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평화를 꿈꾸다! 화·목요일마다 정동길에 퍼지는 선율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3.04.07. 14:49

수정일 2023.04.09. 17:58

조회 1,831

[우리동네 시민영웅] '평화를 위한 화목 음악회' 열고 있는 배일환 교수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음악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음악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U2' 보노 -

만국 공통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의 긍정적인 효과를 믿고 굳건히 실천하는 분이 있다. 그 인물을 만나러 정동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따스한 봄날, 정동길 이화100주년기념관 앞 담벼락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 사이로 현악기 4중주의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새를 비집고 들어가서 연주회를 구경했다.
작년 3월 21일부터  매주 화, 목요일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배일환 제공
작년 3월 21일부터 매주 화, 목요일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배일환 제공
배일환 교수가 '평화를 위한 화목 음악회' 공연을 참관하고 있다. ⓒ윤혜숙
배일환 교수가 '평화를 위한 화목 음악회' 공연을 참관하고 있다. ⓒ윤혜숙

점심을 먹고 이곳에 모여든 직장인들은 음악을 듣다가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게 못내 아쉬운 것 같았다. 옆에서 음악을 듣던 직장인이 동료에게 “벌써 점심시간이 끝났어. 사무실로 가야 하는 게 아쉬워. 오늘따라 점심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렸어”라고 투정하듯 말한다.

직장인들의 발길을 붙들고 시선을 고정하는 음악회는 3월 21일부터 매주 화요일, 목요일 주 2회에 걸쳐서 12시 30분부터 1시까지 30분간 열리고 있는 ‘평화를 위한 화목 음악회’다. 멀찍이 서서 연주자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한 분이 계셨다. 연주자들만큼 긴장된 표정으로 연주회를 지켜보고 있는 배일환 교수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첼로를 지도하는 배일환 교수에게서 ‘평화를 위한 화목 음악회’를 열게 된 사연을 들어 보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평화를 기원하는 음악회를 열고 있는 배일환 교수 ⓒ윤혜숙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평화를 기원하는 음악회를 열고 있는 배일환 교수 ⓒ윤혜숙

작년, 그러니까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로 진격해 하루 만에 수도 키이우를 포위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 배일환 교수는 과거 우크라이나에서 연주회를 열었던 적이 있다. 연주회가 열렸던 아름다운 건물이 폭파되는 것을 뉴스로 지켜보면서 처음엔 안타깝다가 나중엔 화가 났다.

배 교수는 “뭐라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저는 음악밖에 모르고 살았으니, 지금 당장 우크라이나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음악이었어요. 그래서 '평화를 위한 음악회'를 생각해 봤죠.” 라고 전했다.

그해 3월 17일에 음악회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음악회를 열기 위해 서울시에 문의했지만 무산되었다. 대신 장소를 옮겨 정동길 이화여고의 이화100주년기념관 앞에서 음악회를 하기로 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3월 21일부터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처음에 시작할 때만 해도 한두 달 연주하다가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배 교수는 종전을 축하하는 성대한 음악회를 열 것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덧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 중이다.
배일환 교수를 비롯한 연주자들이 우크라이나 국기가 그려진 마스크를 착용하고 공연했다. ⓒ배일환
배일환 교수를 비롯한 연주자들이 우크라이나 국기가 그려진 마스크를 착용하고 공연했다. ⓒ배일환 제공

작년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 낮 12시 30분에 주 5일 공연을 했다. 실외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기 전에는 연주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연주했다.

배 교수는 첫날의 공연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국기가 그려진 마스크를 가져온 분이 있었다. 그래서 연주자들은 그 마스크를 쓴 채 연주를 이어갔다. 배 교수는 “감사하게도 제 취지에 동참해 주는 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지도하는 이화여대 음악동아리 이화첼리, 이화다움 학생들과 함께 연주를 시작했는데 선후배, 동료들이 연주에 참여해 주셨어요. 나중엔 러시아 피아니스트, 우크라이나 가수도 연주에 동참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어요.”라고 감사를 표한다.

