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집밥 먹이고 싶어요! 자립준비청년 위한 '밥집알로'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2.12.23. 15:00

수정일 2023.01.05. 19:00

조회 5,496

[우리동네 시민영웅] ⑰ 자립준비청년에게 집밥을 만들어 주는 '밥집알로'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자립준비청년을 아시나요? 아동복지시설, 위탁가정 등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돼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하는 청년들인데요, 홀로서기를 하기엔 세상은 만만치 않고 아직 많은 지원과 응원이 필요한 나이이죠.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힘이 되는 말 한 마디로 자립준비청년의 가족이자 친구가 되어 주는 이가 있습니다. 자립준비청년에게 든든한 집밥 같은 곳, '밥집알로'의 박종인 신부와 봉사자들을 만나 봤습니다. 
자립준비청년에게 집밥을 제공하기 위해 밥집알로가 문을 열었다.
자립준비청년에게 집밥을 제공하기 위해 밥집알로가 문을 열었다. ⓒ윤혜숙

올해 1월 10일에 문을 연 밥집알로는 은평구 역촌역 1번 출구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다. 밥집알로에선 오후 4시부터 저녁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자원봉사자들이 번갈아 가면서 이곳에 와서 저녁을 준비한다. 그들은 자신의 자녀에게 먹일 음식을 준비하듯 성심성의껏 저녁을 차린다. 밥집알로는 누구를 위해서 따뜻한 밥을 짓는 것일까? 밥집알로를 운영하는 박종인 신부를 만나서 사연을 들어봤다.
밥집알로에서 청년들과 식사하는 박종인 신부
밥집알로에서 청년들과 식사하는 박종인 신부 ⓒ윤혜숙

박종인 신부는 기쁨나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특별시 꿈나무마을에서 아동들을 만났다. 꿈나무마을은 아동복지시설로 보육기관이다. 보호자가 없는 아동들을 만 18세 성년이 될 때까지 돌봐준다. 시설에 맡겨진 아동들에겐 꿈나무마을이 자신들의 집이고 고향인 셈이다. 그런데 아동들은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의 보호가 종료되어 퇴소해야 한다. 보호종료아동을 자립준비청년이라고 부르고 있다.

박종인 신부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 청년들을 사후 관리할 방법을 고심했다. 그러다 자립준비청년들과의 간담회 때 대다수 청년들이 혼자 밥을 먹는다는 걸 알게 됐다. 청년들에겐 보호자나 가족이 없다. 그들이 시설을 퇴소하면서 정착지원금을 받았어도, 그것으로 주로 배달 음식을 주문해서 먹거나 끼니를 거르는 등 식생활에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는 것을 고려해 보자는 생각에 이르렀고, 지금의 밥집알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밥집알로는 가정집을 빌려서 3층은 식사공간, 4층은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밥집알로는 가정집을 빌려서 3층은 식사공간, 4층은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윤혜숙

처음엔 식당을 찾아봤다. 그런데 식당이 아닌 가정집을 구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집밥이고, 집밥을 제공하려면 식당은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현재 건물의 2개 층을 사용하고 있다. 3층은 청년들이 식사를 하는 공간이고, 4층은 청년들의 휴식공간이다. 또 옥상도 있다. 옥상에선 청년들과 파티도 연다. 청년대안공간으로 밥집알로가 문을 열었다.

청년들에게 밥집알로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시설을 퇴소한 청년들은 이미 자신들끼리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었다. 양육교사들과 함께 소식을 주고받는 사이버 공간이었다. 커뮤니티를 통해서 밥집알로가 문을 연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제 12월에 접어들었으니 꼬박 일 년간 밥집알로를 운영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곤 청년들이 저녁에 이곳을 찾아온다. 특히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 때 청년들이 밥집알로를 많이 방문했다. 심지어 지방에 있는 청년들도 입소문을 듣고 이곳을 방문했다. 명절 때는 특별히 청년들에게 점심과 저녁, 두 끼의 식사를 제공했다. 청년들은 밥집알로에 와서 식사도 하고 친구들도 만난다.
후원을 받아서 청년들의 식사 준비에 필요한 식자재를 충당하고 있다.
후원을 받아서 청년들의 식사 준비에 필요한 식자재를 충당하고 있다. ⓒ윤혜숙

