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과 인왕산에서 도심 속 무릉도원을 만나다

시민기자 강순자

발행일 2021.11.11. 11:04

수정일 2021.11.11. 13:33

조회 967

조선시대 풍류를 즐기던 옛 선비와 시대를 대변한 시인을 만나는 여정
종로 부암동에 위치한 전통문화 공간, 무계원의 가을 풍경 ⓒ강순자
종로 부암동에 위치한 전통문화 공간, 무계원의 가을 풍경 ⓒ강순자

문학과 예술이 숨 쉬는 부암동

가을의 끝자락, 한양도성 둘레길에 위치한 인왕산과 그 주변을 산책했다. 인왕산에 오르는 방법은 다양한데 필자는 창의문 옆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을 방문한 후 인왕산 정상, 무계원, 목인박물관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윤동주문학관은 규모는 작지만 실제 윤동주가 종로 누상동 김송의 하숙집에 기거하면서 인왕산에 올랐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 매력적이다. 일제식민지 청년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제3전시실의 영상이 특히 감동적이다. 물탱크 원형을 그대로 보존해 만든 차가운 시멘트 전시장이라서인지 영상을 보는 내내 당시 어렵고 막막했던 윤동주를 실제 만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의 고뇌를 상징하는 듯한 시멘트 벽과 윤동주문학관 입간판 ⓒ강순자
시인의 고뇌를 상징하는 듯한 시멘트 벽과 윤동주문학관 입간판 ⓒ강순자

먼저 시인의 일상과 시 세계에 대한 영상을 보고 제1전시실(시인채)을 관람하면 좋을 것 같다. 시인채에는 ‘인간 윤동주’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사진자료와 친필원고 영인본이 전시돼 있다. 윤동주 시인의 필적은 지금봐도 시대적 격차를 모를 정도로 멋진 손 글씨였다. 천재는 시대를 앞서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관을 나와 인왕산 방향으로 향한다. 이미 산은 노랑, 빨강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고 그 풍경에 한 계단 한 계단 가까이 갈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중간쯤 오르니 노란 소국이 바람에 흔들려 향긋한 향기가 전해졌다.
인왕산 호랑이 동상, 조선시대 인왕산은 호랑이가 많이 살 정도로 산이 우거지고 산세가 험했다고 한다. ⓒ강순자
인왕산 호랑이 동상, 조선시대 인왕산은 호랑이가 많이 살 정도로 산이 우거지고 산세가 험했다고 한다. ⓒ강순자

가파른 길을 오르니 산 건너로 북악산과 한양도성 성관이 이어진다. 성곽 틈새로 내다보는 돌로 만든 성물들도 재미있다. 그 사이로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인왕산하면 ‘인왕산 호랑이’와 조선시대 화가들이 화폭에 담은 몽유도원도(안견), 인왕산도(강희언), 인왕제색도(정선)가 떠오른다. 하얀 바위와 굵은 붓으로 그려 낸 인왕산, 그 산에 오르니 산의 위엄이 더욱 느껴졌다. 
성곽을 따라 길을 걷다보면 수도 서울을 둘러싼 관악산, 남산, 북악산, 북한산, 인왕산, 안산이 연결된다. ⓒ강순자
성곽을 따라 길을 걷다보면 수도 서울을 둘러싼 관악산, 남산, 북악산, 북한산, 인왕산, 안산이 연결된다. ⓒ강순자

하산은 윤동주 시인의 언덕길로 내려왔다. 작은 거리에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빵집과 음식점, 카페가 줄지어 서 있다. 부암동주민센터 앞 은행나무는 바람결에 부르르 금빛 낙엽을 떨구며 환상적인 가을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길을 지나던 사람들도 멈춰서 사진을 찍거나 주민센터 앞 벤치에 앉아 가을을 만끽했다. 
부암동주민센터 앞 노란 은행잎이 바람결에 흩날리며 아름다운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한다. ⓒ강순자
부암동주민센터 앞 노란 은행잎이 바람결에 흩날리며 아름다운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한다. ⓒ강순자

자하문 입구 길가의 조그마한 집들의 소박함이 눈길을 끈다. 요새는 볼 수 없는 제비꽃 다방, 신비감을 불러 일으키는 묘한 빵집, 우육면을 먹기 위해 조그만 가게 앞에 줄을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청춘들이 풍경 속에 서 있다. 

