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싶은 삼양로, 유해업소 대신 '청년가게'가 쏙쏙!

시민기자 박은영

발행일 2021.10.22. 14:19

수정일 2021.10.25. 13:24

조회 1,682

성북구 ‘길음청년창업거리’ 조성으로 거리 활성화 기대

어두워진 길음동 거리에 한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밝고 아늑한 분위기다. 그곳에 가면 음식으로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매장에는 덮밥 종류와 고로케 메뉴가 전부였다. 잊고 지내던 이 식당이 다시 눈에 늘어온 것은 그곳이 ‘청년 창업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성북구 길음역부터 미아초등학교까지 800m 구간에 '길음청년창업거리'가 있다.
성북구 길음역부터 미아초등학교까지 800m 구간에 '길음청년창업거리'가 있다. ⓒ박은영

성북구 길음동 삼양로에 특별한 거리가 있다. 길음역에서 미아초등학교로 이어지는 약 800m에 달하는 ‘청년 창업거리’다. 성북구는 2018년부터 이 일대에 청년 창업거리 조성하기 시작했다. 양측 보도블록은 물론 가로등과 가로수를 교체하고, 한쪽 길을 아기자기한 벤치로 꾸몄다. 단장을 마친 청년 창업거리에 들어선 청년 가게들에는 창업과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이 거리에는 보도블록 교체와 안전펜스 설치는 물론 쉬어갈 벤치들도 마련됐다.
이 거리에는 보도블록 교체와 안전펜스 설치는 물론 쉬어갈 벤치들도 마련됐다. ⓒ박은영

이 거리의 변화가 특별한 것은 이 곳이 불법유해업소가 밀집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성북구에 살고 있는 필자는 이 거리의 묘한 분위기를 모르지 않다. 불법유해업소 자리에 또 다른 유해업소가 들어서는 악순환이 계속되던 곳이다. 이를 알기에 이러한 변화가 무엇보다 반가웠다. 성북구는 37개에 달하던 맥주양주집 가운데 20곳의 폐업을 유도했다. 

불법업소가 문을 닫은 빈 자리에는 청년가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성북구는 청년들의 창업 공간이 들어설 수 있도록 공간 임대료와 점포 개선비 등을 지원하고, 아울러 창업 컨설팅과 교육까지 진행하며 삼양로 일대를 더 머물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공간으로 바꿔가고 있다. 현재 식당, 서점, 전시장 등 청년 가게 6곳이 운영 중이다.
청년가게임을 알리는 현판이 부착되어 있다.
청년가게임을 알리는 현판이 부착되어 있다. ⓒ박은영

청년 창업거리는 길음역 7번 출구에서 시작한다. 살짝 경사진 도로변을 걸어서 오르면 ‘청년가게 길음 청년 창업거리’라는 아기자기한 표지판을 볼 수 있다.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덮밥집도 그 중 하나다. 바로 옆에는 ‘세화영어서점’이 위치하는데 역시 청년가게다. 

영어 간판의 세화영어서점은 삼양로 청년 창업가게 4호점이다. 최신 해외도서부터 사회, 문학, 어린이 그림책까지 다양한 원서들을 만날 수 있다. 서점 한가운데에는 테이블과 소파가 있어 잠시 앉아 쉬거나 책을 읽을 수 있다. 턴테이블이나 브라운관 TV도 있어 주말에는 이 TV로 영화 모임도 가진다. 참여를 원하면 세화영어서점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sehwa.eb/)을 참고하면 된다.
청년가게 '세화영어서점'은 서적 판매와 함께 북클럽, 영화 모임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연다.
청년가게 '세화영어서점'은 서적 판매와 함께 북클럽, 영화 모임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연다. ⓒ박은영

지난해 문을 연 ‘청년공간 길: 이음’은 창업청년을 대상으로 창업교육과 컨설팅 등을 지원하는 공간이다. 2019년엔 청년창업가, 예술가, 주민들이 수공예품·중고물품·먹거리 등을 사고파는 ‘두근두근 별길마켓’ 행사를 열어 거리 활성화를 도모했다.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세가 가라앉는 시점에 2회 별길 마켓을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복합문화공간 '청년공간 길: 이음'은 창업교육과 컨설팅, 대관 등을 지원한다.
복합문화공간 '청년공간 길: 이음'은 창업교육과 컨설팅, 대관 등을 지원한다. ⓒ박은영

청년공간을 지나 조금 더 걸어보았다. 아직 공사 중인 곳도 있고,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것 같은 가게도 보였다. 조금 더 걸어 정통 일본덮밥을 파는 청년가게 1호점 ‘낭만덮밥’을 발견했다. 그 옆에서 떡볶이를 파는 청년가게 ‘떡볶당’이 나란히 자리했다. 창업거리에 개업한 가게들은 그 존재만으로 거리의 공기를 활기차게 하는 것 같았다. 
일본식덮밥을 메인으로 하는 청년가게 1호점 '낭만덮밥'
일본식덮밥을 메인으로 하는 청년가게 1호점'낭만덮밥' ⓒ박은영
청년창업거리에 새로 개업한 '떡볶당'
청년창업거리에 새로 개업한 '떡볶당' ⓒ박은영

지난 9월에는 기분 좋은 소식도 들려왔다. 청년 창업거리에서 안정을 찾은 식당이 도시락으로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한술식당’의 정태환(27)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길음역 인근에 있는 임시선별검사소를 방문해 코로나19 확산세로 연일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는 의료진과 관계자에게 도시락을 전달했다. 

도시락 기부를 한 정 대표는 “청년들에게 창업 공간을 지원하고 주민들에게 청년 가게를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등 성북구에서 꾸준히 신경 쓴 덕분에 생애 처음으로 창업한 식당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성북구에서 받았던 혜택을 지역 사회에 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선한 영향력은 바로 이러한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청년가게 '한술식당'은 한식 퓨전요리 덮밥집으로 배달 주문도 많다.
청년가게 '한술식당'은 한식 퓨전요리 덮밥집으로 배달 주문도 많다. ⓒ박은영
한술식당은 의료인들에게 도시락 봉사를 하며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술식당은 의료인들에게 도시락 봉사를 하며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박은영

삼양로뿐 아니라 강동구 성내동에도 비슷한 취지의 청년창업 거리가 조성돼 있다. 강동구청은 ‘변종카페’라 불리는 유해업소가 많은 지역에 청년창업 공간이 들어서도록 지원했는데, 사업 시작 4년이 지난 지금은 테디베어, 향수, 금속공예 등 19개의 공방이 자리하고 있다. 

여전히 문을 여는 유해업소가 있지만 공방도 같이 존재한다. 이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서울의 거리 어디든 원래부터 어두운 거리는 없었다. 우리 사회가 더욱 관심을 가지고 정비를 하고 변화가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로 붐비는 눈에 띄는 변화가 아니어도 좋다. 유해업소들이 떠난 자리에 서점이나 식당, 공방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이미 변화는 시작됐으니 말이다.  
길음역 8번 출구 앞에 청년창업거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길음역 8번 출구 앞에 청년창업거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박은영

이러한 변화에는 지자체의 지원에 힘을 얻어 용기 있게 도전한 청년들의 역할도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청년 창업거리를 필자도 이제야 알게 됐다. 이곳 식당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세화영어서점에 영화도 보러 갈 계획이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 힘겹게 문을 연 청년가게들이 오래도록 반짝이며 자리를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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