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딜리버, 사랑 듬뿍 도시락 배달왔습니다!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2.08.09. 14:55

수정일 2022.08.09. 16:16

조회 2,414

[우리동네 시민영웅] ⑬ 어려운 이웃에게 음식을 배달해주는 '청년딜리버'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취업, 결혼, 주택, 출산...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요즘 시대의 청년들.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보다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살필 줄 아는 대견한 청년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동네 시민영웅으로 소개할 인물은, 어려운 이웃에게 좋은 음식을 저렴한 비용에 배달하며 기부까지 이어가는 ‘청년딜리버’입니다. 음식과 함께 사랑까지 듬뿍 담아 배달하는 청년들을 만나보세요
청년딜리버가 킥보드를 타고 취약계층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윤혜숙
청년딜리버가 킥보드를 타고 취약계층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윤혜숙

7월 31일, 7월의 마지막 일요일이다. 수시로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다. 오후 5시가 되면서 강동구 천호역 인근에 있는 금장한식은 도시락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매주 50개 안팎의 도시락을 만든다.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선 밥과 반찬을 도시락에 넣고 포장하여 테이블에 가지런히 모으는 작업이 한창이다. 단체 도시락을 주문받은 것일까? 호기심에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청년딜리버 박혜영 씨가 일요일 오후 6시부터 전화로 주문을 접수하고 있다. ⓒ윤혜숙
청년딜리버 박혜영 씨가 일요일 오후 6시부터 전화로 주문을 접수하고 있다. ⓒ윤혜숙

오후 6시가 가까워지자 금장한식에 청년들이 여럿 들어왔다. 한 청년이 테이블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연신 울리는 휴대전화로 주문을 받기 시작한다. 나머지 청년들은 배달을 하려는 듯 배달 가방을 하나씩 들고 있다.

찌개류, 볶음류 등 전화주문 손님들의 취향에 맞춰 곧바로 주방에서 조리를 시작한다. 이 식당은 특별한 점이 있었다. 주요리의 가격이 7,000원인데 매주 일요일 오후 6시부터 2시간 동안 2,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청년이 전화로 주문을 받고 청년이 도시락을 배달한다. 그 청년들을 ’청년딜리버’라고 부르고 있었다.

인근 고시원에 배달하러 가는 청년 고한빈 씨를 따라가 봤다. 청년들은 가까운 곳이라면 걸어서, 먼 곳이라면 킥보드를 타고 도시락을 배달한다. 헬멧을 쓴 고한빈 씨가 킥보드를 타고 목적지로 향한다. 부슬부슬 비가 내려서 우산을 써야 할지 애매하다. 배달하는 청년들은 비가 많이 내려서 옷이 젖을 것 같으면 우비를 쓰고 배달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요일 오후 6시면 그들은 도시락을 배달한다.
전화로 주문을 받자 금장한식 주방에서 조리를 시작한다. ⓒ윤혜숙
전화로 주문을 받자 금장한식 주방에서 조리를 시작한다. ⓒ윤혜숙

청년딜리버 고한빈 씨가 고시원에 도착한 뒤 입구에서 전화하자 “2층으로 와주세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고한빈 씨는 배달 가방에서 음식을 꺼내어 전달하고 현금을 받았다. “7,000원 하는 음식을 2,000원에 저렴하게 먹을 수 있으니 한꺼번에 2, 3개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요”라고 말한다. 

2,000원이라고 해서 음식의 맛과 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왜 2,000원일까? 고한빈 씨는 “한 끼 식사를 고민해야 하는 분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드리고 싶지만, 그분들이 자신의 돈으로 사서 먹는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끔 최소한의 돈을 받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청년딜리버 고한빈 씨가 도시락을 포장하고 있다. ⓒ윤혜숙
청년딜리버 고한빈 씨가 도시락을 포장하고 있다. ⓒ윤혜숙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청년들로 구성된 청년딜리버는 강동구 관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2,000원을 받고 음식을 배달해주고 있다.

작년 4월에 고한빈 씨를 비롯한 5명의 청년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고심했다. “이 사회의 어려운 분들을 위해 우리가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각자의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거기서 취약계층을 위해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배달해 드리자는 의견으로 모였다.