도심 속 무릉도원을 즐겼던 안평대군과 무계원

부암동주민센터 뒤쪽을 걸어보았다. 늘 버스로 스쳐가던 곳인데 이정표를 보니 많은 곳이 있음을 짐작케 했다. 무계원사 길로 접어들면 높은 언덕길을 따라 도심 속 무릉도원을 즐기던 옛 선비 안평대군을 만날 수 있는 무계원사지가 나온다. 
부암동주민센터와 그 주변 이정표는 곳곳에 볼거리가 많음을 짐작케 한다. ⓒ강순자
부암동주민센터와 그 주변 이정표는 곳곳에 볼거리가 많음을 짐작케 한다. ⓒ강순자

무계원 건물은 2010년 종로 익선동에 있었던 서울시 등록음식점 1호 ‘오진암’의 건물 자재를 사용해 지어졌다. 무계원의 대문을 비롯해 기와, 서까래, 기둥 등에서 100년의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이유다. 조선 말기 서화가 이병직의 집이기도 했던 오진암은 1910년대 초 대표적인 상업용 도시한옥으로서 보존가치가 뛰어날 뿐 아니라, 남북 냉전체제를 대화국면으로 이끈 7.4 남북공동성명을 도출해낸 역사적인 장소였다. 무계원이 위치한 무계정사지는 안평대군의 꿈 속 도원과 흡사해 화가 안견에게 3일 만에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하고 정자를 지어 시를 읊으며 활을 쏘았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무계원은 무계정사지로 안평대군이 꿈에 본 도원을 이룬 곳이라 할 수 있다. 무계원 안채 모습 ⓒ강순자
무계원은 무계정사지로 안평대군이 꿈에 본 도원을 이룬 곳이라 할 수 있다. 무계원 안채 모습 ⓒ강순자

현재 전통문화 공간인 무계원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는 세미나, 강연, 회의실로 활용되고 안채마루, 안마당, 뒷마당 등 부대시설에선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필자가 방문한 날엔 ‘시화’ 전시가 있어 방안에 들어가 글들을 감상했다. 
안평대군이 꿈을 꾼 도원을 화가 안견이 상상해  3일 만에 그렸다는 몽유도원도 ⓒ강순자
안평대군이 꿈을 꾼 도원을 화가 안견이 상상해 3일 만에 그렸다는 몽유도원도 ⓒ강순자

역사 책에서 쉽게 만나는 안평대군의 글씨와 몽유도원도, 정확하고 규칙적인 박팽년의 글씨, 빠르고 힘찬 느낌의 김종서의 글씨, 가지런하고 단아한 신숙주와 유연한 성산문의 글씨 등 선비들의 모습을 꼭 닮은 듯한 친필이었다. 사람의 필체에는 그 사람의 성격과 인품이 숨어 있다고 하는데 선비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글을 감상하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성산문의 수필 서체가 넉넉하고 아름답다. ⓒ강순자
성산문의 수필 서체가 넉넉하고 아름답다. ⓒ강순자

잠시 툇마루에 앉아 안뜰을 바라보니 조용한 한옥에서의 느긋한 여유가 느껴졌다. 정갈한 한옥과 넉넉한 사랑채 뒷마당 은행나무 아래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산책을 온 시민들의 모습이 가을빛처럼 평화로웠다. 
암석 위에 지은 집이 자연과 사람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 같은 풍경이다. ⓒ강순자
암석 위에 지은 집이 자연과 사람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 같은 풍경이다. ⓒ강순자

