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의 옛 이야기와 만나다…토정 이지함 선생·맛깨비길

시민기자 노윤지

발행일 2021.09.14. 13:00

수정일 2021.09.1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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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역 4번출구 근처에 ‘3·1 독립운동기념터: 마포전차종점’ 비석이 서 있다.
마포역 4번출구 근처에 ‘3·1 독립운동기념터: 마포전차종점’ 비석이 서 있다. ⓒ노윤지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마포하면 딱 이 노래가 생각난다. 지금은 사라진 전차 종점인 마포종점. 이곳에서 멀지 않은 마포역 주변에는 오랜 역사의 현장이 많다. 

먼저 마포역 4번 출구로 나와 조금 걸으면 ‘3·1 독립운동기념터: 마포전차종점’ 비석이 나온다. 1919년 3월 1일 오후 8시경 군중들이 운집해 독립만세를 외쳤던 장소다. 당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한 후 서울 곳곳에서 벌어진 만세시위가 교외로 번져 가면서 밤 늦은 시간까지 이 곳 마포전차 종점 부근에 모여 시위를 했다. 이 곳을 종종 지나다녔지만 3·1운동이 있었는지는 몰랐었다.
마포음식문화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토정 이지함 선생 동상
마포음식문화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토정 이지함 선생 동상 ⓒ노윤지

마포역 1번 출구에서 마포음식문화거리 방향으로 가면 또 다른 역사 속 인물을 만날 수 있다. 바로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진 조선중기의 학자 토정 이지함 선생(1517~1578)이다. 이름 앞에 붙는 ‘토정’ 이라는 호는 그가 일생을 마포 강변(현재 서울 마포구 토정동 부근)에서 흙담 움막집을 짓고 산 데서 유래했다. 

이지함 선생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이지번에게 글을 배웠고, 후에 서경덕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성리학뿐 아니라 수리, 의학, 복서, 천문지리 등 여러 분야에 달통했다. 특히 의학과 복서에 밝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이지함 선생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일년의 신수를 봐달라는 요구가 많아져 ‘토정비결’을 지었다고 한다.
이지함 선생의 구휼활동을 재현하고 있다.
이지함 선생의 구휼활동을 재현하고 있다. ⓒ노윤지

‘토정비결’은 이지함 선생의 호인 ‘토정’과 사람의 길흉화복을 적은 책인 ‘비결’을 의미한다. 조선후기에 알려진 이 책은 지금까지도 운세를 점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되어 있고 대부분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내용이 담겼는데 이는 당시 힘들었던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백성을 위하는 이지함 선생의 노력이 엿보인다. 
"귀한 소금 받아가시구려!" 실사구시 정신을 몸소 실천했던 실학자 이지함 선생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귀한 소금 받아가시구려!" 실사구시 정신을 몸소 실천했던 실학자 이지함 선생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노윤지

이지함 선생의 동상 맞은 편에는 백성들이 소금을 받아가는 모습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이지함 선생의 구휼 활동을 재현한 것이다. 그는 맨손으로 직접 바다와 갯벌, 무인도에서 2~3년 만에 몇만 섬의 곡식을 쌓아 굶주린 백성들, 부녀자와 노인,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토정을 근거지로 삼고 바다와 땅을 이용해 생업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자립의 길을 열어주고 굶주림을 해소할 수 있음을 직접 보여준 조선 최초의 양반 상인이자 실학의 선구자다. 
마포 맛깨비길에서도 토정 이지함 선생의 선한 일화가 담긴 글을 볼 수 있다.
마포 맛깨비길에서도 토정 이지함 선생의 선한 일화가 담긴 글을 볼 수 있다. ⓒ노윤지

서울 대표 먹자골목 중 하나인 마포용강 맛깨비거리에도 이지함 선생이 백성들에게 실천한 선한 행동이 담긴 글을 볼 수 있다. 해안의 어장과 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을 알고 있어 권문세가들의 어장을 벗어나 바다와 갯벌에서 고기를 잡아들였다. 첫 출어에 고기를 가득 잡아 돌아와 마포나루터는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고 한다. 생선을 팔아 쌀과 보리를 사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눠주며 나라에서도 하지 못하는 일을 이지함 선생이 해낸 것이다. 
이지함 선생의 어부활동을 연상케하는 물고기 조형물들이 마포 맛깨비길에 설치돼 있다.
이지함 선생의 어부활동을 연상케하는 물고기 조형물들이 마포 맛깨비길에 설치돼 있다. ⓒ노윤지

마포대교 근처 마포나루터에서도 이지함 선생에 관한 이야기 안내판을 볼 수 있다. 마포나루는 조선시대 한강의 대표적인 나루터로, 마포의 순우리말인 삼개를 넣어 ‘삼개나루’라고도 불렀다. 서해안에서 생산된 소금이 주로 유통됐으며, 생선과 새우가 많이 거래됐고, 젓갈도 유명했다. 마포구 염리동도 예로부터 소금 매매 상인들이 다수 거주하던 동네여서 붙여진 것이다. 
마포대교 아래 마포나루터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나루터 중 하나였다.
마포대교 아래 마포나루터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나루터 중 하나였다. ⓒ노윤지

조선 후기부터 개화기까지 한강변에서 가장 번성한 포구로써 오랫동안 ‘삼개삼주’라는 말이 유행했다. 삼주란 상거래를 알선하는 객주, 항해의 안녕을 빌어주는 당주, 술집인 색주를 말한다. 그래서일까? 마포역 주변에는 지금도 술집, 밥집들이 즐비하다. 마포 돼지갈비와 주물럭으로 대표되는 맛깨비길이 있다. 
마포나루터 근처에 설치된 토정 이지함 선생 안내판
마포나루터 근처에 설치된 토정 이지함 선생 안내판 ⓒ노윤지
마포나루 근처에 설치된 새우젓 소금장수 이야기
마포나루 근처에 설치된 새우젓 소금장수 이야기 ⓒ노윤지

맛깨비길 탄생 이야기도 흥미롭다. 1970년대, 여의도 개발이 시작되면서 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하지만 여의도 주변에는 끼니를 해결할만한 식당이 변변치 않아 마포대교를 건너 마포역 주변의 식당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노동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서 고기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마포갈비와 주물럭의 인기가 높아졌다. 매년 가을 이 곳에서 열리는 마포음식문화축제는 서울의 대표적인 지역축제로 자리하고 있다. 
마포 대표 음식문화거리로 자리잡은 맛깨비길의 모습
마포 대표 음식문화거리로 자리잡은 맛깨비길의 모습 ⓒ노윤지

지금의 마포역 주변은 오피스와 큰 빌딩들이 즐비했다. 복잡한 서울 도심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역사의 흔적이 숨겨져 있다. 3·1 독립만세운동 현장과 토정 이지함 선생의 이야기를 살펴보며 그 시절 모습을 잠시나마 그려보는 건 어떨까.

☞ 마포문화관광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mapo.go.kr/site/culture/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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