의 흔적이 녹아있는 터였다.
‘정진이발관’ 앞은 꽃이 만발한 화원이다. 페튜니아, 장미화로 뻗은 수직 정원이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조시승
‘정진이발관’ 앞은 꽃이 만발한 화원이다. 페튜니아, 장미화로 뻗은 수직 정원이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조시승

수십 년 삶의 모습을 간직한 이 작은 이발소를 통해 한 주민의 작지만 훈훈한 소영웅의 이야기를 청해 보았다. 백발의 이홍구 님은 이발소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나한테 한번 머리 손질을 받은 사람은 다른 곳에는 못 가겠다고 합니다. 이발은 가위로 하는 것이 정석이죠. 지금 세대의 이발사들은 기계(바리깡)로 하는데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개개인의 두상은 각각의 특색을 갖고 있는데 기계로는 그 개성을 살리는 머리를 만들지 못하거든요" 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젊었을 때에는 재능기부(이발)의 지역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에 모범을 보여 온 그였다. 사근동의 한양대생들과 금호동의 달동네에서 무료봉사활동을 수년간 했고 지금도 그 시절 도움 받은 학생들이나 주민들이 이발소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며 옛 이야기를 나누기 바쁘다. 자녀들도 인근 학교에 다녔고 1남1녀 모두 출가한 이곳이 이홍구 님에겐 제2의 고향이다.
마무리 손질하시는 이홍구 님. 이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분이었다. ⓒ조시승
마무리 손질하시는 이홍구 님. 이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분이었다. ⓒ조시승

이홍구 님은 화초 가꾸는 실력도 대단하다. 35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이발소 입구의 미니정원을 가꾸다 보니 접목이나 꺾꽂이, 포기나누기 등으로 식물을 번식시켜 주민에게 화초를 나누어 준다고. 웬만한 화초의 병은 영양제를 직접 만들어 주거나 진단하고 처방하며 고치기도 한다. 식물의 아픈 증상에 따라 해결법을 알고 있어 동네 사람들도 와서 문의하는 식물치료사 역할도 한다.
이발관 앞 예쁜 꽃동산, '성수동 마을정원'은 손님과 동네 주민들에게 기쁨을 선물한다. 이홍구 님은 화초 가꾸는 실력도 대단하다. ⓒ조시승
이발관 앞 예쁜 꽃동산, '성수동 마을정원'은 손님과 동네 주민들에게 기쁨을 선물한다. 이홍구 님은 화초 가꾸는 실력도 대단하다. ⓒ조시승

"내 나이에 돈 많이 벌려고 이발소를 하지 않아요. 자녀들도 성장하여 다 출가했고 집안에 크게 우환도 없고 우리 부부도 건강하게 별 탈 없이 살고 있습니다. 15세부터 시작하여 지금껏 갖고 있는 이발 재능을 통해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싶어요." 이홍구 님의 말이다.

"우리 이발관을 찾거나 가게 앞을 지나는 지역 주민들에게 평안과 안식, 기쁨을 주기 위해 꽃을 심기 시작했어요. 대부분의 경우 꽃씨를 동사무소에서 받으면 심기만 하고 관리를 안 해 주죠. 저절로 자라면 좋고 병충해를 만나 병들거나 시들면 내버려 두는데, 주인이 잘 돌보지 않으면 오래 못 가서 시드는 경우가 많아요."

이홍구 님은 정성껏 물도 주고 분갈이도 하고 바람도 들게 하고 적절히 햇볕도 받게 하는 등 환경에 알맞는 자연의 약 처방도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이홍구 님의 정원에는 병든 화초는 눈에 띄지 않는다. 마침 이발을 마치고 가는 손님이 "이곳이 TV 드라마, CF 촬영으로도 몇 번 매스컴을 타기도 한 마을명소"라고 알려 준다.
이홍구 님이 '정진이발관' 앞 화원에서 화초의 상태를 살피며 물을 주고 있다. ⓒ조시승
이홍구 님이 '정진이발관' 앞 화원에서 화초의 상태를 살피며 물을 주고 있다. ⓒ조시승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빛 바랜 이발소에서 이홍구 님은 말한다. "이제 나의 남은 삶은 내가 성장하고 동고동락한 이곳의 주민을 위해 작은 재능(이발)을 함께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주민과 호흡하면서 여생을 갈무리하고 싶어요." 잔잔하지만 깊은 감동을 느낀다. 
꽃향기 가득한 이발소 앞 꽃동산 나무에 쉬는 새. 벌나비도 날아든다. ⓒ조시승
꽃향기 가득한 이발소 앞 꽃동산 나무에 쉬는 새. 벌나비도 날아든다. ⓒ조시승

정진이발관

○ 위치 : 서울 성동구 성덕정길 117
○ 교통 : 지하철 2호선 성수역 3번 출구, 도보 15분
○ 문의 : 02-2286-7462 (공휴일 휴무)

시민기자 조시승

자랑스런 전통과 현존하는 매력을 공유하는 수도 서울의 아름다움을 널리 전파하고 싶습니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