무계원 골목으로 고바위 언덕을 걷다보니 이색적인 풍경이 시선을 끈다. 암석 위에 집터가 자리 잡아 자연이 집을 품어주는 듯한 형상이다. 한걸음 내딛고 다시 뒤돌아보며 감탄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새 소리와 고요한 풍경이 머무는 주택가에는 까치가 날아와 두어 개 매달린 감을 쪼아먹으며 꽁지짓을 하는, 서울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진다. 
푸른 하늘과 붉은 단풍이 어우러진 주택가의 풍경 ⓒ강순자
푸른 하늘과 붉은 단풍이 어우러진 주택가의 풍경 ⓒ강순자

하늘 가까운 성곽 아래 목인박물관 ‘목석원’

대부분 무계원까지만 보고 가는데 산 정상 가까운 곳에 위치한 목인박물관에 들러 차를 마시고 병풍처럼 펼쳐지는 풍광을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목인박물관 야외전시장은 인왕산, 한양도성과 맞닿아 있는데, 민불, 무인석, 문인석, 동자석 같은 한국의 대표 석물들이 전시돼 있다. 푸른 하늘과 신비로운 백송이 어우러져 석상이 더 돋보였다. 테마존과 편백나무 옥탑장, 전망대, 멍 때리는 터 등 휴식을 즐기기에도 좋다. 석양을 감상하는 핫플레이스인 목인박물관은 일부 야간개장도 하니 전화로 문의해보자. 
목인박물관 목석원 야외전시장, 차를 마시며 풍광을 감상하며 쉬어가기에 좋다. ⓒ강순자
목인박물관 목석원 야외전시장, 차를 마시며 풍광을 감상하며 쉬어가기에 좋다. ⓒ강순자
백송과 아직 형태가 만들지지 않은 석상이 인상적이다. ⓒ강순자
백송과 아직 형태가 만들지지 않은 석상이 인상적이다. ⓒ강순자

하산 길, 작은 골목에 멋진 한옥이 보인다. 문화재나 보존주택은 아니지만 산의 지형에 따라 바위 위에 높게 지어진 한옥의 풍광에 빠져 한참을 구경했다. 이 지역에 오래 살았다는 한 할머니는 “이 동네가 오래 전에는 길도 없어서 참 고생스러웠다”고 말했다. 무계원사길 왼쪽으로 할머니가 사는 또 다른 마을이 있다고도 해 다음을 기약해본다. 서울의 비경 중 백미를 만나고 싶다면 특별한 준비없이 운동화만 챙겨 신고 부암동과 인왕산을 가볍게 걸어보자. 
하산길에 소나무와 한옥이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내는 반계 윤응렬 별장도 만난다. ⓒ강순자
하산길에 소나무와 한옥이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내는 반계 윤응렬 별장도 만난다. ⓒ강순자

윤동주문학관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19
○ 가는법 : 3호선 경복궁역 3번출구,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에서 버스(1020, 7022, 7212) 이용, 자하문고개, 운동주문학관 정류장 하차
○ 운영시간 : 화~일요일 10:00~18:00, 월요일 휴관
○ 입장료 : 무료
○ 문의 : 02-2148-4175

무계원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5가길 2 
○ 운영시간 : 화~일요일 09:00~18:00, 월요일 휴관
○ 입장료 : 무료
○ 문의 : 02-379-7131~2 

목인박물관 목석원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5길 46-1
○ 운영시간 : 화~일요일10:30~18:00, 월요일 휴관
○ 입장료 : 성인 1만원(무료 음료 제공), 청소년 7,000원, 36개월~초등학생 5,000원
○ 홈페이지 : www.mokinmuseum.com
○ 문의: 02-722-5055

시민기자 강순자

성숙한 시민이 추구하는 즐거움과 문화적 미학이 있는 곳을 찾아서 발로 뛰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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