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망봉에서 영월 하늘을 바라보다...'단종비 정순왕후 문화제'

시민기자 조시승

발행일 2023.04.27. 09:07

수정일 2023.05.0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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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2일, 숭인근린공원(동망봉)에서 제15회 '단종비 정순왕후 문화제'가 열렸다. ⓒ조시승
지난 4월 22일, 숭인근린공원(동망봉)에서 제15회 '단종비 정순왕후 문화제'가 열렸다. ⓒ조시승

조선왕조의 가장 불운한 왕비, 열다섯 살에 단종의 왕비로 간택, 열여섯 살에 상왕비가 되고 열여덟 살에 폐비로 서인이 된 정순왕후(定順王后). 그녀의 남편 단종은, 불의한 숙부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청룡사(靑龍寺) 우화루(雨花樓: 헤어짐을 슬퍼하는 눈물이 비처럼 내린다는 의미)에서 함께 마지막 밤을 눈물로 지새고 영도교에서 생이별 한 지 넉 달 후 귀양지인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서슬 퍼런 권력이 던져주는 동정을 치욕으로 여겨 거부하고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64년 간 한 남자의 아내와 조선의 왕비로서의 지조를 지켰다. 그녀를 추모하는 ‘단종비 정순왕후 문화제’에 다녀왔다.
행사장으로 오르는 길에 설치된 청사초롱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조시승
행사장으로 오르는 길에 설치된 청사초롱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조시승

단종이 죽고 서인으로 폐위된 단종비 정순왕후는 평생 소복을 입고 동망봉(東望峰)에 올라 님이 머물고 죽임을 당했던 영월을 바라보며 통곡하며 지냈다. 서민(庶民) 생활에 익숙치 않았던 그녀는 생계를 위해 동냥을 하고 염색일로 생업을 이어나갔으며 평생 채식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한이 서린 세월의 부침을 견디고 보니 죄 지은 자들이 혈육을 잃거나 부관참시되는 인과응보를 지켜보았으나 꽃다운 자취를 남기고 떠난 님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정순왕후는 비구니가 되어 청룡사에 기거하다 피와 탐욕으로 얼룩진 기나긴 세월을 묵묵히 지켜내고 82세에 그리던 님(단종)에게로 갔다. 기나긴 삶의 무거운 짐을 벗어나 그토록 그리웠던 님 계시는 동쪽을 향한 길로 떠난 것이다. 1771년 영조가 절 내에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는 비석을 세우고 동망봉이라는 친필 표석을 세워 단종을 애도한 이후 절 이름을 정업원(淨業院)이라 불렀고 이후 청룡사로 개명됐다.
정순왕후 송씨가 영월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는 자리에 세워진 동망정(東望亭) ⓒ조시승
정순왕후 송씨가 영월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는 자리에 세워진 동망정 ⓒ조시승
영조의 친필이 새겨진 동망봉(東望峰) 동망각(東望閣) ⓒ조시승
영조의 친필이 새겨진 동망봉(東望峰) 동망각(東望閣) ⓒ조시승

지난 4월 22일 숭인근린공원(동망봉)일대에서 조선 제 6대 임금 단종의 비로 비운의 삶을 살았던 정순왕후의 충절과 정절을 기리는 제15회 단종비 정순왕후 문화제가 열렸다. 궁중무(宮中舞)와 추모시가 낭송되었고 (사)전주이씨 대동조약원 주관으로 추모제례가 올려졌다.

숭인근린공원 행사장은 여느 행사장과는 달리 차분하고 엄숙했다. 어쩌면 한 많은 삶의 숨결이 남겨진 이곳의 흔적과 비운의 숨결을 보존하는 최소한의 도리가 아니었을까. 정순왕후는 타고난 검소와 배려심의 미덕을 인정받아 왕비로 책정되었다. 왕비에서 1년 만에 상왕비로 오르고 정상적 순리라면 자녀가 왕위를 이을 자리였으나 2년 만에 숙부에게 쫒겨나 폐비로 군부인이 되었다.

