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 '서울서진학교'가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한 이유

시민기자 김윤경

발행일 2021.09.09. 15:58

수정일 2021.09.09. 15:58

조회 4,482

북카페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안정을 더한다.
북카페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안정을 더한다. ⓒ김윤경

서울시 건축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인 '서울특별시 건축상'의 올해 대상은 '서울서진학교'가 차지했다. 멋진 건축 모습도 궁금했지만, 지적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서울시건축문화제' 개막을 앞두고,  서울서진학교를 설계한 ㈜코어건축사사무소의 유종수, 김빈 건축가와 서울서진학교 홍용희 교장을 만났다.
서울서진학교 입구
서울서진학교 입구 ⓒ김윤경

서진학교의 첫인상은 넓고 쾌적해 보였다. 밖에서 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내부에 들어서서 자세히 살펴보면 지적장애 학생들을 배려한 부분들이 속속들이 보인다. 

일반 학교의 두 배는 넓어 보이는 복도가 편리해 보였고, 천창을 통해 내리쬐는 빛의 느낌이 온화하게 다가왔다. 단지 건축적인 멋스러움만이 아니다. '서울서진학교'에 담긴 사연을 듣고 나니, 서진학교가 품은 공간 하나하나가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2017년, 장애학생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했던 뉴스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지역주민의 반대와 갈등이 많았고, 우여곡절 속에 생긴 곳이 바로 이곳 서울서진학교이다. 이 과정은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가는 길’로도 제작돼, 지난 5월 개봉했다. 이렇게 2020년 힘겹게 완성한 학교는 올해 봄 처음으로  2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넓은 복도. 학생들이 바닥의 색깔로 동선을 인지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넓은 복도. 학생들이 바닥의 색깔로 동선을 인지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김윤경

서진학교는 폐교한 공진초등학교 건물을 증축하고 신축을 더해 지었다. 발달장애를 위한 특수학교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전공과(고교 졸업 후 2년 과정)까지 약 30여 개의 학급을 운영 중이다.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보통의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몸이 좀 불편한 학생들이 다니는 일반 학교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특수학교는 '특수하다'는 편견을 버리고, 특별하지 않은 보편적인 학교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장애 학생들도 결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요. 그런 생각을 공간에 많이 담으려고 했어요."서울서진학교를 건축한 ㈜코어건축사사무소의 유종수, 김빈 건축가는 서진학교를 '가장 보통의 학교'로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ㅁ'자로 학교 건물로 둘러싸인 중정 모습
'ㅁ'자로 학교 건물로 둘러싸인 중정 모습 ⓒ김윤경

이런 생각은 실제 공간에도 잘 드러나 있다. 도로에서 볼 때는 벽돌 건물이 흔히 볼 수 있는 학교와 별반 달라 보이진 않지만, 내부는 다양성을 고려하고 있다. 

우선 장애 학생들의 동선을 최소화한 ‘ㅁ’자형 구조가 그렇다. 외부로 나가지 않고도 다른 곳으로 이동이 쉬우며 창문을 통해 사방에서 친구들 모습이 보인다. 행동반경이 넓은 지적장애 학생의 특성을 고려해 복도는 일반 복도보다 2배 정도 넓혔다.
(시계방향으로) 대피공간,  안정을 취하는 스누젤렌실, 계단 난간에 설치한 가벽, 편의시설 보관함
(시계방향으로) 대피공간, 안정을 취하는 스누젤렌실, 계단 난간에 설치한 가벽, 편의시설 보관함 ⓒ김윤경

물론 가장 중요한 안전도 잊지 않았다.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고자 계단 난간마다 가벽을 세워 놓았으며, 각 층에 2개씩 대피 공간과 병실 침대도 들어갈 수 있는 넓은 엘리베이터를 갖췄다. 

“만약 대피할 일이 있을 때, 장애 아이들은 큰 소리를 들으면 더 놀라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그럴 때는 색을 인지하는 편이 훨씬 빠르거든요. 대피공간으로 이동하거나 엘리베이터로 갈 때 색깔로 알려주는 것이 더 좋을 듯했어요” 바닥에 알록달록 그려진 선은 단순히 미적 요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파드(POP) 공간. 전시, 연주, 놀이 등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열린 공간이다.
파드(POP) 공간. 전시, 연주, 놀이 등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열린 공간이다. ⓒ김윤경

