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숲 한복판에 이런 곳이? '용산역사박물관' 개관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22.04.06. 10:21

수정일 2022.04.06. 17:10

조회 915

지난 3월 23일 개관한 용산역사박물관 전경
지난 3월 23일 개관한 용산역사박물관 전경 ⓒ박분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울 용산의 발자취를 담은 용산역사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지상 2층, 연면적 227㎡ 규모로 근현대 용산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4,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한 지역의 역사전문박물관이다.

용산역사박물관의 전신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용산철도병원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철도병원이 드문 상황에서 용산철도병원 본관은 역사적 사료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벽돌을 재료로 한 고전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절제된 장식과 유려한 곡선 등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용산철도병원 출입문에 유일하게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가 화사하게 복원된 모습  
용산철도병원 출입문에 유일하게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가 화사하게 복원된 모습 ⓒ박분 

박물관으로 들어서면 기다란 복도와 둥근 아치형태의 기둥, 출입문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가치를 최대한 살린 결과물이다. 특히 출입문에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는 1928년 준공 당시 용산철도병원 본관의 현관문에 유일하게 설치된 것으로 파손된 부분을 보수해 원형을 보존했다.
역동적인 용산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 ‘천의 얼굴’
역동적인 용산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 ‘천의 얼굴’ ⓒ박분

‘하늘에는 전투기가 뜨고, 기차는 철길을 달리고, 한강에는 나룻배가 노젓는다’ 
박물관 첫 코너에 들어서면 마주하는 내용이다. 네온사인이 반짝이는가 하면 폭격을 맞는 장면도 보인다. 고층빌딩 사이로 정중앙에 N서울타워가 보이는 이 작품은 ‘천의 얼굴 용산’이다. 작품명과 걸맞게 100년에 걸친 역동적인 용산의 모습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전시를 미리 보듯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상설전시는 ▲용산에 모이다 ▲용산에서 흩어지다 ▲용산으로 이어지다 ▲용산에서 하나 되다 총 4개 주제로 기획돼 용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준다. 한양의 길목에 자리한 물류 중심에서 일제의 대륙 침략의 발판이 되는 철도 기지로서, 한국전쟁 이후 군사기지를 거쳐 서울의 중심지구로 성장하는 동안 한국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겪는 용산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뱃길의 중심이었던 경강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친 경강상인들의 모습
조선시대 뱃길의 중심이었던 경강에서 활동을 펼친 경강상인들의 모습 ⓒ박분

용산은 일찍이 전국의 조운선(나라에 세로 바치는 곡식을 운반하는 배)이 밀려드는 포구로 발전했다. 조선을 움직인 거상, 경강상인의 이야기도 소개하고 있다. 18세기 수상교통이 발달하면서 뱃길의 중심이었던 경강(뚝섬에서 양화나루에 이르는 한강 일대를 이르던 말)은 상권이 크게 성장했다. 

마포, 서강, 용산 등 경강 일대에서도 특히 용산은 세곡운송에 특화된 지역이었다. 토착민들은 세곡을 운반하는 일에 종사하며 큰 이윤을 남겼고, 이를 바탕으로 각종 상업활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경강상인’이라 불리며 조선의 시장경제를 쥐락펴락했다.
용산 철도의 역사를 전시된 사진과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용산 철도의 역사를 전시된 사진과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박분
디지털기술을 접목한 영상으로도 철도를 만나볼 수 있다
디지털기술을 접목한 영상으로도 철도를 만나볼 수 있다 ⓒ박분

일제가 침략전쟁 때마다 대규모 병력의 ‘출정’과 ‘귀환’을 반복했던 곳, 무수히 많은 조선인 청년들이 징병·징용으로 머나먼 이역에 끌려가야 했던 강제동원의 출발지인 용산역도 전시공간에 재현했다. 철도와 관련된 근대 시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용산은 철도 교통의 요지로 철도 시설들이 밀집해 있던 곳이었다. 일례로 철도차량을 수리하던 철도공장과 철도 종사원 양성기관으로 처음 지어졌지만, 여러 과정을 거치며 지금의 용산철도고등학교로 변화했다. 

