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옛 도서관길 걸으며, 북촌 구석구석 역사 여행

시민기자 김은주

발행일 2023.04.03. 14:02

수정일 2023.04.03. 16:38

조회 3,182

서울도서관 역사인문기행 첫 번째, '북촌 도서관 길'을 걷다

팝콘처럼 톡톡 터지듯 피어나는 봄꽃에 서울의 도심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던 어느 평일 오후, 종각역 종로타워 앞에 3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일까?
서울 인문역사기행 프로그램 <서울의 옛 도서관 길을 걷다> 첫 번째 답사인 '북촌 도서관 길을 걷다' Ⓒ김은주
서울 인문역사기행 프로그램 <서울의 옛 도서관 길을 걷다> 첫 번째 답사인 '북촌 도서관 길을 걷다' Ⓒ김은주

“서울도서관에서 도서관 옛 길을 걷는 프로그램이 열리길래 신청했어요. 제가 서울에서 오래 살았지만 이런 곳이 있었다는 걸 몰랐어요!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라 이번 답사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요.”

옆자리의 참가자가 이야기를 건넨다. 책과 서울을 사랑하는 나로서도 너무나 흥미로운 역사인문기행 프로그램이라 주저 없이 신청했던 <서울의 옛 도서관 길을 걷다>'서울도서관'이 주최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진행됐던 <서울의 옛 도서관 길을 걷다>가 호평을 받아 올해는 4회로 확대되었고 필자는 올해 3월 그 첫번째 기행인 '북촌 도서관 길'을 다녀왔다.
<서울의 옛 도서관 길을 걷다>  답사의 진행과 해설을 맡은 백창민 북헌터 대표 Ⓒ김은주
<서울의 옛 도서관 길을 걷다> 답사의 진행과 해설을 맡은 백창민 북헌터 대표 Ⓒ김은주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은 따뜻한 봄날, 들뜬 마음과 편안한 복장으로 집결 장소인 종각역 3번 출구 종로타워 앞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북헌터 대표이자 <서울의 옛 도서관 길을 걷다>의 해설가인 백찬민 강사와 함께 서울 북촌 곳곳을 걸으며 역사와 문화,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북촌 도서관 길'은 최대 4시간 이상 소요되는 꽤 긴 프로그램이다.

백창민 강사의 프로그램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와 답사 장소에 대한 대략의 설명으로 프로그램은 시작됐다. '북촌 도서관 길' 답사는 ▴탑골공원을 시작으로 ▴낙원상가 ▴서울 YMCA ▴천도교중앙대교당▴헌법재판소 ▴정독도서관 ▴현대카드 디자인라이브러리 ▴백인제가옥 ▴취운정 경성도서관 터를 지나 마지막 코스인 ▴삼청공원숲속도서관까지 약 4.8km의 거리를 함께 걷게 된다.
첫번째 답사인 '북촌 도서관 길'은 총 4.8km, 4시간 이상 소요되는 프로그램이다. Ⓒ김은주
첫번째 답사인 '북촌 도서관 길'은 총 4.8km, 4시간 이상 소요되는 프로그램이다. Ⓒ김은주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인 종로도서관 이야기, 근대 도서관을 소개했던 '서유견문(西遊見聞)'의 저자 유길준 이야기 등 평소 잘 접해 보지 못한 도서관의 역사를 만날 설렘 속에 드디어 여행이 시작됐다. 참여 인원이 많다 보니 답사 코스로 지정된 장소에서 하나하나 상세한 설명을 다 하기 어려운 공간들도 있었지만 이런 답사 프로그램이 아니고서는 들어가기 어려운 장소도 방문할 수 있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가 있었던 장안빌딩 Ⓒ김은주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가 있었던 장안빌딩 Ⓒ김은주

일제강점기 시절 ▴종로경찰서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장안빌딩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장안빌딩 앞에는 1923년 의열단원 김상옥 의사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일제 경찰에 맞서 도심 총격전을 벌였던 의거를 기념하기 위한 김상옥 의거 터 표석이 있다. 2023년은 김상옥 의사가 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현재 이곳에는 표석이 아니라면 역사적 장소였음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상업 시설이 들어서 있다.
서울 최초의 실내 수영장이 있었던 서울 YMCA Ⓒ김은주
서울 최초의 실내 수영장이 있었던 서울 YMCA Ⓒ김은주