각 층마다 복도 중간에 2개씩 자리한 파드(POP, 복도 중간중간 작은 교실처럼 구성한 공간)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파드에서 음악회나 전시회를 열거나, 놀이활동을 하는 등 아이들과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내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파드 공간 덕분에 건물이 정형화되지 않고 입체적인 느낌이 드는 효과도 있다.  
건축가들이 가장 신경을 쓴 중정.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열린 공간 중정. ⓒ김윤경
중정 내 벤치. 다양한 연령과 상황을 고려해 높이를 모두 다르게 배치했다.
중정 내 벤치. 다양한 연령과 상황을 고려해 높이를 모두 다르게 배치했다. ⓒ김윤경

“이곳, 중정에서 학생들이 다양성을 느껴보면 좋겠어요.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도 보고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학교를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쓴 공간이기도 합니다.” 유종수, 김빈 건축가의 설명처럼 중정은 'ㅁ'자로 둘러싸인 건물 사이에서 학생들에게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증축한 기존 건물과 신축 건물이 'ㅁ'자로 연결하면서 자칫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도 아늑한 중정이 이런 문제를 해소해 준다. 
서울서진학교 설계를 맡은 유종수(왼쪽), 김빈(오른쪽) 건축가
서울서진학교 설계를 맡은 유종수(왼쪽), 김빈(오른쪽) 건축가 ⓒ김윤경

“서진학교는 학부모, 교육청, 지역주민... 많은 사람이 배려하고 노력한 끝에 만들어졌잖아요. 저희는 해야 할 역할을 했을 뿐인데, 과분한 상을 받은 거 같아요. 실은 저희가 학교를 지으면서 더 많이 배웠어요. 몸이 불편한 이들도 어떻게 하면 좀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 다각적으로 공부하고 고민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유종수, 김빈 건축가는 서울시 건축상 대상 수상을 ‘단지 해야 할 일’이라며 겸손함으로 돌렸다. 

그렇지만 그들의 노력 역시 보통이 아니라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장애 학생에게 보통의 삶을 제공하기 위해선 장애 학생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일반 학교의 장점은 유지하면서 불편함은 배려할 수 있었기에 서울시 건축상 대상도 받지 않았을까. 

“앞으로요? 아주 특별하진 않아도 뻔하지 않는 건축을 하고 싶어요, 아주 작은 변화를 거쳐,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건물을 만들고 싶어요.”  
서울서진학교 홍용희 교장
서울서진학교 홍용희 교장 ⓒ김윤경

“발달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와 달리 14년을 한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는 학습터이자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발달장애 학생들은 가끔 돌발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학생들의 안전과 편리를 위해 고려한 공간 요소 덕분에 학생들의 돌발행동도 많이 줄었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어한다는 학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 참 보람됩니다. 확실히 공간이 주는 힘을 느꼈고요" 서울서진하교 홍용희 교장은 학생들의 특성을 세심하게 배려한 공간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앞으로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지면 중정과 운동장 등 지역주민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개방하면서 주민들과의 교류를 넓혀갈 계획도 갖고 있다. 
서진학교 교실 모습.
서진학교 교실 모습. ⓒ김윤경

서울시 건축상은 공공 기여 요소와 혁신적인 건축, 사회적 책임 등을 고려해 선정한다. 특히 서진학교는 이 모든 것이 적합했으며, 적은 공사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건축물을 만든 건축가의 노력도 높이 샀다. 올해 수상작들은 8일부터 노들섬과 온라인으로 열리는 '서울건축문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시계방향으로) 바리스타 교육 등을 배울 수 있는 공간, 감각운동실, 오감놀이실, 뷰티실
(시계방향으로) 바리스타 교육 등을 배울 수 있는 공간, 감각운동실, 오감놀이실, 뷰티실 ⓒ김윤경

무릎 꿇고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했던 장애아 학부모들의 울림은 서진학교를 시작으로 2019년 서초구 나래학교와 2024년 개교 예정인 중랑구 동진학교 등으로 퍼져갔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갈 길은 남았다. 아직도 많은 장애 학생이 왕복 1~4시간을 등‧하굣길에 쏟고 있다. 활동이 불편한 학생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도록, 더 많은 제2, 제3의 서진 학교가 곳곳에서 쾌적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피어나길 바란다. 무엇보다 이렇게 기능에 충실한 학교가 디자인까지 겸비했다는 것은 감탄할 만하다. 그래서 이 건물이 서울시 건축상 대상으로 선정된 건, 반가움을 넘어 우리 모두의 사명감으로 이어진다.       

시민기자 김윤경

서울을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고 전하겠습니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