바닥에 전시된 기차 철로와 당시 사용한 승차권, 수하물표도 보인다. 일제 강점기 수탈의 수단이기도 했던 용산 철도의 역사를 전시된 사진과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기술을 접목한 영상으로도 철도를 만나볼 수 있다. 철도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슬픔과 좌절을 안겨주었지만  감격의 순간도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최초로 고유명사 이름이 붙은 '급행열차 융희호'와 한국인의 기술로 만든 급행열차 '조선해방자호'를 탄생시켰을 때이다. 기적을 울리며 달리는 두 열차의 모습에서 벅찬 감동이 전해지는 듯했다. 융희는 대한제국 연호에서 따온 명칭이다.
독립운동가와 효창공원
독립운동가와 효창공원 ⓒ박분

일제는 조선의 왕실묘원에도 손을 뻗쳤다. 효창원을 훼손해 그들의 주둔지로 이용하면서 공원화 했다. 왕실묘원을 공원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효창공원은 조선시대 왕실묘원인 효창원(孝昌園)이 그 효시이다. 역사적 수난 속에서도 용산에 자리한 효창공원은 굳건히 지켜졌다. 현재 효창공원에는 백범 김구의 묘소를 비롯해 삼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 묘소와 임정 요인(이동녕, 차이석, 조성환)의 묘소,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삼의사 묘역에 조성되었다. 효창공원은 이제 독립운동가들이 편히 잠든 묘소이자 숭고한 정신이 깃든 성지로 자리 잡았다.
전시공간에 꾸민 해방촌, 해방과 더불어 만나 ‘해방촌’이라는 마을이름을 얻게 됐다
전시공간에 꾸민 해방촌, 해방과 더불어 만나 ‘해방촌’이라는 마을이름을 얻게 됐다 ⓒ박분
해방촌을 무대로 설정한 당시의 영화들
해방촌을 무대로 설정한 당시의 영화들 ⓒ박분
미군 주둔으로 영어 간판 일색인 용산 일대 거리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미군 주둔으로 영어 간판 일색인 용산 일대 거리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박분

한국 현대사를 담은 해방촌과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주둔하면서 영어 간판 일색인 거리 풍경 등 변화의 물결이 일던 용산의 다양한 모습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해방촌은 일제로부터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던 중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와 월남한 사람들, 피난 온 실향민들이 남산 아래 판자촌을 이루게 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해방과 더불어 만나 의지해 살면서 독특한 ‘해방촌’이라는 마을이름도 얻게 됐다. 해방촌은 소설과 영화 등 작품 속에도 곧잘 등장해 ‘박서방’과 ‘혈맥’, ‘오발탄’ 등의 작품을 낳기도 했다. 신문지로 도배한 쪽방도 보인다. 어려운 시절을 해방촌에서 보낸 주민의 육성 증언도 인터뷰 영상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상량문에 해당하는 동찰(오른쪽) 타일로 마감된 외과처치실 모습
상량문에 해당하는 동찰(오른쪽)과 타일로 마감된 외과 처치실 모습 ⓒ박분
용산철도병원에서 사용했던 의료용 도구들
용산철도병원에서 사용했던 의료용 도구들 ⓒ박분
용산철도병원에서 사용하던 건축부재와 시설을 전시공간에 재배치한 모습
용산철도병원에서 사용하던 건축부재와 시설물도 전시되고 있다. ⓒ박분

용산철도병원의 의료에 대해서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용산역사박물관의 전신인 용산철도병원은 철도종사원과 그 가족들의 치료를 위해 세워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도시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고에 대처한 지역의 거점 병원이었다. 산업재해, 화재, 교통사고 등의 일반 환자들도 철도병원에서 치료를 받곤 했다. 1926~1928년 진료내역을 살펴보면 철도관련 입원환자보다 외래환자가 월등히 많았다. 

또한 전염병 예방접종을 실시했고 전염병환자를 수용하고 치료하는 등 지역의 질병과 재해에 적극 대처한 병원이었다. 사고로 인한 외상 환자가 많은 철도병원 특성상 외과가 병원 출입구에서 가깝게 배치되어 응급환자 이송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했다.