“음악,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착하다고 하죠. 음악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러시아의 침공으로 피해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위해서 ‘평화를 위한 화목 음악회’를 시작했지만, 러시아도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 외엔 군인들, 국민 모두 피해자인 셈이죠. 전쟁이 일어나면 가해자든 피해자든 양국에서 모두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전쟁이라도 일어나선 안 됩니다.”
배일환 교수는 음악이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윤혜숙
배일환 교수는 음악이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윤혜숙

배 교수는 첼로라는 악기가 커서 좋았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무대에서 첼로를 연주했다. 그때 그의 연주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좋아하면서 그에게 칭찬해 주는 것을 보면서 음악이 사람들을 즐겁고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의 첫 무대 경험은 그가 지금까지 첼로를 연주하게 된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대가 없이 연주회를 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배일환 교수는 그 일을 묵묵히 또 꾸준히 해내고 있다. 계기가 궁금했다. 그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영향을 받았어요. 그분들은 저에게 늘 이런 말씀을 해 주셨어요. 네가 가진 것을 사회를 위해서 쓰라고요.” 라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선생님께 들어온 바를 마음에 새기면서 실천하려고 한단다.

정동길은 차량과 사람이 혼재하는 거리이다. 클래식 연주를 위해 모든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진 공연장도 많은데, 거리에서 연주하면 어떤지 궁금했다. 배 교수는 “제가 연주하는 곳이 최고의 공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해외에서도 공연을 많이 했습니다. 쓰레기 더미나 창고 같은 허름한 곳에서도 공연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연주를 즐기면서 환호하는 수많은 관객을 보면서 공연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라고 답했다.
정동길을 오가다보면 '평화를 위한 화목 음악회' 현수막을 볼 수 있다. ⓒ윤혜숙
정동길을 오가다보면 '평화를 위한 화목 음악회' 현수막을 볼 수 있다. ⓒ윤혜숙

작년부터 이어온 음악회를 지난 겨울에 잠시 중단했다. 한파에 거리에서 공연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올해 3월 21일부터 음악회를 재개했다. 올해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평화를 위한 화목 음악회’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음악회를 열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많았다. 초등학생이 직접 제작했다면서 공연 내내 평화를 염원하는 피켓을 들고 있었던 적이 있다. 공연이 끝난 뒤 배 교수 일행에게 평화의 피켓을 선물로 전해 줬다고 한다. 우리동네의 자랑이라며 물이나 커피를 가져다 주는 분들도 있고, 밥을 사 주겠다는 분들도 있었다.

그는 "음악회를 즐겨 주는 시민들이 전쟁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써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동길에서 음악회를 관람했던 분들이 아니어도, SNS를 통해 음악회의 소식이 널리 전해지고 있다. 작년에 외국의 언론매체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던 적도 있다.
배일환 교수는 초등학생들이 만든 평화를 염원하는 피켓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윤혜숙
배일환 교수는 초등학생들이 만든 평화를 염원하는 피켓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윤혜숙

매주 화, 목요일 음악회의 일정이 5월 중순까지 정해져 있다고 한다. 배 교수를 비롯한 많은 연주자들이 팀을 짜서 돌아가면서 연주하고 있다. 연주팀은 본인의 일과 중에 시간을 내어서 연습하고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대가가 주어지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 교수의 취지에 공감하고 연주에 동참해 주는 많은 분이 있어서 연주를 중단 없이 지속하고 있다.

“음악은 세상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입니다.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도 있고 또 전쟁의 참상을 알릴 수 있습니다. 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음악회를 지속할 겁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면 지금까지 음악회에서 연주했던 분들과 함께 성대한 종전 음악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꼭 그런 날이 오겠지요.”
'평화를 위한 화목 음악회'는 매주 화, 목요일 낮 12시 30분부터 1시까지 열린다. ⓒ윤혜숙
'평화를 위한 화목 음악회'는 매주 화, 목요일 낮 12시 30분부터 1시까지 열린다. ⓒ윤혜숙

배일환 교수의 바람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도 하다.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점에선 아직 휴전 상태인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선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배일환 교수와의 인터뷰는 유쾌했다. 평화를 염원하는 모두의 마음을 모아서 서울 한복판에서 평화를 위한 연주가 울려 퍼지고 있다. 아무쪼록 전쟁이 끝나고 하루 빨리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종전이 되면 정동길에서 화목 음악회를 들을 순 없겠지만, 평화로운 세상에서 또 다른 음악이 우리를 찾아올 거라 믿는다.   

평화를 위한 화목 음악회

○ 장소 : 서울시 중구 정동길 26 이화100주년기념관 앞
○ 일시 : 매주 화·목요일 12:30~13:00

시민기자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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