박종인 신부는 밥집알로를 운영하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자립준비청년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후원하고,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있어서 지금껏 순조롭게 운영하고 있다. 쌀, 김치, 고기, 과일 등을 꾸준히 보내주는 분들이 있다. 주방 옆의 방에 후원자들이 보내준 식자재가 쌓여 있다. 박종인 신부는 “자립준비청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4~5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팀을 이뤄서 청년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치찌개를 기본으로 하지만 매일 봉사자들이 달라지니 메뉴가 다양해진다. 봉사자들은 청년들에게 영양적으로 균형 있는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기자가 밥집알로를 방문한 날은 '어깨동무'라는 봉사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러 나왔다. 총 4명이 주방에서 각자 역할을 맡아 요리하고 있다. 오늘의 메뉴가 무엇인지 여쭤봤다. 오늘은 오랜만에 분식 메뉴로 김밥, 떡볶이, 어묵을 준비한다고 했다. 가끔 봉사자들 중 당일에 갑작스럽게 불참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박종인 신부, 수녀, 매니저가 주방에 투입되기 때문에 여태껏 자원봉사자의 공백으로 인해서 식사를 준비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주방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오늘의 메뉴인 김밥을 싸고 있다.
주방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오늘의 메뉴인 김밥을 싸고 있다. ⓒ윤혜숙

밥집알로를 이용하는 청년들의 반응은 어떨까? 청년들의 만족도는 최상이다. 청년들은 저녁마다 가정집에서 집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아한다.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청년은 어색해 한다. 하지만 일단 이곳에서 한 번이라도 식사를 한 청년이라면 계속 찾아온다. 청년들이 모여서 식사하다가 가끔 말다툼이 생길 때도 있었다. 문 앞에 지켜야 할 규칙을 적어 놓고 위반 시 따로 생각하는 식탁에 앉기도 한다. 
밥집알로는 청년들에게 집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건강, 심리 상태도 살펴보고 있다.
밥집알로는 청년들에게 집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건강, 심리 상태도 살펴보고 있다. ⓒ윤혜숙

밥집알로는 청년들과 함께 밥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어 가는 공간이다. 청년들은 밥을 먹는 동안 자신의 얘기를 꺼낸다. 지금 곤란을 겪고 있다면 박종인 신부가 개입해서 청년이 처한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한다.

혼자 살아가는 청년들은 그들을 돌봐줄 가족이 없다. 자칫 건강을 놓칠 수 있다. 박종인 신부는 밥집알로를 드나드는 청년들의 얼굴을 보면서 건강 및 심리상태를 살펴본다. 건강검진이나 치료, 상담이 필요하다면 병원을 방문할 것을 유도한다. 또한 자취하고 있는데 밑반찬이 필요한 청년에겐 밥집알로에서 준비한 반찬을 나눠준다.
오늘의 메뉴는 청년들이 좋아하는 김밥, 떡볶이, 어묵으로 준비했다.
오늘의 메뉴는 청년들이 좋아하는 김밥, 떡볶이, 어묵으로 준비했다. ⓒ윤혜숙

오후 6시가 가까워지자 주방에서 김밥을 마는 봉사자들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청년들이 하나둘씩 밥집알로를 찾아오는 시각이다. 내심 ‘청년들이 물밀듯 들어오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에, 초조한 마음으로 다시 주방에 가봤다. 자녀들을 위해 깁밥을 말아봤던 봉사자들은 김밥을 마는 게 재빠르고 능숙하다. 봉사자가 김밥을 한 줄씩 썰어서 쟁반에 담아내고 있었다. 