연두빛 타일 바닥이 시선을 끄는 곳은 철도병원 외과 처치실이다. 벽체 하단부와 바닥이 온통 타일로 마감돼 있어 차가운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고스란히 드러난 타일바닥이 당시 외과 처치실의 모습을 짐작케도 한다. 외과 처치실은 당시 수술실 기능을 했던 곳이다. 실제 사용했던 의료용 도구와 물품들을 배치해 용산철도병원 외과 처치실을 재현한 공간으로 박물관 전시공간 중 가장 핵심공간으로 꼽힌다. 당시 수술실로 사용했기 때문에 외과 처치실은 리모델링 작업 시, 타일로 된 벽과 바닥을 원형 그대로 보존 복원했다고 한다. ‘응급환자의 처치 및 수술이 이뤄지는 특수성을 감안해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타일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진열함에는 용산철도병원에서 사용했던 유리 재질의 주사기와 수술도구, 청진기 등 낡은 의료기들이 전시돼 있다. 건물의 상량문에 해당하는 동찰과 약국 창문, 라디에이터 등 용산철도병원을 복원 정비하던 중 현장에서 찾아낸 물품도 보인다. 병원 천장에서 발견된 동찰에는 건물의 건축 날짜와 설계자, 시공업체 등 일제가 기록한 건물의 역사가 담겨 있다.
전시장에 꾸민 얼음보관창고 모습
전시장에 꾸민 얼음보관창고 모습 ⓒ박분
흥미로운 체험코너도 준비돼 있다
흥미로운 체험코너도 준비돼 있다 ⓒ박분

“빙고(氷庫)는 조선시대 얼음을 채취해 저장하고 지급하는 일을 맡은 관청이다. 궁중 부엌에서 사용하거나 벼슬아치에게 배급할 얼음을 서빙고에서 관리했다. 서빙고 얼음은 그림의 떡이었다” 겨울날 꽁꽁 얼어붙은 한강 얼음판에서 채취한 얼음을 관리한 서빙고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시 빙고에 저장할 얼음 한 덩이 1정(丁)의 무게는 18.75㎏였다. 지금은 용산구의 지명으로만 남은 ‘서빙고’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얼음 들어보기 체험 코너도 한쪽에 마련했다. 몇몇 코너는 직접 체험도 가능하다. 조선시대 세곡(나라에 세금으로 내는 곡식)을 실어 나르던 배 '조운선'으로 세곡 운반하기, 수상한 쌀가마 찾기 등 1층 복도를 따라 흥미로운 체험코너도 준비돼 있다.
책을 보거나 쉬어갈 수 있는 박물관 2층에 자리한 다목적실
책을 보거나 쉬어갈 수 있는 박물관 2층 다목적실 ⓒ박분
용산의 다양한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는 ‘아카이브 미디어월’
용산의 다양한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는 ‘아카이브 미디어월’ ⓒ박분
박물관 옥상 정원에서 바라본 용산 일대 풍경, 위풍당당하게 늘어선 고층빌딩 사이로 용산역이 보인다
박물관 옥상 정원에서 바라본 용산 일대 풍경, 위풍당당하게 늘어선 고층빌딩 사이로 용산역이 보인다 ⓒ박분

2층 교육실 옆에는 책을 보거나 쉬어갈 수 있는 다목적실이 있어 관람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으며, 용산과 관련한 다양한 수집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아카이브 미디어월’도 마련돼 있다. 

박물관 3층은 옥상 정원이다. 위풍당당하게 늘어선 고층빌딩 사이로 용산역이 보인다. 박물관 바로 옆 건물은 용산철도고등학교 건물이다. 용산이 철도의 본고장임을 상기시키는 듯 보였다.

박물관 개관 특별전 ‘용산 도시를 살리다- 철도 그리고 철도병원 이야기’는 역동적으로 변화해 온 용산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9월18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용산역사박물관

○ 주소 :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14길 35-29
○ 관람시간 : 10:00~18:00(관람종료시간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매년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 관람료 : 무료
홈페이지
○ 문의 : 02-2199-4621

시민기자 박분

현장감 있는 생생한 기사를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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