안타까운 사연이 마을사람들에게 입으로 전해지니 왕후를 동종한 부녀자들이 끼닛거리를 가져다 주었다. 관에서 알고 금했으나 왕후를 동정하는 사람들은 영도교 인근에 금남의 여인시장을 열고 계속 끼닛거리와 채소를 가져다 주어 나중에는 아예 긴 행렬이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정순왕후 문화제'의 한 장면. 억울하게 죽은 남편 단종을 기리다 죽은 정순왕후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조시승
'정순왕후 문화제'. 억울하게 죽은 남편 단종을 기리다 죽은 정순왕후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조시승
'정순왕후 문화제'의 한 장면인 궁중무(宮中舞) ⓒ조시승
'정순왕후 문화제'의 한 장면인 궁중무(宮中舞) ⓒ조시승

공연장 무대에서 벌어지는 ‘궁중무’에서 학(鶴)의 우아한 자태는 정순왕후의 절개와 그리움이었으리라! 이어진 낭송극은 애절하고 구슬펐다. 궁궐에서 쫓겨 나와 생계를 위해 염색일로 손등이 갈라질 지라도 나쁜 권력이 주는 동정을 거부했고 '가장 낮은 곳에서 서민과 함께 하니 진정 모든 이의 국모로서 거듭난 것'이라는 구절은 감동스러웠다. 비는 영빈정동(英嬪貞洞), 즉 조정에서 지어준 집과 식량까지도 거부하며 눈물겨운 삶을 홀로 살았다.
궁중무의 한 장면. 새하얀 학의 우아한 자태는 정순왕후의 절개와 숭고함을 나타내는 듯하다. ⓒ조시승
궁중무의 한 장면. 새하얀 학의 우아한 자태는 정순왕후의 절개와 숭고함을 나타내는 듯하다. ⓒ조시승

이어 (사)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주최로 추모 제향(祭享)이 올려졌다. 제관들이 자리로 나아가 신을 맞이하고 술잔을 올리며 축문을 읽고 축문을 불사르는 예를 보았다. 왕후에 대한 예를 갖춘 추모행사였다. 정순왕후는 뒤늦게 나마 하늘나라에서 행사를 보고 안도하며 평안히 눈감았으리라. 정순왕후를 추모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도리가 무엇인지? 왕비로서 아내로서 서민 아녀자로서 우리에게 주는 전통계승의 도리는 무엇인지? 모두의 위치에서 불의에 맞선 선인들의 정신을 잇고 제자리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를 위한 도리로 승화하고저 한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이 주관한 정순왕후 추모 제향 ⓒ조시승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이 주관한 정순왕후 추모 제향 ⓒ조시승

정순왕후 문화제의 체험행사는 당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다채롭게 진행됐다. ▴천연염색 및 친환경 물품 (삼푸바,공기정화 물화분, 가죽필통) 만들기와 주민참여프로그램인 ▴숨결길 해설(5코스 10명, 총 5회)도 열렸다. 올해의 주제는 ‘마을과 함께 지킨 도리⁃정순왕후 삶의 가르침’으로, 한 많고 애달픈 그녀의 넋을 위로하고 본 받을 것이 많은 한 여인의 생애를 추모했다.
공기정화 화분 만들기 차례를 기다리는 체험자들의 모습 ⓒ조시승
공기정화 화분 만들기 차례를 기다리는 체험자들의 모습 ⓒ조시승

단종과 단종비 정순왕후에 대한 스토리는 자주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도 활용되고 있다. 단종이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숙부 세조에 의해 억울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또 단종비가 단종의 죽음을 슬퍼하며 소복을 입고 동망봉에 올라 영월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이야기는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살아 숨쉬는 문화 콘텐츠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울지고 있는 것이다.

시민기자 조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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