봉사자들은 저녁 준비가 끝나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박종인 신부를 비롯한 봉사자들은 청년들 틈에 섞여 앉아서 같이 식사한다. 기자도 그 사이에 앉아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경청했다. 봉사자와 청년들은 ‘2022 카타르 월드컵’ 경기를 주제로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온 사람들처럼 말이다. 
박종인 신부와 자원봉사자는 청년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박종인 신부와 자원봉사자는 청년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윤혜숙

봉사단체 '어깨동무'는 과거 서울특별시 꿈나무마을 아동들을 대상으로 미술 교육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의 인연으로 봉사활동하면서 만난 청년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밥집알로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봉사에 참여한 것도 아동에 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주부로서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듯 이곳에서 청년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어릴 적부터 봤던 아이들이 청년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또 그 청년이 취업했다는 소식을 전해줄 때면 이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말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청년들을 걱정하고, 청년들의 앞날을 기원하고 있었다.
청년들에게 밥집알로는 집이자 가족, 만남의 공간이다.
청년들에게 밥집알로는 집이자 가족, 만남의 공간이다. ⓒ윤혜숙

자립준비청년이었던 매니저는 현재 기쁨나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아동보호시설에 있을 때는 또래들과 어울려서 같이 밥을 먹었는데, 그곳을 퇴소한 뒤엔 따로 시간을 내어서 만나기도 어려웠어요. 그런데 밥집알로가 생겨서 제 또래를 만나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청년들에게 “처음 이곳에 발을 들여놓기 쉽지 않겠지만 일단 한 번만이라도 이곳을 방문해 보세요. 그러면 청년으로서 여러 가지 얻어갈 수 있는 게 많아요”라고 말한다. 

청년들은 마치 자신의 집에서 식사를 하는 듯 편안해 보였다. 바깥은 영하의 기온으로 한파가 닥쳤어도 이곳은 안락해 보인다. 그것은 비단 난방의 온기뿐만 아니라 사람들간의 온기도 작용한 덕분인 것 같다. 그들은 김밥과 떡볶이, 어묵 등을 남김없이 먹고 또 부족하다 싶으면 주방에 그릇을 들고 가 덜어와서 먹고 있다.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 “여기서 먹는 밥은 언제나 맛있어요. 그래서 늘 저녁이 기다려져요”라고 말하는 청년도 있다. 
박종인 신부는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종인 신부는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기울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윤혜숙

박종인 신부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얼마든지 기다려주겠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행복하게 살아봐라”라고 조언한다. 박 신부는 청년들이 원하는 게 있다면 최대한 지역 내 자원을 활용해서 지원해 주고 있다. 그러니 청년들이 의욕을 갖고 즐겁고 활기차게 지내길 바란다고 했다.

박종인 신부는 밥집알로를 찾아오는 청년들이 고맙다고 했다. 그들은 최소한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있고, 또래 청년들과 소통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박종인 신부는 밥집알로 안에서 그동안 연락이 끊겼던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나고, 그들의 욕구를 알아내고, 거기에 맞춰서 도움을 주는 게 밥집알로를 운영하는 목표라고 한다.
박종인 신부는 청년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이 처한 문제나 욕구를 알아내어 지원해주고 있다.
박종인 신부는 청년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이 처한 문제나 욕구를 알아내어 지원해주고 있다. ⓒ윤혜숙

박종인 신부는 시민들에게도 간곡히 당부했다. “우리 사회에 자립준비청년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세요. 소액 기부나 봉사 등 각자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을 지원해 주시면 됩니다.” 

자립준비청년들은 시설을 퇴소한 뒤 사회로 나오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완전한 자립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녹록지 않다. 그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더불어 살아가려면 주위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밥집알로와 같은 곳이 늘어나 자립준비청년들이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밥집알로

○ 주소 : 서울시 은평구 진흥로 57, 3층
○ 이용 시간 : 매주 화 - 일요일 16:30~20:30 (월요일 휴무)
누리집
○ 문의: 02-6956-0008

시민기자 윤혜숙

시와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현장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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