그런데 홍보가 문제였다. 1인 중장년층이 거주하는 고시원을 찾아가서 홍보 전단을 붙이겠다고 했더니 의심하는 주인도 많았다. 선뜻 응해주신 분이 있어서 고시원 게시판에 전단을 붙여뒀건만 처음 한 달 간은 주문 전화가 한 통도 없었다.
청년딜리버 고한빈 씨가 배달가방에 도시락을 넣고 있다. ⓒ윤혜숙
청년딜리버 고한빈 씨가 배달가방에 도시락을 넣고 있다. ⓒ윤혜숙

주변에 선호도가 높은 한식 전문음식점을 물색했다. 금장한식을 방문해서 청년딜리버의 취지를 설명하고 도시락을 주문하겠다고 하니 “청년들이 좋은 일을 하니까 우리가 1,000원 할인된 가격으로 음식을 제공할게요”라고 제의했다. 하지만 청년딜리버가 하는 일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측면도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정중히 사양했다고 한다.

처음에 청년 5명으로 출발했는데 지금 청년딜리버 단톡방에는 30명이 모여 있다. 매주 일요일 6시부터 8시까지 도시락을 배달한다. 임의로 순번을 정하지 않았고 시간이 나는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참여하는 청년들은 매주 바뀌어도 늘 5, 6명의 청년이 배달하고 있다.

청년들은 각자의 생계 수단이 있다. 고한빈 씨도 학원에서 수학강사로 일하고 있다. 초반에 청년들이 매월 10만원씩 내어서 자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지금은 지역 내 청년딜리버의 활동이 많이 알려지면서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늘어났다. 청년딜리버는 매달 도시락을 판매한 돈에서 20만 원을 적립하여 취약계층 자녀의 장학금으로 전달하고 있다.
자신들의 재난지원금을 기부한 소상공인 부부의 문자 ⓒ청년딜리버
자신들의 재난지원금을 기부한 소상공인 부부의 문자 ⓒ청년딜리버

최근엔 소상공인 부부가 자신들이 받은 재난지원금을 청년딜리버에 기부하기도 했다. 안경원을 운영하는 남편과 미용실을 운영하는 부인이 재난지원금을 합쳐서 필요한 이웃에게 써 달라며 기부했다. 고한빈 씨가 인터뷰를 하면서 기자에게 그 문자를 보여줬다. 코로나19로 인해 손님이 줄어서 안경원과 미용실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의 선행을 알게 된 점주가 자신이 받은 돈을 기꺼이 내놓았다.

고한빈 씨는 “이렇게 저희를 응원하고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 일을 끝까지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라고 포부를 밝힌다.

청년딜리버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코로나19로 많은 분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잖아요. 제가 근무하는 학원도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게 되면서 수강생들이 많이 줄었어요. 그런데 저보다 더 힘드신 분들은 끼니를 해결하기도 어려울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면서 “주위의 청년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니 그럼 우리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면서 제 말에 적극 공감하고 동참해줬어요”라면서 또래 청년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어려운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기 위해 평범한 청년들이 모여 딜리버로 활동하고 있다. ⓒ윤혜숙
어려운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기 위해 평범한 청년들이 모여 딜리버로 활동하고 있다. ⓒ윤혜숙

청년딜리버로 참여하는 강지은 씨는 올해 대학교 4학년이다. 한창 스펙을 쌓아야 할 시기인데 청년딜리버로 활동하고 있었다. 고한빈 씨가 근무하는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청년 딜리버의 활동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예상외로 많은 청년들이 이 일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제가 배달한 도시락을 전해드릴 때마다 도시락을 받는 분들이 호의적으로 대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이 일을 시작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그런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해요”라고 말한다.

고한빈 씨는 “우리나라는 GDP가 세계 10위권에 드는 선진국입니다. 하지만 제 주위의 많은 분들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해요. 여전히 끼니를 걱정하면서 살아가는 분들이 계십니다”라면서 “주위의 취약계층을 보듬어 안고 그분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미약하지만 저희가 이 일을 시작한 겁니다”라고 말한다. 
청년딜리버는 도시락으로 맛난 음식과 사랑을 함께 배달하고 있다. ⓒ윤혜숙
청년딜리버는 도시락으로 맛난 음식과 사랑을 함께 배달하고 있다. ⓒ윤혜숙

정부와 지자체에서 청년들을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만큼 이 시대의 청년들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자신의 안위보다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살펴보고 도움을 주기 위해 애쓰는 청년들도 있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여전히 밝고 훈훈하다. 그들은 도시락으로 사랑을 배달하고 있다.

시민기자 윤혜숙

시와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현장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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