▴서울 YMCA는 1908년 세워졌지만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67년에 재건됐다. 서울 최초의 실내 수영장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번 답사를 통해 알게 됐는데, 현재 8층은 외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호텔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서울 YMCA는 김정수 건축가가 설계했으며 서울 YMCA에서 연세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도서관이 탄생했다. 3·1운동 당시 이곳에서 학생단 활동이 많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탑골공원에 우뚝 서 있는 손병희 선생의 동상 Ⓒ김은주
탑골공원에 우뚝 서 있는 손병희 선생의 동상 Ⓒ김은주

종로의 대표적인 공원인 ▴탑골공원은 3.1만세운동의 중요한 장소다. 들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는 커다란 동상의 주인공은 손병희 선생으로 독립선언서에 제일 먼저 이름을 올린 분이기도 하다. 탑골공원은 1921년 이범승이 공원의 서쪽 부지 531평과 한옥 건물을 이용해 경성도서관을 열었던 곳으로 경성도서관은 종로도서관의 출발이 되었다. 이곳에 상업 시설이 들어서면서 종로도서관은 사직동으로 옮기게 된다.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인 낙원빌딩 Ⓒ김은주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인 낙원빌딩 Ⓒ김은주

낙원악기상가로 알려진 ▴낙원빌딩은 1967년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다. 현재도 2층과 3층은 악기상가지만 6층부터는 아파트다. 낙원빌딩은 필로티 공법으로 지어 1층은 도로를 내서 차량이 다니는 특이한 구조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아파트의 9층부터는 수직 중정이 있어 특별한 공간이 되어 준다. 많은 서울시민들은 1층이 도로인 건물에 신기해 하면서도 낙원상가에 아파트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해방 이후 건국대학교·단국대학교·국민대학교가 탄생한 서북학회 터 표석 Ⓒ김은주
해방 이후 건국대학교·단국대학교·국민대학교가 탄생한 서북학회 터 표석 Ⓒ김은주

'서북학회'는 서북·관서·해서 지역 사람들 중 독립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참여했으며 이동휘, 안창호, 박은식 선생이 주도했던 독립운동단체로, 해방 이후 건국대학교·단국대학교· 국민대학교의 산실이 됐다. ▴서북학회회관 자리는 현재 주차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당시의 서북학회회관 건물은 건국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백정교회로 불렸던 승동교회 Ⓒ김은주
백정교회로 불렸던 승동교회 Ⓒ김은주

종로의 뒷골목으로 들어가니 오래된 교회가 나타났다. ▴승동교회양반과 백정이 처음으로 함께 예배를 드린 교회라서 백정교회라고 불리기도 했다. 당시 양반만 모여 예배를 드리던 시대상을 반영해 볼 때 승동교회가 행했던 일들은 더욱 큰 의미로 다가 온다. 승동교회의 청년회장이 3.1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을 기념해 교회의 안쪽에는 3.1운동 표석이 있다. 율곡 이이가 살았던 곳으로 율곡 이이 집터의 표석도 만나볼 수 있다.
3.1만세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던 천도교중앙대교당 Ⓒ김은주
3.1만세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던 천도교중앙대교당 Ⓒ김은주

▴천도교중앙대교당은 의암 손병희의 추진으로 1921년 건립된 곳이다. 천도교는 '동학'의 바뀐 이름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출판문화운동을 주도하고 대한민국의 독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와 넓은 홀이 특징인 천도교중앙대교당의 내부 Ⓒ김은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와 넓은 홀이 특징인 천도교중앙대교당의 내부 Ⓒ김은주
세계어린이운동의 발상지를 나타내는 안내석 Ⓒ김은주
세계어린이운동의 발상지를 나타내는 안내석 Ⓒ김은주

천도교중앙대교당은 명동성당, 조선총독부 청사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경성의 3대 건축물로 꼽히는 곳이라고 한다. 방문할 때마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지만 이번 답사를 통해 내부를 관람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이국적인 건축미를 느낄 수 있는 천도교중앙대교당의 입구에는, 어린이인권운동가이자 손병희 선생의 사위인 방정환이 주도한 세계어린이운동 발상지 기념비가 있다.
국내 최대 공법 전문 도서관이 있는 헌법재판소 Ⓒ김은주
국내 최대 공법 전문 도서관이 있는 헌법재판소 Ⓒ김은주
헌법재판소 안의 천연기념물 제8호 재동 백송 Ⓒ김은주
헌법재판소 안의 천연기념물 제8호 재동 백송 Ⓒ김은주

