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에 단돈 2,000원…'허리우드 극장'에 가다
발행일 2021.09.17. 14:26
55세 이상 어르신이면 2,000원에 고전영화 볼 수 있어
지난 8월 31일을 마지막 상영일로 종로구에 있는 '서울극장'이 폐관했다. 한때 주말이면 종로에 무수히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았던 극장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있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극장이 있다. 낙원악기상가 건물 4층의 '허리우드극장'이다.
낙원악기상가 건물 4층에 실버영화관이 있다. ⓒ윤혜숙
낙원악기상가 근처를 지나다가 모처럼 시간이 나서 극장에 들러보기로 했다.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어깨가 구부정하고 기력이 떨어진 어르신들에게도 분명 빛나는 청춘이 있었을 거다. 4층에 내리니 멀리 극장 간판이 보였다. 지금은 눈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든 극장 간판이다. 간판에 그려진 영화배우들의 모습이 꽤나 익숙하다. 수많은 영화에서 우리를 웃고 울리던 그 배우들이다.
실버영화관 앞, 영화관을 드나드는 여러 어르신들을 볼 수 있다. ⓒ윤혜숙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 2개의 창구에서 극장표를 판매하고 있었다. 영화 상영시간표를 보니 10여 분 뒤에 영화가 곧 시작된다. 헨리 폰다가 출연하는 ‘분노의 포도’였다. 존 스타인벡이 쓴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1940년에 개봉된 흑백영화다. 1928년 경제공황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인 대불황으로 당시 미국에도 실업자가 넘쳐났다. 아직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원작소설에 관한 관심이 극장표를 구매하게 했다.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 두 곳에서 영화가 상영 중이다. ⓒ윤혜숙
창구에서 영화 제목을 얘기하자 직원이 “55세 이상이면 2,000원입니다. 55세 이상인가요?”라고 묻는다. 55세 이상이 아니라고 하자 7,000원이라고 한다. 순간 이곳이 ‘실버영화관’이라는 사실이 실감됐다. 영화관 입구에서 극장표를 확인하는 직원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었다. 홀의 정면 좌우에 각각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이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 홀에 있는 카페는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 ⓒ윤혜숙
널찍한 홀에는 꽃집과 카페가 있고 어르신이 기다리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코로나19 상황인지라 카페에서 커피 등의 음료는 팔지 않았다. 어르신이 이동하기 편하게 화장실로 가는 길도 계단이 아닌 경사로에 손잡이가 설치돼 있었다.
스크린에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제목이 자막으로 나오고 있다. ⓒ윤혜숙
극장 안은 한 자리씩 건너 앉을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어르신들 몇 분이 곳곳에 앉아서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복합영화관이 등장하기 전에 존재했던 옛 영화관의 모습이 떠오르며 친숙하게 느껴졌다. 난생 처음 영화관에서 흑백영화를 관람했다. 오래 전에 제작된 흑백영화라서 그런지 화면 구성이 현란하지 않았다. 대신 등장인물 간의 대사를 통해서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고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을 알리는 자막이 올라가자 어르신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윤혜숙
영화의 마지막을 알리는 자막이 올라갈 때 어두웠던 극장 안이 밝아졌다. 필자를 제외한 영화 관람객이 모두 어르신들이었다. 영화를 관람하고 나오는 어르신께 영화를 관람한 소감을 여쭤봤다. 거의 매일 실버영화관에 출근하고 있다는 어르신은 “영화표가 싸니깐 부담 없이 이곳에 온다”면서 “말 타고 총 쏘는 서부극을 좋아하는데 오늘 영화는 서부극이 아니어서 아쉬웠다”고 말했다.
어르신이 이동하기 편하게 화장실로 가는 길에 경사로와 손잡이가 설치돼 있다. ⓒ윤혜숙
허리우드극장은 서울시가 시민투표를 통해 선정한 8월의 미래유산에 이름을 올린 곳이다. 1969년 8월에 낙원상가 4층에 개관한 이 극장은 1997년 복합상영관으로 재단장해 서울 시내 10대 개봉관 중 하나로 사랑받았다. 충무로 일대 영화의 역사를 대변하는 장소라는 측면에서 2013년에 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것이다.
허리우드극장은 지난 2009년부터 ‘어르신들을 위한, 어르신들에 의한, 어르신들의 극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바탕으로 실버영화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1950년대 이후 제작된 추억의 영화를 저렴한 가격에 상영한다. 지금의 어르신들이 어릴 적에 봤을 법한 영화를 실버영화관에서 재관람하는 셈이다. 그래서 실버영화관은 어르신들에게 지나간 추억을 일깨워주는 영화관이다.
허리우드극장은 지난 2009년부터 ‘어르신들을 위한, 어르신들에 의한, 어르신들의 극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바탕으로 실버영화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1950년대 이후 제작된 추억의 영화를 저렴한 가격에 상영한다. 지금의 어르신들이 어릴 적에 봤을 법한 영화를 실버영화관에서 재관람하는 셈이다. 그래서 실버영화관은 어르신들에게 지나간 추억을 일깨워주는 영화관이다.
어르신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윤혜숙
고령화 시대, 우리 사회에 노년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노년층을 위한 전용 공간이나 시설은 부족한 편이다. 그런 점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어르신들에 의한, 어르신들의 극장으로 자리매김한 실버영화관이 달리 보인다. 모처럼 어르신들 틈에서 영화를 관람하면서 필자도 아날로그 감성에 젖어들 수 있었다. 실버영화관과 같은 어르신들 세대를 위한 공간이나 시설이 서울 시내 곳곳에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 허리우드극장(실버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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