1988년에 탄생한 ▴헌법재판소는 삼청동 길에서 그 위엄을 잘 드러내고 있는 곳으로 일반인이 들어가기 쉽지 않아 보이는 곳이다. 이곳에는 국내 최대 공법 전문 도서관이 있다. 헌법재판소 뒤편 박규수 집터에는 천연기념물 제8호인 재동 백송이 있는데 뿜어내는 자태가 멀리서도 느껴져 인상 깊었다.
양반교회라고 불렸던 안동교회와 윤보선 가옥을 감시하는 망루 역할을 했던 명문당 건물 Ⓒ김은주
양반교회라고 불렸던 안동교회와 윤보선 가옥을 감시하는 망루 역할을 했던 명문당 건물 Ⓒ김은주

▴윤보선 가옥은 사대부를 위해 지은 99칸의 고택으로 윤보선 대통령이 야당의 정치인이었을 때 야당 회의실로 이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을 감시하기 위한 망루 역할을 했던 곳이 대각선 방향에 있는 현재의 명문당 건물이다. 윤보선 가옥 앞에는 양반교회라 불렸던 안동교회가 있다. 대부분 해외 선교사들이 열었던 우리나라의 초기 교회사에서 이례적으로 조선인 양반들이 주도적으로 교회를 열었던 곳으로, 윤보선 대통령이 다녔던 교회로도 유명하다.
조선어학회 터 표석 Ⓒ김은주
조선어학회 터 표석 Ⓒ김은주

이어진 답사에서는, 주시경을 위시해 국어 연구와 발전에 기여한 조선어학회가 있었던 ▴조선어학회 터 표석, 원래는 경기고등학교 부지였으나 1977년 도서관으로 개관 이후 꾸준히 서울시민들이 즐겨 찾고 있는 ▴정독도서관, 영화 '암살'의 촬영지이자 서울시가 운영,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 아름다운 한옥인 ▴백인제 가옥 등을 둘러 보았다.

이번 답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취운정은 유길준이 서유견문에서 '서적고'라는 이름으로 근대 도서관을 처음 소개했다는 흥미로운 배경을 지니고 있었다. 2013년 삼청공원 안에 세워진 ▴삼청공원숲속도서관은 낡은 매점이 도서관으로 변신한 사례라는 것도 답사를 통해 알게 됐다.

2023년은 '옛 도서관 길'을 걸으며 역사와 문화 지식을 충전해 보자!

종로에서 가회동까지 서울의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북촌 도서관 길 기행을 통해 근대 도서관이 탄생한 장소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풍성하고 해박한 지식이 주는 재미에 빠져들 수 있었다. 이렇게 유익한 답사 프로그램이 올 한 해 계속 이어진다니 다행스럽다.

3월 진행된 북촌 도서관 길을 시작으로 4월에 진행되는 '남산 도서관 길'은 남산 중턱부터 충무로까지 도서관이 모여 있는 길을 걷고(신청마감), 9월에 열리는 '서촌 도서관 길'은 청운동부터 서촌으로 이어지는 문학의 길에서 윤동주와 이광수와 같은 문인을 만날 수 있다. 올해의 마지막 인문역사기행으로 10월에 진행되는 '대학로 도서관 길'은 혜화동과 동숭동, 명륜동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대학교 도서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참여신청은 서울도서관 누리집 프로그램 신청 페이지에서 할 수 있으며, 각각의 답사일정 3주 전 신청기간이 공지된 후 선착순으로 사전신청을 받는다. 인문학, 역사, 책, 도서관 등에 관심이 있다면 서울도서관이 진행하는 2023 서울도서관 인문역사기행에 참여해 보길 추천한다.

<서울의 옛 도서관 길을 걷다> 역사인문기행

○ 일정
- 1차 북촌 도서관 길 : 3. 24. 13:00~16:30 (종료)
- 2차 남산 도서관 길 : 4. 21. 13:00~16:30 (신청마감)
- 3차 서촌 도서관 길 : 9. 15. 13:00~16:30
- 4차 대학로 도서관 길 : 10. 27. 13:00~16:30
○ 신청 : 각 답사지별 진행 3주 전 신청 페이지 오픈
서울도서관 누리집
○ 문의 : 02-2133-0248

시민기자 김은주

서울의 가치와 매력을 글과 사진으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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